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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제이
2019-05-07
한반도와 일열도가 서로 싸우게 만들어서 연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중국의 전통적인 이이제이 전술이다.

고구려와의 전쟁 후에 신라가 당나라에게 달라드니 당나라는 가야와 백제의 유민들이 만든 나라인 일본을 지원하며 신라를 견제하려고 하였다.





 
중국은 동네 양아치 힘자랑, 일본은 승냥이질, 미국은 마피아질,북한은 칼든 강도질,한국은 동네 북
2019-05-07
구석기인부터 한반도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 구석기 시대와 1만년 전인 신석기 시대에는 중국대륙과 한반도와 일본은 바다물로 구분되지 않고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고아시아족은 걸어서 일본열도에 들어갔으나 1만년 전부터 간빙기가 시작되며 지구 온도가 올라가니 바닷물이 황해와 대한해협에 들어와 일본열도는 7000년 동안 고립(고 아시아족인 야누이족의 조몬문명)되었고 고조선의 남하로 위협을 받은 BC 3세기에 비로소 청동기와 벼농사를 가지고 진국 삼한인들의 일부인 영산강 마한인과 가야산 자락의 거창 가조면 우두산 고천원의 아마테우스(천조대신)일행의 변한인이 낙동강을 따라 배를 타고 왜열도에 들어 가서 대륙 1만년의 역사를 그대로 일본열도에 이식하며 신대 천왕의 역사인 야노이 문명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동 시기인 BC 3세기에 영산강의 마한인들도 규슈 서쪽에 배를 타고 들어갔다. AC 1세기에 비류백제가 인천을 떠나 웅진에 자리를 잡고 계속 남하하여 규슈의 서쪽으로 들어가 구다라를 건설하였다. AC 1세기에 김수로왕의 둘째 딸 묘견 공주와 그 동생 7왕자가 규슈 북쪽으로 들어 가서 히미꼬(묘견공주)를 여왕으로 하여 야마다를 세웠다.

원래는 한반도 전체가 마한이었고 진시왕의 만리장성 축조의 징용에 동원된 훈족이 도망을 와서 평양의 마한 왕에 의탁하니 마한 왕이 그들을 소백산맥을 넘어 들어가서 살게 하여 진한과 변한이 마한으로부터 분리되어 삼한이 되었다.

진한과 초기 신라인은 청동기를 가지고 이즈모 신사가 있는 혼슈의 서쪽으로 들어갔고 나라 지역으로 들어 가서 청동기 소국을 세웠다. 규슈 북부지역의 철기의 가야인의 야마다 왕국이 철기의 규슈 서부의 백제계 구다라 왕국에게 패하며 나라지역으로 밀려 들어 가서 철기를 가지고 신라계 청동기 나라 소국을 점령하고 1세대 가야계 천왕을 시작하였다. 규슈를 평정한 비류 백제계 구다라 왕국은 웅진 세력인 오진과 연합하여 나라 지역까지 점령하며 2세대 진씨의 천왕을 시작하였다. 4세기에 북부여를 이은 동부여가 고구려에게 쫓기어 요서 서부여로 갔는데 또 다시 선비족에게 망하니 서부여 의려왕 일행이 백제를 거쳐 백제인의 안내로 오사카 지역으로 피난 망명하며 비류백제인에 합류하였다. 397년 광개토왕에게 쫓긴 웅진(공주) 백제후인 오진이 하동에서 출발하여 오사카 지역을 점령하며 실질적인 최초의 천왕인 응신천왕이 되었다. 초기 가야인들은 김수로왕의 둘째 딸인 묘건공주(히미꼬)와 그 동생 7왕자를 따라 규슈의 북쪽으로 들어가서 야마 왕국을 건설하였다. 400년 후에 광개토대왕에게 쫓긴 397년에 웅진 백제후왕 오진과 가신들은 이미 선주 비류 백제계 도래인으로 꽉찬 규슈를 한 바퀴 돌아서 오사카지역을 점령하여 간척으로 땅을 넓히고 선주 비류백제인과 서부여 의려의 후손들을 접수하고 그의 고향 백제인을 데려오며 야마토 왜의 고대국가를 최초로 건설하였고 백제기마술을 도입하며 주위 47개 소국을 병합하여 비로소 고대국가를 시작하고 15대 진씨 성의 응신 천왕이 되었다.(존예) 2대를 진씨 성의 천왕을 하였고 한성백제에서 온 여씨 성의 전지 왕자의 왜국 아들인 비유 왕자에게 3세대 천왕의 바통을 넘겨서 오늘 날까지 그 혈통이 일왕에게 이어져 오고 있다.(비유-개로-곤지-무령-게이타이-)

397년 왜로 피난 온 오진은 오사카 지역에 야마토 왜를 건설하였고 3년 후인 400년에 오진의 왜는 바다건너 한반도에 되나와서 왜로 넘어 오려고 부산에 대기중인 백제인과 가야와 함께 내물왕의 신라 경주를 포위하였다. 절체절명의 신라 김씨 내물왕은 고구려 광개토왕에게 구원을 요청하고 광개토왕은 5만의 대군을 신라에 내려보내서 왜, 가야, 백제인들을 물리치고 금관가야의 종발성까지 점령하였다. 금관가야와 오진의 왜와 백제인의 패잔병들은 왜열도로 또 다시 도망쳤다. 왜의 오진은 한반도에서 또 다시 광개토왕에게 패하고 왜열도로 철수하였고 거대고분을 축조하며 광개토왕에 대한 불안감을 달래야 했다. 이 광개토왕 시기에 약 10만명의 백제인과 가야인이 왜열도에 도래인으로 건너갔고 그들은 광개토왕의 왜열도까지의 정복을 방어하고자 사까이 시의 닌토쿠 천왕 묘(세계 최대 묘) 등의 거대 고분을 축조하며 광개토왕에 대한 공포심을 보상하고 자 하여 광기의 거대 고분의 축조에 매달렸다.

진한인과 초기 신라인은 청동기를 가지고 혼슈에 이즈모 신사를 만들고 혼슈 나라 지방으로 직접 들어갔고 가야인은 철기를 가지고 규슈 북쪽 지역으로 들어 갔으며 마한과 백제인은 철기를 가지고 규슈 서쪽으로 들어갔다. 백제인은 철기를 가지고 규슈 북부의 가야인을 혼슈로 밀어내니 철기를 가진 가야인은 청동기의 초기 신라인의 혼슈의 나라 지역으로 밀려가서 청동기의 초기 신라계를 정복하며 나라지역에 제1세대의 천왕이 되었다. 규슈를 완전히 차지한 백제인은 혼슈의 나라 지역에 밀려 간 가야인을 따라가서 정복하여 천왕(왜왕)자리를 뺏앗으며 제2세대의 진씨 천왕 고대국가를 완성하였다. 기존에 나라 지방에 있던 신라계와 가야계와 고구려계는 오사카 백제계 천왕에게 밀려서 타의 반, 자의 반으로 일본 알프스를 넘어 관동 동경지방으로 이주하며 개척하였다. 무역을 하며 야마토 왜에 온 전지왕자의 아들인 비류왕자가 진씨 천왕 자리를 뺏았으며 여씨 천왕의 제3세대 천왕의 시대를 연다. 초기 신대의 천왕은 가야계이며 15대 오진 천왕부터는 진씨 비류백제계이고 20대부터는 여씨 한성백제계이다. 백제 무령왕도 왜나라에서 왜왕 부라는 천왕을 478년부터 23년간 하다가 공주로 귀국하여 백제 무령왕이 되었다. 현재의 천왕은 가야계의 피와 백제계의 피를 동시에 받았으나 주로 백제계의 피를 받았다.

신석기 시대인 1만 년 전부터 빙하기가 끝나고 지구가 온난해지며 농업혁명이 발생하면서 인류의 인구는 급격히 늘기 시작하였고 부족 단위의 신석기 부족 소국가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9000년 전에 유라시아 대륙의 공통 모국인 옥기 문화의 신석기 요하문명 환국이 세워지고 2000년을 지속하였다. 자기동래 라하여 황제의 기운은 동쪽(요하문명)에서 왔다 라는 기록은 중국에 널려있다. 지구의 모든 문명은 환인의 환국인 신석기와 청동기의 옥기 요하문명에서 비롯된 것이다. 환웅의 배달국도 옥기 요하문명의 환국에서 백두산 아래의 신시로 갈라져 나온 것으로서 1564년을 지속하다가 2333년간의 단군 조선으로 이어졌다. 단군조선은 해를 숭배하는 천신사상의 해모수의 북부여로 이어졌다.기마 북부여로부터 고구려, 백제, 왜가 나왔고 졸본부여의 고두막한 왕의 딸과 외손자(박혁거세)가 고조선 6부족을 이끌고 진한에 내려와서 선주의 평민 훈족을 제압하고 박혁거세왕이 되었다. 이로서 신라는 선주 훈족과 부여족의 혼혈이 되었다.

유라시아 공통 모국인 환국으로부터 러시아에 러시아 공국과 중국에 황하문명의 삼황오제의 나라가 탄생하였고 동 시대에 환웅이 5916년 전에 백두산 주위의 신시를 중심으로 한 북만주에 배달국을 개천하며 동이족의 나라가 탄생하여 1564년을 지속한 후인 4352년 전에 단군조선으로 이어졌으며 또 다시 2333년을 43명의 단군조선으로 지속하였다. 중국의 하,상,주, 진, 초기 한나라에 해당하는 동북아의 단군조선은 부여국을 거쳐 고구려, 백제, 신라의 3국 시대로 이어졌다. 신라 김씨 왕조는 중국의 신나라를 세운 왕망과 흉노 왕자 출신의 투후 김일제의 후손들로서 중국 신나라가 후한 광무제에게 망하니(AC 40년) 배를 타고 도망와서 경주에 자리를 잡고 선주한 훈족의 후원으로 박씨와 석씨를 제압하며 신라의 왕권을 잡았고 중국에서 살다가 왔기 때문에 중국의 억양이 지금도 경상도 사투리에 남아있게 되었다. 같은 북방계라고 하지만 흉노(훈족)은 부여족과는 분명히 다르다. 신라는 김알지 훈족과 박혁거세 부여족과 석탈해 인도족의 혼혈이다.

따라서 우리민족 고유의 개천의 시기는 서기 2019년에 2333을 더하는 단기 4352년이 아니라 2019년에 2333을 더하고 또 다시 1564년의 배달국의 역사를 더한 배달기 5916년이 더 정확하다. 즉, 우리 배달민족의 고유의 역사는 6000년의 역사이다. 유라시아 공통 모국인 환국의 역사는 8000년이다. 환국에서 한민족 고유의 배달국이 떨어져 나온 것이다. 수메르문명도 환국으로부터 6000년 전에 떨어져 나왔고 아브라함은 5000 년 전에 수메르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한 한 집단의 우두머리였다.

동이족의 청동기 단군조선 2333년에 해당하는 중국의 역사는 하, 상, 주나라(철기 문명), 진나라, 한나라(전한)이다. 진조선의 단군조선에 이어서 북부여를 거쳐서 고구려, 백제, 신라가 탄생하였다. 청동기는 단군조선 시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철기는 고조선 말기와 북부여 시기에 한민족이 비로소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대부분의 고조선 시기는 비파형 동검의 청동기에 의한 국가체제로서 천문을 관찰하고 신라 삼성기에 특정 년도의 단군시기에 천문현상인 오성취루 현상을 기록에 나타내기도 하였는데 현대 천문학으로 역추산해보니 그 년도에 오성취루가 나타나는 것이 맞았다. 삼성이라함은 환인, 환웅, 단군을 가르킨다.

우리민족 고유의 역사의 시작은 신시에 환웅에 의한 배달국의 개천(개국)으로 보아야 하며 지금으로부터 5916년 전의 일이고 아직 신석기 시대이다. 태희복희나 치우천왕은 배달국 중기 시대의 사람으로서 홍산문화(신석기와 청동기 혼용)를 이룬 우리의 직접 조상이다. 태극기의 태극은 태희복희가 만든 3태극으로부터 유래한 것으로서 고종이 2태극으로 단순화하였다. 초기 국가의 형태는 환국으로 9000년 전인 신석기에 의한 농경시대에 이미 발생하였고 5000년 전에 비파형 동검의 청동기가 배달국과 고조선의 고대국가를 가능케 하였고 천문을 관찰하였다.

또 다른 한반도 도래인 일파는 벼농사와 청동기, 철기를 가지고 인도 타밀과 스리랑카에서 출발하여 동남아시아, 중국 양츠강을 거쳐 배를 타고 황해를 건너 한반도에 들어 온 남방 해양 민족이 또 한 줄기의 우리의 조상이다. 신라를 세운 고조선 유민인 박혁거세 세력은 까치로 상징되는 석탈해 일파를 받아주었는데 석탈해 일행은 인도 타밀을 떠나 중국 양쯔강 유역에서 200 여년을 살다가 진한 땅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아직까지 경상도 사투리에 중국억양이 남아 있게 되었다. 고인돌은 원래 해양 민족들이 잘 만든다. 고인돌 세력은 한반도의 해안에 주로 분포하게 되었다. 석탈해는 중국 신나라의 유민인 훈족 왕족 김일제의 후손, 김알지 일행을 신라에 받아주었다. 김알지의 후손인 내물왕이 김씨 신라 왕조를 이어 받았다.

환국의 요하문명(홍산문명)을 이어받은 배달국, 고조선의 북방민족과 몽고동부의 북방민족은 말을 타고 해양세력인 농경 고인돌 세력을 정복하여 한반도의 지배세력이 되며 남방 해양 세력인 고인돌 세력과 혼혈하였다. 기마민족 북방계와 고인돌 해양세력 남방계의 혼혈로 오늘날의 한민족이 만들어졌다. 오늘날 한국인은 70%는 북방계이고 30%는 남방계로 외모가 표현된다. 일본인은 30%가 북방계이고 70%가 남방계로 외모가 표현된다.

BC 3세기 중국의 통일 정권인 진 시황에 의해 요서 고조선이 동쪽으로 밀려 났으며 진시황의 만리장성 축조에 징용된 카자흐스탄 중앙아시아계 투르크 훈족(소호금천씨)들이 동쪽으로 탈출하여 고조선의 평양 마한왕에게 의탁하니 마한왕은 그들을 소백산맥을 넘어 진한의 땅에 들어가서 살게 하였다. 그들이 신라인의 주류가 되었으며, 그들은 동부 몽골계가 아닌 중앙아시아 투르크계이고 스키타이 금문화를 발전시켰으며 그들의 흉노 왕족 김일제의 후손인 신나라 김알지 일행이 중국에서 살다가 AD 1세기에 신나라가 망하며 나중에 신라에 합류하엿고 AD 4세기에 훈족의 중심이 되어 신라 내물왕의 김씨 왕조를 성립하고 600년을 지속하였다.

진시황 다음 통일 한나라 무제에게 지리적으로 만리장성에 붙어 있는 번 조선(위만의 손자)은 멸망하였으나 동몽골계 북만주 진조선은 해모수에 의해 북부여가 창업되며 한나라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 북부여로부터 고구려와 백제가 떨어져 나왔다. 한나라의 한무제는 북만주까지는 정복하지 못하였고 발해만의 해안가인 남만주의 위만 조선만을 정복하고 그곳에 한사군을 설치하였다.

부여국 창시자인 동몽골계 해모수의 4대 방계 손인 고주몽이 북부여 왕자에게 쫓겨서 고주막한 장군이 세운 졸본부여(북부여 땅을 이어 받음)로 망명하여 소서노와 재혼하며 이곳 왕권을 물려 받고 고구려로 개칭하며 동부여(북부여)와 구분되는 나라를 새로이 창업하였다. 고구려는 부여국의 방계이다. 해모수의 적장자인 동부여는 더 북쪽으로 이주하여 동부여의 이름을 유지하며 후에 백제(남부여)와 왜나라 일본으로 이어졌다. 고구려와 백제는 부여의 적통을 두고 서로 싸우게 된다. 땅으로는 고구려가 북부여의 적통이며 피로서는 백제가 동부여를 이어 갔으므로 해모수의 적장자이다(동부여와 서부여가 3, 4 세기에 한강의 온조의 후예인 십제에 합류하며 대국 한성 백제가 되었다. 신라는 소호금천씨와 훈족왕족인 김일제의 후손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인도 타밀 지방 출신의 석탈해 세력이 합류하였고 졸본부여 고두막한 장군의 외손자 박혁거세가 남하하여 처음으로 국가형태를 만들었으나 석탈해를 거쳐 훈족 왕족 김알지의 후손인 김씨가 왕권을 잡았다.

중국에 통일 정권이 나타나면 한반도는 반드시 침입을 받아 정권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한나라가 200 년대에 조조, 유비, 손권으로 분열되면서 고구려, 백제, 신라가 급격히 크기 시작하였으며 중국이 5호16국 시대의 혼란한 분열의 시기에 광개토왕, 장수왕의 고구려 전성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중국이 수, 당나라로 통일되며 고구려, 백제가 멸망하고 신라는 속국이 되었다. 중국이 거란, 송나라, 여진으로 분열된 고려 초,중기에 고려는 독립 자주의 국가였으나 원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이후부터는 고려도 부마국으로서 속국으로 전락하였다. 조선은 명나라의 작은 집을 스스로 자처하고 나서며 소중화를 이상으로 삼을 정도었다. 조선은 명나라의 예부가 관리하는 제후국으로 하늘에 제사 조차도 지내지 못하는 완전한 속국이었다.

혼란의 남북조시대를 끝내고 북조의 선비족인 수나라가 다시 중국을 통일하면서 한반도(고구려)는 또 다시 침입을 받기 시작하였고 이어진 당나라에게 백제, 고구려가 망하게 되었으며 신라는 당나라의 속국이 되었다. 이와같이 통일중국의 등장은 한반도에게는 항상 불행이었다. 중국이 거란과 송나라로 분열된 고려 초, 중기에는 독립성을 회복하였다가 몽고 원나라로 중국이 통일되면서 또 다시 원나라의 속국이 되었다. 명나라에게 속부한 조선은 중국의 작은 집을 자처하는 소중화를 추구하며 하늘에 제사조차도 지내지 못하는 제후국으로 전락하게 되며 전통적인 북방민족 천손의 사상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조선초기에, 천손사상을 가졌던 고려를 낮추려다 보니 배달국과 단군조선의 전통을 이어가지 못하고 BC 10세기의 기자조선을 정통으로 보며 단군조선과 북부여의 북방 기마 조상민족의 역사는 단절되었다. 조선조 초기에 단군조선 등의 상고사에 대한 모든 책을 수거하여 불태우고 천손기마사상를 지우며 땅강아지 농경의 소중화에 매진하며 순화되었다. 북방민족 천손사상의 본류는 가야 유민과 백제 유민에 의해 일본으로 가버렸고 일본은 천손의 천왕을 자처하며 호전적인 독립국으로 중국의 황제와 대립하게 되었다. 원나라의 일본 열도 침입을 가미가제로 2차례 방어하며 일본은 더욱 중국 대륙에 대하여 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후에 대명가도라 하여 임진왜란과 청일전쟁, 러일전쟁으로 이어졌으며 중국의 속국이었던 조선은 일본에게 먹히게 되었다가 일제가 미국에게 패망하며 남한은 미국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소련은 재빨리 북한땅을 접수하며 김일성을 내세워 북조선을 건국하게 하였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은 한반도를 교묘한 나누어 가지며 타협하였다.

일제는 더더욱 한반도의 배달국과 단군조선과 북부여를 없애려고 발광을 하였다. 단군조선과 북부여와 관련된 남은 모든 책을 수거하여 남산 밑에서 태우는 일제발 분서갱유가 자행되었다.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삼성기,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단군세기 등이 이 때 완전히 사라졌다.
일본역사도 고조선, 북부여, 삼한의 마한, 백제, 변한, 가야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에 한국의 단군조선과 북부여의 역사를 없애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한 것이 일제 36년간의 폐해이다. 일본서기는 망한 북부여사, 가야사와 백제사와 고구려사를 그대로 베낀 것이다.

북부여로부터 출발한 고구려는 몽골 동부에서 이주하여 온 북만주 진조선 몽골계 기마민족이 세운 나라였고 남하하면서 평안도와 황해도의 마한계 고조선족과 대방 한족들과 해양세력 고인돌족과 섞였다. 고주몽은 북부여의 창업자인 해모수의 적장자도 아니고 단군 왕족의 자손도 아니기 때문에 졸본부여의 국호를 고구려라고 개칭하고 새로운 창업주가 되었다. 굳이 따지자면 졸본부여의 창업자인 고두막한 장군이 단군 왕족의 방계 자손이었다. 고주몽이 졸본부여를 이어받으며 고구려를 창업하니 그것을 반대한 고두막한 직계의 진 고조선 6부족은 고두막한의 딸과 그녀의 아들인 박혁거세을 따라 소백산맥을 넘어 이주하며 박혁거세의 서라벌을 건설하였다. 진한 땅에는 200년 전에 이미 중앙아시아계 훈족들이 진시황의 만리장성 징용에서 도망와서 자리잡고 있었으므로 늦게 온 박혁거세 고조선 유민 6부족은 200년 전에 이미 와 있던 중앙아시아 투르크계 훈족들과 혼혈하였다. 그 다음에 양쯔강에서 살다가 온 인도 타밀어를 쓰는 남방계인 석탈해 일행이 철기문화를 가지고 초기 신라에 합류하였다. 마지막으로 훈족 왕자 김일제의 후손인 중국 신나라 유민인 김알지 일행이 피난을 와서 신라에 합류하며 200년 전에 이미 와서 자리 잡은 평민 훈족들의 지원으로 신라 왕권을 잡았다. 가야의 김수로왕도 AD 42년에 중국 신나라가 망하면서 신나라 귀족들이 철기를 가지고 배를 타고 김해 지역에 망명 이주하였는데 그 우두머리였다. 석탈해의 루트를 따라 중국 보주에서 출발한 허황후 일행이 AD 48년에 김해에 도착하여 김수로왕의 왕비가 된다. 석탈해와 허황후는 같은 인도 계통으로서 중국 양쯔강에서 살다가 한반도로 이주한 세력이다.

한나라에게 대항한 북부여 의병장으로 졸본부여의 창업자인 고두막한 장군과는 혈연관계가 전혀 아닌 고주몽이 왕권을 잡으니 떠나는 세력이 생겼다. 고주몽에게 왕권을 뺏긴 고두막한 장군의 딸은 아들 박혁거세와 고조선 6부족을 데리고 졸본부여를 떠나 소백산맥을 넘어 진한의 땅에 들어가서 고조선을 이어간다. 고주몽은 국호를 단군 고조선이나 부여라는 말을 싹 지우고 고구려로 개칭할 수 밖에 없었다. 고주몽 사후에 고 유리가 왕권을 받으니 고주몽의 졸본 부인인 소서노가 분노하며 그녀의 소생 비류, 온조를 데리고 고구려를 떠나 한강유역에 자리를 잡고 십제를 세운다. 졸본부여를 이어 받은 굴러 온 돌 격인 고주몽에 대한 거부 세력이 백제(온조)와 신라(박혁거세)를 창업하였다.

백제는 북부여-동부여-요서지방 부여에서 발현한 동몽고계로서 그 일부가 한강으로 이주하여 한강 백제로 발전하였으며 왜로 진출하여 야마토 왜라는 고대국가를 건설하였다. 백제는 북부여의 창업자인 해모수의 적장자 계통인 동부여를 이었다고 하며 한성 백제에서 해모수에 대한 제사를 지냈다. 백제는 부여의 적통을 주장하였고 부여 백제를 남부여라 하며 수도를 부여라 하였다. 왜열도와 무역을 하던 황해도 대방은 백제로 흡수되었고 백제의 이름으로 왜와 무역을 계속하였다. 고구려 광개토왕은 황해도 대방을 백제로부터 뺏았으며 해상 대국이 되었다. 백제인은 배를 타고 해양무역에 특별히 장기가 있었고 300년 동안 왜열도로 대거 이주하였으며 왜열도에 고대국가를 건설하였다.

북만주에서 북부여 창업자 해모수는 단군 왕족의 후손이 아니기 때문에 진조선땅에 단군조선을 대신하여 부여국을 새로이 창업하여 한나라와 대립하였다. 이와같이 북부여는 북만주 진조선땅으로 부터 유래하였으나 몽고계 해모수에 의한 새로운 창업이었다. 한편 남만주에서 한나라와 싸우며 진 고조선 유민들에 의해 북부여 5대 왕으로 추대되고 졸본부여 창업자가 된 단군 왕족 방계 후손인 의병장 고두막한 장군의 손자대에 왕자가 없었다. 이 때 굴러 들어 온 돌인 고주몽이 왕통을 이어받았다. 고두막한의 딸은 굴러 들어 온 돌인 고주몽에게 졸본부여 왕권이 넘어가는 것에 분노하였다. 이에 진조선계 6부족의 박혁거세일행은 모친(고두막한의 딸)을 모시고 졸본부여를 떠나 서라벌에 들어 가서 이미 자리잡은 중앙아시아계 피난민을 통합하여 진한(진고조선의 후예)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표방하였다. 석탈해는 철기를 가지고 인도 타밀 지방을 출발하여 양쯔강 유역에서 살다가(그래서 지금도 경상도 억양에 중국어 억양이 남아 있다) 진한의 서라벌로 들어와서 박혁거세의 박씨에 이어 고대국가를 건설에 합류하며 몇 대의 석씨 왕가를 하였다. 박씨와 석씨 왕가는 초기 신라의 400년 동안의 왕권을 유지하였다가 내물왕부터는 중앙아시아계 훈족인 김알지의 후손인 김씨가 왕권을 차지하였다.

후에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흉노국 왕자 김일제의 후손인 신나라 후손 김알지 일파가 서라벌에 합류하며 이미 자리잡은 중앙아시아계 피난민을 중심으로 한 김씨 왕가를 시작하며 국호를 신라 라 하며 본격적으로 신라가 크기 시작하고 나머지 신라 역사의 600년을 왕권으로 있었다. 당시 왕이었던 석씨는 중앙아시아 흉노국계 왕족인 김알지 일행을 신라에 받아 주며 기존의 중앙아시아계 피난민의 중심이 되게 하였다. 그 이후부터 김알지 후손인 내물왕은 360년대에 기존의 중앙아시아계 피난민을 뭉치게 하여 신라 왕권을 비로소 차지하였고 기마전통과 금관문화를 신라에 꽃피웠다. 신라 김씨는 카자흐스탄계 중앙아시아 유전자로서 약간 힌피부에 서양인의 외모가 섞여 있고 체격이 큰 편이다. 중앙아시아계 피는 고구려나 백제에는 섞이지 않았고 고구려와 백제는 주로 동 몽고계인 부여계의 후손이다.

신라 김씨 왕가가 고려 왕건에게 합병되니 마의태자는 금강산의 스님이 되었으나 신라 중앙아시아계 김씨 왕가 일부가 원래의 박혁거세 고향인 진조선 북만주로 피난을 가서 금나라를 세우고 금나라 시조가 되었다. 후에 금나라는 후금으로 부활하여 청나라가 되고 중원을 정벌하였다.

변한의 일반주민들도 진시황의 만리장성 축조의 노역을 탈출하여 평양을 거쳐서 소백산맥을 넘어 온 중앙아시아계 피난민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여기에 김수로왕의 가야의 지배층이 기마와 철기 문화를 가지고 대륙을 출발하여 배를 타고 변한의 경남 해안가로 들어 온 이주세력으로 6가야를 세웠다. 일부는 규슈 북부로 진출하였다. 인도 허황후 일가가 양츠강 보주에 이주하여 살다가 김해 김수로왕과 혼인하기 위하여 배를 타고 장강을 출발하여 김해에 도착하며 가야에 합류하였다. 530년과 560년 가야가 신라에 정복되며 수 많은 가야 왕족과 귀족들이 자유를 위하여 왜열도로 피난하여 들어갔다.

배를 타고 한반도 남해안에 도착한 석탈해 세력은 철기를 가지고 처음에는 가야 김수로왕에게 도전하였으나 패하고 북쪽으로 달아나 서라벌로 가서 합류하며 청동기 박씨에 이어 신라 왕에 오른다. 이로부터 563년까지 석탈해, 김씨 신라와 김수로왕의 가야가 서로 원수가 되어 싸우는 사이가 되었다. 결국 563년 대가야가 망하면서 신라가 최후에 이기게 되었다. 망한 가야의 많은 왕족과 귀족들은 자유를 찾아 왜열도로 피난하여 들어갔다. 평민 가야인들의 일본열도로의 탈출을 막기 위하여 중원(충주)로 강제 이주를 당하였다.

:한반도와 일본열도가 서로 싸우게 만들어서 연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중국의 전통적인 이이제이 전술이다. 전통적으로 백제처럼 일본과 친하게 지내는 한반도 정권은 통일중국이 용납하지 않고 멸망시켰다. 일본과 척을 지는 한반도 정권만을 통일중국은 용인하여 왔기 때문에 한반도 정권은 자의적으로 일본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도 그러하지 못하였다. 일본을 막기 위한 울타리로서 한반도는 중국에게 필요하였고 일본에게는 중국을 막기 위한 울타리로서 한반도는 필요하였다. 양측에서 한반도는 일종의 완충지대였다. 13세기 세계제국은 몽고는 여몽 연합군을 동원하여 일본을 2차례 원정하였으나 태풍(신풍, 가미가제)으로 자멸하며 성공하지 못하였다. 고려말에는 규슈에 본거지를 둔 왜구들이 한반도 남해안과 도서지방과 중국해안을 수시로 침범하여 약탈하였다.

장개석의 국민당은 김구의 임시정부에게 돈을 대주며 키웠고 국민당군은 김구를 앞세우고 한반도에 진군하려고 하였으나 모텍동에게 밀리며 그 계획을 실행하지 못하였다. 이 계획대로 진행되었다면 한반도는 또 다시 김구를 앞세운 국민당 중국의 속국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소련이 대신 북한을 접수하였고 거의 무명의 소련파 김일성이 김구를 대신하여 북한의 정권을 잡는 행운을 잡았다. 남한에는 미군이 들어왓고 미국파 이승만이 정권을 잡았다. 장개석 파인 김구는 후원하는 대국이 없는 상태로 입국하여 무방비상태에서 반공 친미파와 친일파에 의해서 무참히 암살되었다.

오늘날에도 한미동맹이 없다면 한국은 중국의 종 노릇을 하지 않을 수 없고 중국을 거역하지 못햇을 것이며 서해와 제주도도 중국에게 내주어야 했을 것이다. 중국을 막아주는 것은 미국과 한국사이에 동맹의 힘이다. 한미동맹이 없다면 독도나 울릉도도 일본에게 내주어야 햇을 것이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한국인이 큰 소리를 치고 살려면 한미 동맹을 유지하고 잘 관리하여야 하는 외교의 신의 한 수이다. 미국을 끌어들여 미국의 일부가 되다시피하여 한국은 비로소 중국과 일본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고구려에 의한 한반도 통일은 중국 당나라에게는 두려움이었기 때문에 약소국 신라를 키워 고구려, 백제를 견제하였다. 그렇다고 신라에 의한 한반도 통일도 당나라는 원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발해로 분단되었다. 더구나 고구려 연개소문과 백제 의자왕과 왜나라는 당나라에게 조공을 바치지 않고 도전하였다.
이에 백제를 먼저 치기로 하고 고구려를 다음에 쳤다. 이로서 한반도에 중국을 위협할 수 있는 나라는 사라지게 되었다. 고려말에 마지막 자주파 무사인 최영이 고구려의 영광을 재현해보려고 시도하였으나 사대주의파 이성계의 배반으로 실패하였다. 조선은 소중화로 스스로 작아지며 중국의 보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조선은 노비의 인구가 40%일 정도로 농노를 수탈하며 중국의 보호아래 이씨 왕가와 일부 양반들의 특권으로 유지되다가 공정성이 없는 자체의 모순으로 스스로 무너졌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승자인 새로운 강국 일제는 그것을 주워담았다.

진시황의 중국 통일은 고조선을 동쪽으로 밀어 내고 동쪽으로 밀린 고조선은 한반도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한반도 남해안 고인돌 삼한인들이 위협을 느끼며 BC 3세기에 벼농사와 청동기를 가지고 일본열도로 피신하여 먼저 들어 간다. 주로 낙동강 하류의 변한계와 영산강의 마한계에 이어 AD 원년 경에 미추홀의 비류백제계의 일부와 가야계가 철기를 가지고 왜열도에 자리를 잡으며 수 백 개의 소국의 형태로 존재하였으나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고대국가는 백제 웅진후왕 출신인 오진 천왕의 400년까지는 형성되지 못하였다.

396년 광개토왕의 백제정벌로 397년 웅진(공주)의 오진 백제후왕 일행이 하동을 출발하여 규슈를 돌아서 왜열도 오사카 지역으로 피난을 가서 주위 소국을 정벌하며 고대국가 야마토 왜를 최초로 건설하고 오진 천왕이 되었다. 기원전후 비류백제인과 369년 근초고왕이래로 300년간 이미 백제계는 왜열도에 많이 자발적으로 이주하여 각처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오진은 그 세력을 결집하여 고대국가를 만든 것이다. 기원 원년 전후에 비류 백제계 진씨의 평민들이 왜열도까지 퍼져 들어 갔는데 그 세력도 오진이 야마토 왜에 통합시켰다. 광개토왕에 대한 두려움을 보상하기 위하여 백제계 초기 천왕들은 이 시기에 거대 고분을 축성하는데 닌코쿠 천왕의 고분은 세계 최대의 크기이고 오진이거나 오진의 아들의 묘이다.

이와같이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야마토 왜라는 최초의 고대국가는 주로 웅진(공주) 사람들이 주도하여 건설한 것이다.

광개토왕의 남진으로 백제계의 수 많은 피난민들이 왜열도에 도래하였다. 도래인중에서 AD 396년 광개토왕에게 패한 웅진(공주)의 백제 후왕인 오진 일행이 오사카에 들어 가서 야마토 왜라는 고대국가를 처음으로 세우고 주위 소국들을 통합하며 진씨의 15대 응신 천왕이 되었고 3대를 진씨가 천왕을 하다가 한성에서 온 전지왕자의 아들인 여씨의 비유왕자에게 왜왕(천왕) 바통을 넘긴다. 이 시기에 광개토왕의 아들인 고진은 규슈까지 쫓아 와서 규슈를 지배하며 남쪽 천왕을 3대에 걸쳐 50년간 한다.

전지왕의 아들인 비유왕자는 한성으로 귀국하여 비유왕이 되고 야마토왜는 그의 아들인 개로왕자(사이 천왕)에게 물려준다. 본국(한성)에서 비유왕이 죽고 개로가 귀국하여 백제 개로왕이 되고 야마토 왜는 개로의 동생인 곤지가 유라쿠 천왕이 되어 물려받는다. 이와 같이 작은 집인 왜나라에서 왜왕을 하다가 큰 집인 한성에 귀국하여 백제 왕이 되는 수순을 거치는 것이 5세기 100 년간 당시에는 당연하였다.

369년 근초고왕 이래로 663년 망할 때까지 300년간 백제인들은 왜열도로 확장하여 이주하였다.

백제가 큰 집 역할을 한 것이다. 만세일가 라고 선전하는 천왕의 씨는 적어도 3번 이상 변하였다. 처음에는 변한-마한계, 다음에는 백제 웅진 진씨, 그리고 다음에는 백제왕계인 여씨로 변하여 왔다. 현재 천왕은 여씨의 후손임이 분명하다. 현 천왕은 그것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다가 일본 우익들의 반발에 그 사실이 또 다시 흐지부지되었다.

400년부터 455년까지 50년간은 실제로 광개토왕의 아들인 고구려계 고진이 규슈를 지배하는 남쪽 천왕이였고 백제계는 혼슈를 지배하는 북쪽 천왕으로 일본 남북조로 나누어 졌다가(전지왕은 이 시기에 왕을 은퇴하고 승려로서 왜땅에 와 있었는데 고구려계 남쪽 천왕에게 잡혀 죽임을 당하여 지금도 왜땅에 묻혀있다) 전지왕의 아들인 비유왕자가 왜 천왕을 오진의 후손인 진씨로부터 이어 받으며 여씨가 천왕을 하기 시작하여 재정비하였고 그의 아들인 백제계 개로왕자와 곤지왕자가 455년 규슈의 고구려계 남쪽 천왕을 죽이고 왜열도를 백제계로 재통일하며 여씨 계열의 천왕을 오늘 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왜열도에서는 455년에 개로와 곤지의 백제계가 고구려계를 이기고 최후의 승자가 되면서 오늘날까지 천왕을 이어받은 것이다. 현 천왕도 그들의 선조가 한반도계인 백제계라는 것을 실토한 바 있다. 13세기 후부터 권력은 쇼군에게 넘어 갔으며 쇼군은 백제계도 있었고 고구려계도 있었으며 신라계도 있었으나 천왕은 백제계로 계속 유지되었다.

규슈 고구려계 남쪽 천왕을 죽이고 왜를 백제계로 재통일한 한 시대의 왜열도 영웅인 개로왕자(왜왕 사이)는 한성으로 귀국하여 개로왕으로 20년을 재위하다가 당대 더 큰 영웅인 고구려 장수왕의 한성 침범으로 475년에 사로 잡혀 참수당하며 한성백제는 문을 닫고 문주왕에 의한 웅진백제로 이어 진다. 왜 열도에서 개로왕자에게 패한 고구려계에 대한 복수로 장수왕은 한성백제를 멸망시키고 개로왕을 참수하였다. 왜열도에서 고구려계를 제압하고 왜열도를 백제계로 재통일한 개로왕자는 한성으로 복귀하며 북조의 북연과 연합하여 고구려를 위,아래로 공격하려고 북연에 사신을 보냈으나 북연이 오히려 배반하고 이 사실을 고구려 장수왕에게 알림으로서 분노한 장수왕은 3년을 준비하여 한성백제를 멸망시키고 개로왕과 태자를 사로잡아 아차성에서 참수하였다.

개로왕의 또 다른 아들인 문주는 신라에 구원을 요청하러 갔다가 간신히 살아남았고 웅진(공주)로 간신히 피신하여 웅진 백제를 이어갔고 왜열도에서 돌아 온 동성왕과 무령왕이 다시 백제를 강국으로 부흥시켰다. 무령왕 이후 160년동안 공주-부여에서 지속하며 왜와 밀접하게 교류하였으나 660년 의자왕의 외교적 실패로 망하게 되며 백제는 일본으로 이어졌다.

개로의 동생 곤지는 455년에 재통일한 왜에 남아서 유라쿠 천왕이 되어 22년을 재위한다. 곤지에 의해 왜땅에서 길러 진 개로왕의 아들 무령왕자는 곤지에 이어 478년에 왜왕 부가 되어 24년을 천왕으로 있다가 사촌 동생인 게이타이에게 천왕을 물려주고 웅진(공주)로 귀국하여 무령왕으로 20년을 재위하다가 523년에 공주의 무령왕릉에 묻혔다. 그의 아들 성왕이 이어받고 부여로 천도하였다.

이와같이 현재 일본의 천왕계는 백제왕계와 직접 혈연관계이다. 백제가 구다라(큰나라)였고 왜(작을 왜)는 작은 나라(작은 집)의 관계였다. 663년 본가 큰 집인 백제가 백강전투에서 망하니 작은 집인 왜나라가 본가인 일본이 된 것이다. 일본 천왕은 자신의 피속에 백제 왕가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으며 동생 왕세자는 공주의 무령왕릉을 조상의 묘로서 참배하며 이렇게 늦게 찾아 왔음에 용서를 빌고 눈물을 흘렸다. 지금도 일본 학생들의 수학여행으로 공주(웅진) 무령왕릉을 많이 방문한다.

:백강 전쟁과 고당 전쟁 후에 당나라는 신라마저도 식민지로 삼으려하였다. 이에 통일 신라가 당나라에게 달라드니 당나라는 백제의 유민들이 만든 나라인 일본을 지원하며 신라를 견제하려고 하였다. 발해도 그 틈에 고구려 유민으로 건국되어 고구려를 계승하였다. 이른바 이이제이 전술이었다. 이리하여 일본, 신라, 백제의 3국간의 이이제이를 중국이 이용하며 3국이 서로 싸우게 조종하였다.
오늘날의 일본, 한국, 북한의 3국이 서로 싸우게 만드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통일신라가 크니 일본을 이용하여 통일신라를 조절하려고 하는 것이 중국의 입장이었고 일본이 크면 한반도를 이용하여 일본을 조절하려고 하는 것이 중국의 전통적인 이이제이 전술이었다. 한반도와 일본이 서로 싸워야 중국이 편안하다는 논리였다.

백제 의자왕은 외교에서 그런 구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망국의 길로 들어 선 것이다. 고구려에게 망하는 수나라를 보고 당나라도 우습게 보며 당나라에게 조공외교를 수 십 년 간 중단하며 왜와 연합하여 신라를 압박 공격하였다. 신라는 고구려, 백제, 왜나라에 포위되며 절체절명의 위기의 상태에서 살기 위하여 당나라와 연합할 수 밖에 없었다.

육지 지리적으로 고구려가 막고 있기 때문에 당나라가 대규모 군사 작전을 백제땅에 가하지 못할 것으로 오판한 것도 의자왕의 실책이었다. 당나라는 바다 건너 15만 명의 대규모 수군을 통하여 고구려를 우회하여 금강하구에 직접 들이 닷치고 신라 5만 군사는 내륙으로 논산을 거쳐 부여를 협공하니 백제 혼자의 힘만으로는 막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이와 같은 합종연횡의 국제외교와 국제정세는 군사력보다 국가생존에 더 중요하다. 한강유역을 신라에 빼앗긴 고구려는 망하는 백제를 강 건너 불 보듯 관망만 할 수 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5년 후에 위로는 당나라와 아래로는 신라에게 포위당하는 형국이 되어 고구려도 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고구려의 저력은 30년만에 발해로 다시 일어나게 되었고 백제는 일본으로 다시 태어나서 이어지며 3국의 대립은 지속되었다. 당나라가 동북아를 3개 국가로 분열시켜 지배하려는(divide and control) 이이제이 전략은 일본, 신라, 발해가 서로 대립하여 싸우도록 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오늘 날은 일본, 한국, 북한을 서로 대립시키는 것으로 변형되었을 뿐이다.

백강전투 패배후에 백제계 일본 천왕은 일본열도의 북쪽으로 영토를 넓히는 데 주력을 하였고 꺼끄러운 고구려계(고구리)와 신라계 주민(시라기)들을 동경과 그 이북 지역으로 보내서 개척하도록 하며 한반도를 당분간 단념할 수 밖에 없었다. 당나라가 왜열도까지 침입하는 것을 막고 백제 부흥군을 돕기 위하여 3만의 대군을 배에 태워 백강전쟁에 보낸 왜나라는 비록 패하였지만 당나라의 왜열도의 침입은 방지하는 효과는 최소한 보았다. 백강전쟁의 결과로서 일본은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잃었다.

1200년까지도 백제계 천왕은 실권을 가지다가 그 이후부터는 막부 쇼군 장군에게 실권을 빼앗기고 상징적인 존재로만 600년을 보냈으며 1800년대에 명치유신으로 또 다시 천왕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하고 제국주의의 길을 걷게 되었다. 미국에게 패망한 1945년 후에 또 다시 천왕은 실권을 잃고 상징적인 존재로 되돌아갔다.

통일 신라가 한반도를 직접 식민통치하려는 당나라에 대드니 당나라는 더는 일본을 침략하지 못하였고 일본을 이용하여 통일 신라를 제어하려고 하며 일본을 오히려 키워주는 전략을 구사하였다. 일본은 한반도를 통하지 않고 직접 당나라를 왕래하며 선진문명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신라에 의해 한반도로부터 쫓겨나며 한반도 국가에 한을 품게 되었다. 한반도에서 쫓겨 난 한은 한반도에 대한 무시와 멸시로 변천하여 갔고 일본을 한반도보다 더 큰 나라로 만드는 것으로 승화하여갔다. 중국에게 순치되지 않고 사무라이 무사가 지배하는 호전적인 무사 국가를 유지하며 결국, 세계 2위나 3위의 대국이 되었다. 2010년에 중국은 일본을 따돌리고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되었고
9년이 지난 2019년 현재는 일본의 3배나 되는 14조 달러 경제대국이 되었다. 미국은 19조 달러로서 여전히 1위이다. 일본은 5조 달러 이고 한국은 1.5조 달러이다.

중국과 일본은 한반도라는 완충지대를 두고 서로 대립하는 구도를 형성하며 한반도를 각자의 입장에서 이용하였다. 남북분단을 시켜가며 한반도를 나누어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도가 최후에 만들어지게 되었다.

겉으로는 한국인들이 일본을 대등하다고 떠들지만 속으로는 일본을 두려워한다. 양국의 정치인들은 교묘히 국내 정치적인 목적으로 상대국에 대한 한을 이용하며 자국인들의 한의 감정을 의도적 자극한다. 미국의 빽을 믿고 한국은 일본에게 할 말을 다 하고 살고 있을 뿐이다. 미국이 없다면 한국은 일본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인들은 한강, 금강, 영산강 유역이 자신들의 고토라는 무의식을 가지게 되며 한반도의 일부를 되찾으려는 한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중국의 개입으로 항상 무위에 그쳤다. 한반도인들도 고려말 왜구의 침략, 임진왜란, 한일합방을 거치며 일본에게 피해를 본 한을 가지게 되었다. 중국이 의도한 대로 양국인들은 서로를 미워하게 되었다.

한반도인들은 중국에게도 침입을 엄청나게 당하면서도 그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중국에게는 한을 가지지 않는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2000년 동안 중국에게 교묘하게 순치된 탓이다.

전국시대의 일본을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총을 앞세워 또 다시 한반도를 침입하였으나 명나라와 조선의 합심으로 또 다시 철수하며 토요토미 정권이 이에야스 정권에게 망하였다. 백강전투 때와 마찬가지로 중국세력이 개입하면 한반도에서 일본은 힘이 부친다는 것이 또 다시 입증되었다. 그러나 1945년 패전 후에도 한반도의 남쪽은 일본의 영향권에 둘 수 있다고 보며 남북분단을 일본은 유도하였고 환영하였다. 임진왜란과 한일합방으로 한반도인도 일본인에게 한을 가지게 된다.

백강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임진왜란 시에 중국개입의 교훈을 얻은 이에야스 막부정권은 이후 300년 동안 일본열도안에 안주하며 중국의 보호아래의 한반도에 대한 침입을 하지 못하였다.

명치유신으로 막부정권을 무너트린 백제계 조슈번의 명치유신 정권은 백제계 천왕을 앞세우며 청나라의 보호가 사라진 상태의 조선을 천왕의 고토로 보고 정한론으로 또 다시 침입합병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36년만을 버티고 일본열도로 철수하였지만 끝내 한반도를 분단을 성공시키고 남쪽을 영향력안에 넣었다.

이번의 일제 36년을 물리쳐 준 것은 중국이 아닌, 미국의 힘이었다. 미국 덕분에 남한은 2000년의 중국의 속국을 비로소 벗어나게 되며 미국의 일부가 되다시피 하였다. 태평양의 반을 먹으려는 일제의 욕심은 태평양의 패권국인 미국의 반격으로 허무하게 무너지며 한국은 어부지리로 독립을 얻게 되었다. 세계 해양 패권국 미국의 보호, 육성으로 한국은 세계 10대 강국의 대열에 진입하게 되었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을 키워 중국과 일본을 동시에 견제하려고 하였고 한국은 이러한 호기를 놓치지 않고 미국의 기대에 부응하였다. 이제는 중국도 일본도 한국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미군이 한국에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리하여 한국에는 미국이 들어 온 것이다. 한국은 공짜로 나라를 되찾게 된 것이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이 잘 지내기를 바랬고 박정희는 일본과 국교를 맺으며 그에 잘 부응하엿다. 덕분에 미국과 일본의 지원아래 한국은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

북한을 속국화한 중국이 최근에 커지며 남한까지 자기들 영향권으로 다시 빨아 들이려고 하고 있다. 한국도 미국과 일본 일변도에서 벗어나서 중국과 소련과 교역하며 일본과 마찬가지로 더 세계적인 국가가 되고 대국의 반열에 들어서려고 하고 있다. 일본을 극복하려면 한국도 중국이 필요하게 되었다. 미국만 의지하여 이용한다고 일본이 극복되는 것이 아니고 중국과 소련까지 이용하여야 일본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진실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팽창과 위협으로부터 일본은 미국과 연합하여 대응하고 있다. 한미일 전통의 3각 동맹은 한국 때문에 균열되고 있으며 그 자리를 미일인도의 3각 동맹이 대신하려고 한다.

소련군에 의해 점령된 북한은 대륙세력의 첨병 역할을 하며 일본과 미국을 적대시하니 뒤쳐지고 말았다. 이제는 핵이 아니고는 붕괴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북한이 체제 안정을 이루고 살아남는 문제는 이제는 미국과의 타협에 달려있게 되었다. 미국은 북한을 살려주고 자기 편으로 끌어 들일 것이다. 중국때문에 북한을 완전히 죽일 수는 없기 때문에 차선책을 선택한 것이다. 바다를 지배하는 세력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점에서 대륙세력은 세계 패권국이 될 수 없으므로 중국은 남지나해와 동중국해 태평양으로 나오려고 하고 미국을 이를 저지하려고 한다. 충돌은 예고되어있으며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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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당나라, 원나라에게도 지지 않았다는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고 중국과 대등하거나 우월하다는 무의식속에 지금도 동북아의 바다를 미국과 함께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에게는 졌지만 중국이나 러시아에게는 지지 않았다는 대륙세력에 대한 무의식적 우월의식과 저항 의식이 있다. 사실, 일본은 한국의 4배의 국력을 가진 대국으로서 한국은 자신들의 상대가 될 수 없다며 무시하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를 적수로 보고 있다. 중국은 일본의 3배의 경제력을 가진 세계 2위의 국가가 되었다. 중국이 14조 달러, 미국이 19조 달러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 일본은 5조 달러, 한국은 1.5조 달러 정도이다.

한반도는 통일 한나라, 당나라,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에게 굴복하며 존재하여 옴으로서 중국에 대항하지 못하고 순응하며 순치되어왔다. 무사는 천시되고 문인들은 우대되며 민족의 호연지기는 사라져갔다.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일본을 막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그러나 중국에게 또 다시 먹히지 않으려면 민족의 호연지기와 한미일 동맹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게만 대들지 말고 고구려의 고토인 만주와 연해주를 달라고 중국과 러시아에게도 대들 수 있는 호전성을 키워가야 한다. 세계적으로 일본을 만만하게 보는 나라는 어줍잖은 하루강아지 격인 한국인 밖에 없다. 미국도 일본을 두려워하는데 한국이 일본을 우습게 보려는 것은 하룻강아지가 범을 모른다는 것과 다름아니다. 미국의 빽을 믿고 일본에게만 대들지 말고 중국과 러시아에게도 똑 같이 대들어야 맞지 않는가? 1/4 소국이 4배 큰 나라와 어떻게 대등할 수 있는가? 미국의 백을 믿고 이승만이 독도를 점령한 것일 뿐 한일간의 전쟁이 일어나면 한국의 해군과 공군은 전멸하고 말 것이다.
더구나 일본은 청일전쟁, 러일전쟁, 태평양 전쟁을 해본 전쟁의 나라이다. 반일감정을 자극하여 정권을 유지하려는 정파는 천벌을 받을 것이다. 국민이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일본과 중국을 동시에 견제하는 데 있어서 한국은 신의 한 수이다. 미국은 어떠한 경우라도 한국을 떠나지 않는다. 미국과 한국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미국이 밀어 줄 때, 한국은 중국, 일본, 러시아에게 큰 소리를 칠 수 있을 뿐이다. 이럴 때, 북한과 요동 만주와 연해주를 회복하면 얼마나 좋으리요만 북한주민들이라도 탈북을 시켜 받아들여야 5000만 이상의 인구를 유지하며 기회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북한을 약화시키려면 탈북민들을 대거 남한으로 받아 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북한 탈북민들이 1백만에 이른다면 북한은 붕괴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현재는 3만명의 탈북민이 남한에 있다.

한국에 의한 남북통일을 극구 반대하는 중국때문에 남북통일이 안 되고 있는 현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분열되기 전에는 한국 주도의 통일을 기대할 수 없다. 중국은 절대로 울타리 속국 북한을 놓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은 뒷통수에 붙은 망치와 같은 강력한 한반도 통일 정권을 원하지 않는다. 남북분단은 부러진 망치로서 중국에 위협이 되지 못하고 일본을 겨루는 부러진 단도로서 일본에게도 위협이 되지 못한다. 남북분단은 중국과 일본이 원하는 구도이고 남한 주도의 남북통일은 우리의 희망사항일뿐이기에 차라리 북한을 미국편으로 끌어 들인다면 위험하지 않게 되므로 차선책은 되지 않겠는가?

미국 영향력하의 한반도 통일을 중국이 반대한다면 차선책으로 탈북민들을 많이 빼오고 북한을 미국편으로 끌어 들이면 된다. 북한이 미국에게 자발적으로 접근한다면 사실상으로 북한은 한국의 경제에 편입되므로 좋은 일이지만 북한 정권의 붕괴를 각오하지 않는 한 그 한계는 분명하다. 탈북민이라도 많이 빼와서 북한을 더 약화시키고 한국을 더 강화시키는 수 밖에 현재로서 달리 현실적인 방법이 없다. 현재는 탈북민의 3만명이지만 100만명에 이른다면 사실상 북한은 붕괴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반도를 분할 약화시켜 남과 북을 각자의 지배하에 두려고 한 것은 일본과 중국이었다. 중국때문에 북한을 멸망시킬 수 없다면 북한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권적 차원에서 반일감정을 부추기는 한국이 일본과 각을 세우며 불편해질 때, 중국은 현실적인 이유에서 과거를 잊고 일본과 가까워지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싸우면 가장 득을 보는 것은 중국이다. 일본의 소재산업은 한국보다 100년을 앞서서 시작되었다. 국내정치적인 목적으로 일본을 경원시 한다면 한국경제는 소재를 확보하지 못하여 발목을 잡힐 것이다. 산토끼도 잡지 못하는 주제에 미국과 일본이라는 집토끼를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현재도 없고 미래도 없다. 국내 정권적 차원의 반일감정 의존의 방안퉁수들에게는 현재도 미래도 없다. 미국과 일본은 금융자산이 많은 부자의 나라로서 이자가 들어온다. 한국은 아직도 하루벌어 하루를 먹는 자산이 축적되지 않은 나라로서 이자 수입은 없고 물건 팔아서 하루하루를 연명할 뿐이다. 그런데 주 52시간을 일하고 국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트린 베짱이는 추운 겨울에 굶어서 얼어 죽을 일만 남아 있을 뿐이다. 부자도 아니면서 부자 흉내를 낸 댓가는 빚쟁이가 되어 노예의 길로 가는 것이다.

미국이라는 대형과 일본이라는 중형이 도와서 한국의 번영이 가능하였고 유지가능한 것인데 이제와서 중형을 무시하고 중국에만 붙으려 하니 전쟁의 나라 일본은 칼날을 살짝 보여주었다. 그 칼에 누가 베일 것인가? 중국에는 굴종하고 일본에게 까불다가 일본의 칼에 베이게 생겼다. 표면적으로는 대등한 것처럼 보였던 한일관계도 굴종을 요구받고 있는 형국이 된 것은 외교의 무능력의 소산이다. 중국에게 또 다시 속국이 되지 않기 위하여 한미일 동맹은 절대로 필요하다. 겉으로는 반일감정을 내세우지만 나중에 일본에게 빌면서 애걸하는 것이 국내 정치인의 사기성 행태이다.

표를 얻으려는 국내적 정치적 목적으로 일본을 때리면 일본이라고 가만히 맞고만 있지는 않고 실력행사로서 칼을 빼들게 된다. 일본을 만만히 본 댓가는 경제 급소를 향해오는 사무라이의 칼이다. 일본의 경고를 무시하면 경제적 임진왜란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 일본도 동네 북이 되는 것을 수수방관하지는 않는다. 신숙주, 세종도 일본을 경계하라고 햇거늘 100년 후 일본을 잘 다루지 못하여 큰 화근인 임진왜란이 왔듯이 징비록의 가르침처럼 항상 미리 경계하여야 한다. 일본과 대립하며 척을 지면 한국은 곧 바로 중국의 속국이 되었던 역사가 있었다. 현재는 일본과 연합하여 중국에 대항하여도 힘이 부치는 것이 동북아의 형세이다. 그래서 한미일 연합이 중요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는 데 일본과 각을 세우는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정파의 국내정치적인 목적으로서 국가적으로는 소탐대실이다. 인기와 지지율이 하락하면 그것을 모면하기 위하여 우선 반일감정을 자극하고 보는 못난 정치인들의 상습적인 태도는 항상 있어 왔으나 나중에는 뒤로는 일본에게 빌면서 살려달라고 애걸하곤 해왔다. 이번에도 그러 하여 죽창을 운운하던 무대포는 어느새 사라지고 만나달라고 애걸하고 있다. 반일감정 자극은 일종의 국내 정치적인 쇼이다. 쇼가 끝나면 일본에게 뒤로는 살려달라고 애걸한다.
그러나 그런 국내 정치적인 쇼가 끝난 후에 에굿은 국민들이 총알받이가 되는 피해로 이어졌다. 김 영삼의 일본의 벼르장머리을 고쳐 놓겠다는 허풍은 급격한 일본계 자금의 철수로 IMF을 바로 불러왔다. 지금 또 다시 정치인들의 죽창 등의 가벼운 입으로 대일 허풍을 떠는 것은 제 2의 IMF를 불러오게 되고 애굳은 국민들만 또 다시 총알받이가 되어 죽어 갈 것이다. 그간 우방국이었던 일본은 더 이상 현 정부를 우방으로 생각하지 않게 된 것은 현 정부의 가벼운 처신과 국제관계의 무지의 소산인 점이 크다. 관제 종족주의는 국내에서는 통할 지 모르나 냉혹한 국제사회에서는 독이 된다. 실력이 있는 대국은 쇼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나중에 두, 세 배로 댓가를 받아낸다.

일제는 1945년 패망하면서도 제주도와 거문도와 울릉도와 독도는 제외하고 한국에 나머지 도서와 한반도만 돌려주려고 하였으나 미국이 샌프란시스코 협정(일본 패전 협정)에서 일본에게 제주도와 거문도와 울릉도는 한국에 돌려주라고 하여 그 3곳이 한국의 영토가 된 것이다. 그런데 독도는 빠졌다. 이에 국제전략가인 이승만의 혜안으로 6.25 전쟁중임에도 독도를 의용대로 점령하여 실제적인 지배를 하게 된다. 일제로부터 한국을 독립시켜주고 영토를 되찾아 준 미국이 있었기에 한국은 성립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같이 미국이 뒷받침이 없으면 한국은 지금도 중국과 일본의 동네 북이 된다.

중국은 동네 양아치 깡패질, 일본은 상대의 목 급소를 갑자기 물어버리는 승냥이질, 러시아는 먹이를 가리지 않는 불곰질, 미국은 조용히 암살하는 마피아질, 북한은 칼 든 노상 강도질, 그런 4강과 북한의 5면초가에 끼여 있는 한국은 동네 북의 신세이고 5면에서 살을 뜯기는 가젤의 신세와 같다. 그나마 미국의 후원이 있어서 오늘날의 한국의 번영이 가능하였다. 패망한 일제가 끝까지 돌려 주지 않겠다는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까지 챙기며 영토를 일제로부터 되찾아준 미국이 후견으로 있는 것이 그나마 한국의 생존에 절대적이다. 미국의 뒷받침이 없으면 생성 및 존재할 수 없는 나라인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이 깨지면 중국의 속국으로 들어 가지 않고는 일본을 막을 수 없었던 구한말로 돌아간다.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산업의 싹을 잘라버리는 국제정치로 인하여 한국의 삼성전자는 그 덕으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 미국의 덕이 아니면 삼성전자는 이미 중국에게 잡혔을 것이고 엄청난 외화를 엄청 벌지 못햇을 것이다. 삼성전자의 영광도 미국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바로 중국에게 먹히는 것이다.

정조 사후 100년간의 조선 후기는 외척이 권력을 잡고 백성을 무자비하게 착취하여 공정과 정의가 사라짐으로서 공동체로서 이미 몰락하였고 고종은 이씨 사직만을 보존하고 왕가만을 보존하기 위하여 고종 개인의 가산국가인 대한제국을 스스로 천왕에게 팔아 넘기는 댓가로 천왕가에 소속된 이씨 왕족의 재산과 지위를 35년의 일제시대에도 보장받았다. 이 완용 등의 을사오적은 그런 고종의 뜻을 충실히 이행하엿을 뿐으로 고종 대신에 누명을 뒤집어 썻다. 이씨 왕가와 노론의 양반들은 천왕가의 귀족으로 편입되어 부와 권력을 계속 누렸다. 정치의 속성은 원래부터 선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공정과 정의마저 무너지면 무신불립이 되어 국가라는 공동체는 안으로부터 스스로 무너진다. 1860년대에 일본은 완전 독립국이었기 때문에 미국 흑선에게 바로 개항하며 근대화의 길로 들어 설 수 있었으나 조선은 중국의 속국으로서 미국에게 개항할 주권과 자유가 없었다.

미국,일본은 한국에 대한 권리관계가 깊다. 현재의 한국도 북한에 막혀 중국과 육로로는 연결되지 않고 해로로만 연결되고 있는 사실상의 섬나라가 되어 중국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고 미국,일본과 함께 해양세력의 일원이 되며 부국강병을 이룩하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의 잔치(향연)가 아니고 국가 발전을 위한 예리한 통찰력과 실천이다. 일본은 임진왜란 때부터 그 토록 원하던 조선8도 중에서 남쪽 4도를 영향력아래 두려던 야심을 현재 어느정도 이루었는데 이제와서 한국을 완전히 적으로 돌리지는 못한다. 빌면서 만나자는 한국을 일본은 목에 힘을 주고 만나줄 것이다.

공주 우금치에서 죽창으로 무장한 동학군은 일본군의 기관총에 2만 명이 죽었고 일본군은 단 1명이 죽었다. 백성을 무모한 전투에 총알받이로 내모는 장수는 그 자신도 결국 망한다. 국가로부터 단물만 빼먹은 공짜 인생의 금수저 출신에 사시도 합격못하여 변호사 자격증도 없는 일개 백면 서생이 이순신의 서해맹산을 팔고 유식한 채, 불어 앙가주망과 서민을 팔고 있으나 뒤로는 희대의 사기꾼에 사기꾼 집안이라, 정의가 죽은 현재의 한국은 공동체가 와해된 고종의 조선말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이 서글픈 일로서 국가라는 공화국이 와해되는 위기속에 있다. 법비들은 법을 악용하는 데 전문가이다. 정치에서 선으로 포장한 자는 반드시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목을 칠 때가 온다. 원래부터 정치란 선한 것이 아닌데도 선을 가장하는 것이 사기이다. 한비자는 8간을 경계하라고 하였는데 8간은 가족과 측근이 가장 나쁘며 공정과 정의가 무너지면 무신불립이 되어 나라의 공동체는 안으로부터 무너진다. 공정과 정의가 무너지는 내부의 적이 가장 무서운 것이다. 무신불립이라하여 신뢰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대내외적으로 신뢰를 잃어서 국제적으로도 미친 왕따취급을 받고 국내적으로도 반 미친 것으로 비추어 지며 국내외적으로 경멸받는 사태에 이르렀다. 김영삼이 너무 빨리 터트린 샴페인은 IMF를 불렀고 현재의 너무 빨리 터트린 주 52시간 베짱이 놀음은 또 다시 IMF의 악몽이 어른 거린다. 일본은 한국이 사회주의로 가며 주저 앉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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