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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함포 사격의 원조는 고려말 진포해전의 최무선의 함포
2020-03-29
이순신 함포의 시작은 고려 최무선이 고려말 진포 해전에서 왜구를 무치르며 처음으로 도입한 함포 사격에서 출발하였다.
 
역병의 유행은 무력 전쟁보다도 무서운 지옥의 문이다.
2020-03-29
역병의 유행은 무력 전쟁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다는 것을 코로나 바이러스는 알려주고 있다. 2차세계대전말기의 독일과의 벌지 전투에서 8만명의 미군이 사망하였는데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당시 청년으로 이 전투에서 살아남았으나 그 동료들이 벌지에서 죽어나가는 것을 보며 지옥의 문을 보았다고 하였다. 벌지 전투에서 독일군은 10만명이 죽었다. 벌지 전투에서 살아남은 키신저가 90세가 넘는 나이에 또 하나의 지옥인 코로나 바이러스 폐염으로 미국인들이 사망하는 것을 보고 벌지 전투보다도 무서운 것이 코로나 역병이라고 일갈하였다. 인류가 대량으로 사망하는 경우는 역병과 무력전쟁과 재해이다. 역병은 강대국 국민이나 약소국 국민을 구별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감염시켜 전 세계인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으며 세계 경제를 무차별적으로 망가트리고 있다.

패권을 잡기 위한 강대국의 국민으로 태어나서 미국 청년들은 꽃도 펴보지도 못하고 타국의 전장터에서 생명을 잃은 경우가 매우 많았다. 2차 세계대전에서 유럽전쟁과 태평양전쟁에서 겨우 살아 남은 미국의 젊은이들은 5년 후에 또다시 6.25 한국전쟁에서 6만명이 죽었고 베트남 전쟁에서 또 10만명 이상이 죽었다. 이와같이 패권은 결코 공짜로 얻어 지는 것이 아니다. 전쟁도 하나의 극단적인 외교 행동으로서 언어 외교로서 해결이 안 되는 갈등은 전쟁외교로 결정이 되게 되어있다. 외교는 누가 1등을 하느냐를 결정하는 행위이며 1등은 패권을 가지게 된다.

이와같이 평소에 의료와 방역에 투자하는 것은 국방에 투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과하다고 생각할 만큼 평소에 의료와 방역에 투자해 놓아야 한다는 진리를 코로나 바이러스는 알려주고 있다.

인간에게 또 하나의 지옥인 전쟁의 역사를 되돌아 보는 것도 중요하다. 이순신 함포의 위력은 고려말에 최무선이 금강 입구 진포 해전에서 왜구를 무치르며 처음으로 도입한 함포 사격에서 출발하였다.

고려말에 왜구의 침입은 수도인 개경과 강화도를 침입할 정도로 극악스러웠다. 663년 동진강 포구 백강전쟁에서 3만 명의 왜국 수군들이 당나라 수군과 동북아 패권 전투를 한 이래로 최대규모인 2만 명의 왜구가 고려말에 무려 500척을 이끌고 금강 하구 진포에 칩입하였다. 고려는 100척에 불과한 함선을 이끌고 최무선이 진포해전에 임하였는데 함선에 함포를 장착하고 함포가 없는 왜구의 함선을 먼 거리에서 포탄으로 가격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배가 파괴되니 왜구는 육지로 상륙하여 노략질을 하였는데 육지에서는 이성계의 기병인 가별초가 왜구를 섬멸하면서 이성계가 백성들의 우상으로 떠오르며 조선을 개국하는 기반을 쌓았다. 위화도 회군 전에 이미 이성계는 전쟁의 신으로 백성들에게 각인되어 있었다. 최영은 이성계의 야심을 눈치채지 못하였다.

고려 수군의 함포 장착으로 해상에서 우위를 점함으로서 왜구는 점차수그러들게 되었다. 고려말 수군의 함포의 전통은 그대로 조선 수군으로 이어져서 이순신의 튼튼하게 설계된 판옥선에는 수 십 대의 함포가 장착되어 있었고 조총과 일본도로 접근전을 하려는 왜선을 먼 거리에서 파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임란 후 250년 동안 재해권은 조선이 가지고 있었서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1854년에 미국 페리제독의 철선인 흑선에게 개항하고 철선과 함포를 만들며 해상에서 조선에 대하여 압도적인 우위를 가지고 조선을 먹기 시작하였다. 도쿠가와 막부를 메이지 유신으로 무너트리고 천왕 중심의 새로운 권력이 세워지며 일본은 일취월장하였으나 조선봉건왕조를 무너트릴 국민정부가 세워지지 못하고 60년을 허비한 것이 한반도에게는 불운이었다. 고종은 왕조국으로서 끝까지 돈 받고 벼슬을 팔아 먹으며 국민정부 성립을 방해하였고 최후에는 일본 천왕가의 일파로 조선왕가를 팔아 먹으며 일제 35년간에도 이씨 왕가의 기득권을 보존하려는 데만 혈안이 되었었다. 봉건 왕조국을 거부하고 미국식 국민 공화국을 주장하던 청년 이승만은 고종의 대한제국 치하에서 대역죄로 투옥되어 옥고를 치렀다. 한일합방의 위협속에 고종은 미국파 이승만을 감옥에서 풀어 주며 미국에 특사로 보내어서 미국의 도움을 청하였다. 대한제국의 특사로서 이승만은 루즈벨트를 만났으나 이미 일본에게 조선을 주고 필리핀을 미국이 차지한다는 기무라-테프트 협의를 마친 루즈벨트는 이승만의 도움 요청에 무관심으로 일관하였다. 한일합방이 되니 이승만은 미국에 남아서 독립운동을 하게 된다. 루즈벨트를 한 번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이승만은 이미 큰 인물이 되었고 후에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일제 35년의 공백기가 있었으나 조선 봉건왕조는 이승만의 민주주의 공화국으로 바뀌게 되며 국민이 주인인 대한민국은 미국의 지원아래 비로소 늦게 나마 탄생하였다.

1890년대까지도 나라의 기강이 무너져 외척에 의한 부정부패에 쪄든 조선은 철선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일제는 청일전쟁에서 이기면서 상국이 없어 진 조선을 먹기 시작하였다. 청이 무너지니 고종은 아관파천을 하여 러시아에 의지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러시아의 속셈도 부동항을 얻으려고 조선을 39도 선에서 일본과 나누어 가지려고 하였다. 러시아의 속셈을 알아차린 고종은 믿을 나라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다시 환궁하였으나 미국과 영국은 이미 일본편이 되어 있는 냉혹한 국제 현실에 이미 때를 놓치고 일본에게 망국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불가항력의 고종은 마지막으로 조선 이씨 왕가를 일본 천왕가의 일파로 팔아 먹으며 일제 35년간에도 조선 왕가 일파의 기득권을 유지하려고만 하였다. 그의 아들 영친왕을 일본 귀족과 결혼시키기도 하였다. 일제는 고종을 구슬러서 이씨 왕가의 최소한의 기득권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하고 한일합방을 마침내 성공시켰다. 고종은 나름 러시아, 미국의 속내를 파악하려고 하였으나 러시아도 39도 이북을 먹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한일합방은 불가항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이 완용 등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는 연극을 하였다. 사실은 이완용 등은 고종의 뜻을 알아차리고 고종의 뜻대로 했을 뿐이다. 왕이 주인인 왕조국에서 왕이 나라를 포기하겠다는데 신하가 어찌 하겠는가? 주인이 팔아먹겠다느데 하인이 이를 막을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일제는 1904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며 39도 이북을 먹으려는 러시아를 꺽고 영, 미의 허락하에 1905년 을사조약을 통하여 조선 전체를 러일전쟁 승리의 전리품으로 차지하였다.
청일전쟁에서는 너무 쉽게 일제가 큰 희생없이 이겼다. 그러나 일제는 러일전쟁에서 승리는 하였으나 만주와 몽골에서 20만명의 젊은이들이 전사하는 큰 희생이 따랐다. 몽골 고지대 초원 평원에서 일본군은 러시아의 기관단총에 크게 패하니 일본군은 만만한 중국본토로 기수를 돌려서 황하강과 양쯔강을 점령하였다. 미국의 입장에서 조선과 만주 정도는 일본에게 줄 수 있으나 중국 본토까지 일본에게 준다면 아시아에서 일본이 너무 커지기 때문에 미국은 일본을 견제하기 시작하였고 석유와 철강을 더 이상 일본에게 판매하지 않게 되었다. 이에 일제는 미국과 한 판을 붙으려고 진주만을 기습공격하였다. 미국은 태평양 패권을 지키기 위하여 전면전으로 치고 나와 이른바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었다. 해양세력의 1등 국가를 결정하기 위한 해양세력 내의 일종의 내전이 시작된 것이다. 기회주의자인 소련은 먼 발치에서 미일간의 태평양 전쟁을 즐기면서 패자가 결정되기만을 기다렸고 일제가 원자탄을 맞고 패전이 임박하니 일제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개입하며 숟가락을 들고 숙원이던 북한과 만주를 점령하였다. 원자탄 2발을 맞고 일본천왕의 너무 빠른 무조건 항복으로 소련은 일본 북부에 진군할 기회를 놓쳤고 일본은 미국에게 전적으로 점령되며 분단되지 않게 되었고 소련군이 일본열도 대신에 만주와 북한으로 내려와서 차지하게 되었고 한반도는 분단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소련은 만주도 독립국으로 만들어 중국의 분단을 시도하였으나 모택동의 의지때문에 실패하였다. 소련과 미국은 중국이 양쯔강을 경계로 북 중국의 모택동과 남 중국의 장개석의 나라로 분단시키려고 하여 중국의 힘을 빼려고 하였으나 모택동의 의지에 의하여 대륙 분단시도는 실패하였다.

러일전쟁의 결과로 일본에게 조선을 주고 미국은 그 반대급부로 필리핀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였다. 지금도 영, 미, 일은 각각 기축 통화국이며 한 통속이고 한국은 그들의 종속 변수이다.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일본은 세계 열강들을 상대로 세계 정세를 주무르는 강대국의 일원이 되었다. 주위 4강 속에 한반도는 중립국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분단된 것이다. 일제가 원자탄에 순식간에 항복하니 그 틈을 타서 소련은 두만강을 넘어 한반도로 밀고 내려와서 오랜 숙원인 부동항을 확보하고 원래 의도했던 39도 보다 더 남쪽인 38도 이북을 지배하였다. 미국은 태평양을 지배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태평양은 미국의 거대한 호수가 되었다 라고 맥아더는 미 의회에서 포효하였다. 북한 정도의 작은 땅을 소련에게 떼어 준 것을 미국은 게의치 않았다. 미국은 거대한 태평양만 먹으면 되니까. 그러나 일본을 지키기 위하여 38도 이남의 남한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었는데 김 일성은 그와같은 국제정세를 잘 못 오판하여 무모한 6.25 전쟁을 일으켰고 한반도는 잿더미가 되었다.

스탈린은 6.25 전쟁을 통하여 중국과 미국의 힘을 동시에 빼려는 음모를 가지고 있었고 중국은 실제로 6.25 종전 후 30년간 미국에게 포위되어 세계로 나오지 못하고 중국대륙에 갇혀 있게 되었다. 등소평은 소련의 음모를 깨닫고 미국에게 다가서며 봉쇄를 풀며 중국이 세계사의 강자로 등장하엿다. 그 사이에 소련은 러시아로 축소되었고 소련은 경쟁에서 뒤쳐지게 되며 중국에게 세계 2위의 지위를 넘겨주게 되었다. 중국 내륙으로 들어 가서는 어느 나라든 승리할 수가 없다는 것을 일제가 체험하였고 미국도 잘 안다. 다만 해양으로 나온 중국을 제압하는 것은 지금도 어렵지 않다는 것이 미국의 행복이고 패권 유지의 원동력이다.

일제 항복 당시 유일한 원자탄의 보유국인 미국은 소련의 남진으로 허를 찔렸고 38도선 이남으로 소련군이 진군하지 말 것을 소련에게 요구하였다. 당시에 미군의 최전방선은 오키나와에 있었다. 당시에 원자탄이 없었던 소련은 미국의 요구를 들어 줄 수 밖에 없었고 몇 일 간의 시간을 벌은 미군 하지 장군은 몇 일 후에야 겨우 남한에 진군할 수 있었다. 그 몇 일 간은 남한의 일본군이 소련군의 남진을 막고 있었다. 남한의 일본군의 하지 장군의 미군에게 남한을 인계하고 부산을 통하여 철수하였다. 이로서 남,북 분단은 결정되었다. 소련은 오랜 숙원인 부동항을 얻었고 미국은 일본을 지키는 완충지대인 남한을 확보하며 대륙세력을 38도선에서 막을 수 있었다.

양 세력에게 한반도는 너무나 중요하였기에 전체를 상대방에게 줄 수는 없는 것이고 허리를 잘라서 나누어 가지게 되었다. 일본은 한반도의 분단을 즐겼고 중국과 소련은 북한이라도 되찾은 것에 만족하였다. 2,000년간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였던 중국은 더 이상 한반도 전체를 지배할 수 없었고 해양세력 미국에게 남한을 뺏겼다고 모택동은 억울해하였기에 6.25 전쟁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청나라는 여진족과 조선족이 거주한 연해주를 소련에게 이미 빼앗겼다. 러시아는 청나라와 영토 전쟁에서 연해주 블리디보스톡이라는 태평양의 항구와 사할린 섬을 얻었다. 태평양 전쟁의 결과로 일본이 가장 큰 손해를 보았고 미국과 소련이 큰 이익을 보았다. 중국은 본전을 하였다. 한국과 북한은 남의 힘을 빌려서 일본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기 때문에 큰 이익을 보았다.

6.25 초기에 북한군이 수원을 넘어 오산에 밀려올 때 주일미군이 처음으로 참전하여 시간을 벌어 주었고 대전역에서는 미군 2사단이 전멸하면서 미군 사단장이 포로가 되도록 싸우며 북한군의 남진을 지연시키면서 낙동강 전선을 만들며 인천상륙작전의 역전의 계기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압록강을 앞에 두고 중공군이 개입하여 국제전이 되었고 1.4후퇴 때 서울을 다시 뺏기며 평택까지 밀렸으나 다시 서울을 회복시키고 휴전선까지 밀고 올라간 것은 미군과 유엔군의 힘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륙세력으로서 중공과 소련이 연합하였고 해양세력으로서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이 연합하였다. 6.25는 이와같이 국제전이었고 이전에도 한반도의 전쟁은 국제전의 양상이었다.

만주와 북경을 보호하기 위하여 모택동은 언제가는 한 번 싸워야 할 상대인 미국과 싸우려면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땅인 한반도에서 이번에 싸우는 게 낫다 고 보고 압록강을 넘어 미국과의 전쟁을 선택하였다. 한반도의 분쟁에 유사이래로 중국이 개입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나 미국은 중국이 미국에게 덤비지는 못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모택동은 수 십 만 명의 자국 희생자를 내며 미국과 대결을 선택하여 언젠가는 한 번 겨루어 보아야 할 미국과 맞짱을 떳다. 양 대국은 결국 휴전선에서 휴전하며 상대를 육지에서는 완전히 제압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은 바다로 중국을 포위하며 제해권을 가지고 중국을 압박하는 것으로 패권유지는 충분하다고 보았다. 바다에서 미국이 중국을 완전히 제압하는 것만으로도 미국은 패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중국은 대륙에 갖히게 되었고 50년간 미국에게 포위되어 세계로 나오지 못했다. 중국이 바다로 나오게 미국이 허락해 준 것은 그 후 30년이 지나서였다.


최근에 중국은 바다로 나오며 미국의 제해권에 도전하고 있으니 언젠
가는 바다에서 제 2의 미중간의 충돌이 있을 것이고 그 장소는 남지나해가 될 것이다. 그 결과에 따라 태평양 바다를 어떻게 나눌 것인 지가 결정될 것이다. 지금은 미국의 압도적인 해군력에 중국이 감히 공격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패권은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중국은 미국 군함을 상대로 이겨는 것을 증명하지 않고는 세계 패권국의 지위에 오를 수가 없다. 이미 양국간의 패권전쟁은 예고되어 있으나 그 때가 언제일 지는 모른다. 독일의 히틀러와
일제를 자기 위하여 미국과 소련이 연합하였듯이 언젠가는 중국을 잡기 위하여 미국과 영연방과 일본과 소련이 연합할 것이다. 세 불리를 느끼고 중국이 알아서 기어 주는 것이 가장 좋은 시나리오지만
중국이 오판한다면 전쟁은 불가피하다. 연합국과 중국의 대결의 결과는 자명하다.


강대국 국민으로 산다는 것은 목숨을 잃을 확률이 매우 높다. 2차 대전 승전국인 미국, 소련, 영국도 수 백 만 명이 전사하였고 패전국인 일본, 독일은 더 많은 국민들이 죽었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한국전에서도 6만 명이 죽었고 베트남전에서는 더 많이 죽었다. 소련과의 냉전은 전쟁없이 소련이 스스로 러시아로 축소되며 양측 국민들의 죽음 없이 미국의 승리가 결정되었으나 오늘날 중국과 미국이 한 판 붙는다면 양측은 유사이래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다. 누가 이 싸움을 함부로 걸 것인가? 총칼로 싸우지 않고 적을 제압하는 것이 최상의 전술인 바 먼저 무역과 돈으로 우선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것으로 승부가 나지 않으면 태평양에서 무력 충돌은 불가피하다. 양국사이에 전쟁이 나면 승전국이라해도 전사자가 수 백 만 명은 넘을 것이다. 중국이 해군력에서 미국을 이길 수 있다면 중국은 바다에서 전쟁을 택할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상태로는 중국 해군이 미국 해군을 이길 수가 절대로 없기 때문에 입으로만 거칠게 말할 뿐이다. 패권은 입으로는 얻을 수가 없고 힘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으로 패권은 공짜가 결코 아니다.

강대국의 국민으로 산다는 것은 그 만큼 위험한 것으로 패권은 거져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수 많은 자국 국민이 죽고 나서 얻어지는 것이다. 일제도 러일 전쟁에서 수 십 만 명이 죽었고 태평양의 미국 패권에 도전하며 수 백 만 명의 일본인들이 전장터에서 개죽음을 당했지만 패권에는 실패하였다. 일제가 태평양의 패권에 도전했다고 미국은 원자탄까지 터트리며 끝까지 응징함으로서 패권국 미국의 무서움을 전 세계에 보여주었고 바다의 지배권은 어떠한 경우라도 넘겨주지 않는다는 것을 철저하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중국이 태평양을 나누자고 미국에게 덤빌 수가 있을까? 권력자들은 무고한 젊은이들을 전장터에 몰아 넣고 죽을 때까지 싸우라며 후퇴하면 뒤에서 총을 겨루고 있다. 사즉생이요 생즉사라며 이판사판으로 전장터의 젊은 병사들은 적진으로 뛰어 들고 운명을 하늘에 맞기게 된다. 젊은이들의 개죽음으로 산 사람들은 패권을 얻게 된다. 6.25때 육지에서 비긴 것처럼 바다에서도 비길 수 있다면 중국은 수 많은 자국 청년들의 죽음을 무릎쓰고라도 바다에서 미국과의 전쟁을 선택할 것이다. 바다에서 전쟁은 중국에게 전혀 승산이 없기 때문에 말로만 험하게 나올 뿐이다.

패권국인 미국의 뒷바침 아래에서 일본을 모방하며 열심히 추격하여 해양세력의 일원이 된 한국은 잘 살게 되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시킨 선진국이 되었다. 미국의 허락하에 중국, 소련과도 외교 관계를 맺고 한국은 4강을 상대로 외교 및 무역을 하며 세계 10위권의 나라가 되었다. 지금도 미국의 뒷받침인 주한미군과 한국내 달러투자가 없어지면 한국은 하루 아침에 외환위기사태가 도래하여 국가 부도에 이르게 된다. 일본은 기축통화국이지만 한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니기 때문에 달러가 떠나면 바로 국가부도가 되어 거지나라가 된다. 중국의 변방 국가로 또 다시 전락하느냐, 아니면 일본처럼 탈 중국하여 세계 중심국가의 하나로 우뚝 서는냐의 문제는 우리가 하기 나름에 달려있다. 중국의 속국이나 일본의 속국으로 전락하지 않는 신의 한 수는 영토에 욕심이 없는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는 것이다. 다만 경제적으로는 인접국인 중국과 일본을 이용하여야 한다. 세계 패권국인 미국이 한국에 들어 온 것이 고종의 숙원이었는데
일제 패망 후에 그 숙원은 저절로 얻어지게 되었으며 이 승만의 한 미 동맹 체결은 한국 부흥의 초석이 되었다.

그런데 패권전쟁보다도 더 많은 인류를 죽음에 몰아 넣은 것은 역병
이었다.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1차 세계대전보다도 더 많은 인류가 죽었고 중세의 흑사병으로 유럽인의 1/3이 죽어 나갔으며 천연두를 퍼트린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남미 원주민은 천연두로 거의 전멸하다시피하였다. 인류의 면역체계와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오늘날 코로나 바이러스가 출현하여 인류를 공격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높은 감염력으로 무장하고 나타나서 무차별적으로 인류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에 감염된 후 산 사람은 면역을 가지게 되며 생존하게 되고 죽은 사람은 몸속의 코로나와 함께 죽게 되었다. 많은 희생자를 낳고 인류는 또 한 번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겠지만 그 승리의 댓가는 약한 노인들의 수 많은 죽음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너 또한 한 때 창궐하였으나 인류는 그 일부를 희생시키고 코로나 바이러스를 곧 극복할 것이다.

무력 전쟁보다 무서운 역병과의 전쟁에 대비하여 평소에 과하다할 정도로 의료에 투자해 놓아야 한다는 또 한 번의 교훈을 주고 코로나도 때가 되면 사라질 것이다. 의료와 방역은 무력의 국방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코로나를 가르켜주고 있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전쟁에서는 병사들만 죽어 나가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는 무차별적으로 국민들을 감염시키기 때문에 더욱 더 무서운 것이다. 역병은 패권국이나 비패권국을 따지지 않고 국민들을 희생시킨다는 점이 더 무서운 것이다.

박정희의 호남 차별화 정책은 호남인들이 먹고 살기 위하여 수도권으로 대거 이주하며 수도권을 점령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 왔다. 의석수가 가장 많은 수도권의 국회의원 선거는 민주당이 유리한 구도가 되도록 박정희의 호남차별화가 만든 것이다. 수도권에는 호남출신과 충청출신이 각각 1, 2위로 많다. 호남과 충청의 연합으로 수도권 국회의원 당선의 크나 큰 효과를 민주당이 보았으나 표 차이는 압도적이지는 않았다. 호남의 이낙연, 정세균 총리와 충청의 이해찬의 연합은 수도권 국회의원 당선에 맹위를 떨쳤다. 비례 국회의원 수와 지지율을 보면 미래한국당이 19명의 국회의원과 34%의 지지를 가졌갔는데 더불어 시민당보다 높다. 이것은 대선에서는 어느 당도 압승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래통합당에는 충청을 대표할 만한 인물이 없었다. 34% 영남의 표와 소수 보수 표만 가지고는 수도권 국회의원선거에서는 미통당은 무조건 패배이다. 어느 편이 이기든간에 대통령을 뽑는 대선에서는 이런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수도권에서 호남출신과 충청출신의 연합은 박빙의 수도권 국회의원 선거에서 크나 큰 위력을 가진다.

박정희의 쿠테타는 군부 친일세력에 의한 쿠테타였다. 박정희는 철저히 점조직으로 장차의 쿠테타 군을 관리하였는데 1개 사단 병력도 안 되는 3,600명의 쿠테타 군을 이끌고 서울을 점령함으로서 장면은 저항도 못하고 도망가며 무너졌다. 그전에 박정희는 서울을 방어하는 5사단장을 하였는데 이 때 서울의 중요 지점에 대한 정보를 모두 파악하였다가 쿠테타에 활용하였다. 정치권력을 잡은 박정희 소장은 이북 출신이 장악하고 있던 군부를 농락하였다. 키가 왜소한 박정희는 키가 작은 나폴레옹이 군인에서 황제가 되는 것을 보고
나폴레옹을 흠모하였으며 나폴레옹 처럼 포병장교가 되었었다. 박정희의 왜소하고 볼품없는 외모는 상대로 하여금 긴장을 풀게 하는 위장의 효과가 있었다. 박정희의 야심은 그의 왜소하고 볼품없는 외모로 인하여 잘 감추어졌고 박정희는 견제나 의심을 받지 않고 쿠테타 준비를 할 수 있었고 결국에는 쿠테타에 성공하였다. 볼품없는 사람을 더욱 조심했어야 한다는 고래의 교훈은 장면이나 당시 군부 수뇌부에게는 떠오르지 않았고 마침내 그들이 무시한 볼품없는 사람의 기습에 장면정권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장면은 당시 참모총장에게 속았다 고 하지만 장면은 직접 쿠테타 정보를 받고도 그 정보를 애써 무시하다가 박정희의 기습을 당한 것이다.

미국은 세계전략상 일본과 한국이 서로 잘 지내기를 바랐으나 독립투사 이승만 정권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였다. 6.25를 거치며 친일세력인 군부는 여러번 쿠테타를 모의하였으나 이승만의 권위 때문에 실행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윤보선-장면 정권이 들어서자 군부는 이승만의 정치 권위의 통제에서 벗어났고 마침내 기회주의자 박정희는 승진을 더 하지 못하여 군복을 벗을 위기 속에서 이판사판의 승부수인 쿠테타를 일으켰다. 만주군 장교출신이며 일본육사를 유학한 친일 박정희 정권을 일본은 환영하였고 키워주었다. 이로서 남한은 또 다시 일본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 갔고 친일파들은 노골적으로 전면에 나섰다. 독립운동파는 3대가 못 사는 구조에 함몰되어갔다.

박정희는 윤보선과의 최초의 대통령 선거에서 역사상 가장 근소한 차이인 단 10만 표 차이로 이겼는데 전남에서 10만 표를 더 받은 것이주효하였었다. 그런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전남을 배신하고 차별정책으로 일관하였다. 특히 장군 승진에서 극단적인 차별이 있었고 행정부에서도 차별이 노골적이었으며 파급효과로 경제 권력도 호남과 거리가 멀었다. 할 수 없이 호남의 인재들은 차별이 덜한 사법부로 몰려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의과대학 진학에 대한 선호도가 타지역보다 높았다. 박정희의 18년 호남차별은 마침내 광주 5.18 내전이 발생하였고 수 많은 양민이 희생되었다. 분노한 호남은 김대중을 더 키웠고 35년의 호남차별에 대한 항전으로 마침내 5.18후 17년만에 정권을 잡았다. 김종필은 이런 내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김대중이 4번 만에 대통령이 되는 데 큰 역할을 한 DJP 연합을 하여 전남인의 최초의 박정희 지지에 대한 빚를 다소나마 갚았다고 김종필은 생각하였다. 박정희는 충남의 김종필을 계속 중용하며 충남의 지지를 담보하였고 충북 옥천 출신의 육영수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충북을 자기 편으로 붙잡아 두는 데 이용하였으며 호남 포위 전략을 구사하였다. 그리하여 18년 장기집권이 가능하였다.

박정희는 김대중이나 김영삼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박정희는 군부나 측근들의 모반이 제일 두려웠다. 그의 예상은 맞아 떨어져서 측근인 김재규에게 암살당하고 말았다. 망해도 3년을 간다는 속설대로 경북 정권은 전두환, 노태우 정권으로 3대를 더 누리다가 경남 정권인 김 영삼으로 이전되었다. 그리고 imf가 왔고 김대중은 4수의 천신만고 끝에 진보파 호남 정권을 만들어 냇다. 그리고 그는 김대중의 법칙인 진보파의 경북포위 전략을 완성시켰다. 즉, 부산 출신 노무현을 세워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였다. 그의 공식은 지금도 유효하게 적용되고 있고 진보정권은 15년을 진행중이다. 경북 보수정권은 35년을 지속하며 권력과 재력을 다 차지하며 특권을 누렸고 지금도 그에 대한 향수는 보수당에 대한 지지로 나타나고 있다.

김대중은 역으로 경북 포위 전략을 창조하여 진보파의 집권 방정식을 창안하여서 물려주었는데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후에 그것을 따르지 않아서 정권을 잃었고 문재인은 김대중의 경북 포위 방정식을 충실히 따르며 전국 선거에서 3연승을 하였고 4연승을 앞에 두고 있다.

문재인은 충남의 이해찬과 충북의 현 비서실장을 이용하여 충청의 지지를 어느정도 확보하였고 이번 국회의원 선거의 수도권의 충청표를 많이 얻으며 호남과 충청의 연합으로 수도권에서 압승하였다. 경북은 포위되어 가고 있다.

정권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충청은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해왔다. 수도권의 인구 분포상 호남 출신과 충청출신이 1, 2위를 차지한다. 현 정권의 이해찬으로 상징되는 충청의 지분은 이번의 수도권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는 데 크나 큰 역할을 하엿다. 호남과 충청의 연합은 수도권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압승을 가져왔다. 그러나 양대 정당의 표 차이는 10%를 넘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 선거에서는 어느 쪽이든 압도적인 표차이가 나지 않는다. 1% 내지 2%의 차이로 승부가 갈릴 것이고 이번에는 3부를 장악한 진보가 유리하다.

상고 출신의 낭만적인 노무현이 대학을 안 나와서 대학 군단의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정권을 잃고 죽어 나가는 것을 똑바로 목격한 대졸출신 현실적인 문재인은 대학 군단과 함께 정권을 결코 잃지 않으려고 주도 면밀한 연출을 할 것이다. 이 시대 최고의 선거 전략가인 문재인을 이길 자가 현재로서는 없다 고 보아야 한다. 경북을 포위하는 전략은 현재도 미래도 유효하다. 민주당에서 PK의 김두관이 유력한 후보로 출연할 것이다. 이 낙연은 부통령으로 귀결될 것이다. 호남과 PK 진보파와 충청의 3자 연합으로 경북을 포위할 것이다. 안철수를 살려두어서 보수의 분열을 유도할 것이다.

호남 포위 전략을 사용한 박정희에게 배반당한 이후에 호남은 연합의 중요성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그런 권력을 나누는 기술을 습득하였다. 대통령은 PK에 주고 당대표는 충청에게 주고 국무총리만 호남이 하는 식으로 연합의 방정식이 통하고 있다. 진보파가 행정부와 사법부와 입법부를 완전 장악하였는데 다음 대선에서 민주당이 지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현실적이고 머리가 좋고 대학군단을 가진 문재인은 서울에 있는 인 서울 대학을 나왔고 아무런 대학의 뿌리가 없는 상고 출신 낭만적인 노무현과는 다르다. 통합당에는 인재가 아직 안 보인다.

4수 만에 천신만고의 대통에 당선된 김 대중은 당시의 최고의 선거전문가가 되어 있었고 노무현을 당선시키는 김대중의 공식을 만들어 내며, 문재인의 당선에도 김대중의 법칙이 사용되었다. 소위 경북 포위 작전이다. 진보 정권의 메카가 된 광주는 연합의 많은 기술을 연마하며 대통을 PK 진보파에 양보하고 당대표와 비서실장을 충청에 양보하는 전략을 구사하여 국회의원 선거에서 또 다시 압승을 하며 경북 포위 전략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의 최고의 선거 전략가가 된 문재인은 노무현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고 민주당도 정권관리에 많이 세련되어 가며 소수가 된 보수파에 대하여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선거 전략가인 서울대 운동권의 브레인인 이 해찬이 버티고 있다.

노무현이 문재인 만큼만 잘 생기고 능글능글 웃으며 상대를 가지고 노는 능력을 가졌다면 정권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보수를 기웃거린 죄와 못 생긴 죄를 지은 노무현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며 죽음의 길로 들어 섰고 그로부터 교훈을 얻은 문재인은 진영논리로 재무장하고 만면의 웃음으로 중도파를 끌어 안으며 보수를 소수로 밀어내고 경북을 포위하며 선거의 달인의 경지에 올랐다. 지방선거, 총선의 압승에 이어 다음 대선에서도 진보파의 압승이 보인다. 연합의 묘수를 가지고 소수파 보수를 가지고 놀 수 있는 역량을 함양하였다. 선거의 달인인 이해찬이 충청을 대표하여 참가하고 있고 PK 진보파가 대권 후보에 망라되고 있으며 수도권의 호남출신과 현재 호남 거주인의 대다수가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다. 이번에는 정권을 잃지 않을 것이고 경북 포위의 방정식은 또 다시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진보파들도 정권을 관리하고 재창출하는데 진화하여 세련되고 있기에 정권을 잃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 역병
2020-05-07
:역병의 유행은 무력 전쟁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다는 것을 코로나 바이러스는 알려주고 있다. 2차세계대전말기의 독일과의 벌지 전투에서 8만명의 미군이 사망하였는데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당시 청년으로 이 전투에서 살아남았으나 그 동료들이 벌지에서 죽어나가는 것을 보며 지옥의 문을 보았다. 그가 90세가 넘는 나이에 또 하나의 지옥인 코로나 바이러스 폐염으로 미국인들이 사망하는 것을 보고 벌지 전투보다도 무서운 것이 코로나 역병이라고 일갈하였다. 인류가 대량으로 사망하는 경우는 역병과 무력전쟁과 재해이다. 패권을 잡기 위한 강대국의 국민으로 태어나서 미국 청년들은 꽃도 펴보지도 못하고 타국의 전장터에서 생명을 잃은 경우가 매우 많았다. 패권은 공짜로 얻어 지는 것이 아니다. 역병은 강대국 국민이나 약소국 국민을 구별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감염시켜 전 세계인의 생명을 위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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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같이 평소에 의료와 방역에 투자하는 것은 국방에 투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과하다고 생각할 만큼 평소에 의료와 방역에 투자해 놓아야 한다는 진리를 코로나 바이러스는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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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또 하나의 지옥인 전쟁의 역사를 되돌아 보는 것도 중요하다. 이순신 함포의 위력은 고려말에 최무선이 금강 입구 진포 해전에서 왜구를 무치르며 처음으로 도입한 함포 사격에서 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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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에 왜구의 침입은 수도인 개경과 강화도를 침입할 정도로 극악스러웠다. 663년 동진강 포구 백강전쟁에서 3만 명의 왜국 수군들이 당나라 수군과 동북아 패권 전투를 한 이래로 최대규모인 2만 명의 왜구가 고려말에 무려 500척을 이끌고 금강 하구 진포에 칩입하였다. 고려는 100척에 불과한 함선을 이끌고 최무선이 진포해전에 임하였는데 함선에 함포를 장착하고 함포가 없는 왜구의 함선을 먼 거리에서 포탄으로 가격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배가 파괴되니 왜구는 육지로 상륙하여 노략질을 하였는데 육지에서는 이성계의 기병인 가별초가 왜구를 섬멸하면서 이성계가 백성들의 우상으로 떠오르며 조선을 개국하는 기반을 쌓았다. 위화도 회군 전에 이미 이성계는 전쟁의 신으로 백성들에게 각인되어 있었다. 야심을 숨긴 촌놈 이성계를 최영은 얕보았고 결국 뒷통수를 맞으며 고려와 함께 최영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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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수군의 함포 장착으로 해상에서 우위를 점함으로서 왜구는 점차수그러들게 되었다. 고려말 수군의 함포의 전통은 그대로 조선 수군으로 이어져서 이순신의 튼튼하게 설계된 판옥선에는 수 십 대의 함포가 장착되어 있었고 조총과 일본도로 접근전을 하려는 왜선을 먼 거리에서 파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임란 후 250년 동안 재해권은 조선이 가지고 있었서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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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본은 1854년에 미국의 철선인 흑선에게 개항하고 철선과 함포를 만들며 해상에서 조선에 대하여 압도적인 우위를 가지고 조선을 먹기 시작하였다. 도쿠가와 막부를 메이지 유신으로 무너트리고 천왕 중심의 새로운 권력이 세워지며 일본은 일취월장하였으나 조선봉건왕조를 무너트릴 국민정부가 세워지지 못하고 60년을 허비한 것이 한반도에게는 불운이었다. 고종은 왕조국으로서 끝까지 돈 받고 벼슬을 팔아 먹으며 국민정부 성립을 방해하였고 최후에는 일본 천왕가의 일파로 조선왕가를 팔아 먹으며 일제 35년간에도 이씨 왕가의 기득권을 보존하려는 데만 혈안이 되었었다. 봉건 왕조국을 거부하고 미국식 국민 공화국을 주장하던 청년 이승만은 고종의 대한제국 치하에서 대역죄로 투옥되어 옥고를 치렀다. 한일합방의 위협속에 고종은 미국파 이승만을 감옥에서 풀어 주며 미국에 특사로 보내어서 미국의 도움을 청하였다. 특사로서 이승만은 루즈벨트를 만났으나 이미 일본에게 조선을 주고 필리핀을 미국이 차지한다는 기무라-테프트 협의를 마친 루즈벨트는 이승만의 도움 요청에 무관심으로 일관하였다. 한일합방이 되니 이승만은 미국에 남아서 독립운동을 하게 된다. 루즈벨트를 한 번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이승만은 이미 큰 인물이 되었고 후에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일제 35년의 공백기가 있었으나 조선 봉건왕조는 이승만의 민주주의 공화국으로 바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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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대까지도 벼슬을 팔아먹으며 나라의 기강이 무너질때로 무너진 조선은 철선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일제는 청일전쟁에서 이기면서 상국이 없어 진 조선을 먹기 시작하였다. 청이 무너지니 고종은 아관파천을 하여 러시아에 의지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러시아의 속셈도 부동항을 얻으려고 조선을 39도 선에서 일본과 나누어 가지려고 하였다. 러시아의 속셈을 알아차린 고종은 다시 환궁하였으나 냉혹한 국제 현실에 이미 때를 놓치고 망국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고종은 조선 이씨 왕가를 천왕가의 일파로 팔아 먹으며 일제 35년간에도 조선 왕가 일파의 기득권을 유지하혀고 하였다. 그의 아들 영친왕을 일본 귀족과 결혼시키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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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1904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며 영, 미의 허락하에 1905년 을사조약을 통하여 조선을 러일전쟁 승리의 전리품으로 차지하였다. 미국은 그 반대급부로 필리핀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였다. 지금도 영, 미, 일은 각각 기축 통화국이며 한 통속이고 한국은 그들의 종속 변수이다.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일본은 세계 열강들을 상대로 세계 정세를 주무르는 강대국의 일원이 되었다. 주위 4강 속에 한반도는 중립국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분단된 것이다. 일제가 원자탄에 순식간에 항복하니 그 틈을 타서 소련은 두만강을 넘어 한반도로 밀고 내려와서 오랜 숙원인 부동항을 확보하고 39도 보다 더 남쪽인 38도까지 지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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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유일한 원자탄의 보유국인 미국은 소련의 남진으로 허를 찔렸고
:38도선 이남으로 소련군이 진군하지 말 것을 소련에게 요구하였다. 당시에 미군의 최전방선은 오키나와에 있었다. 당시에 원자탄이 없었던 소련은 미국의 요구를 들어 줄 수 밖에 없었고 몇 일 간의 시간을 벌은 미군 하지 장군은 몇 일 후에야 겨우 남한에 진군할 수 있었다. 이로서 남,북 분단은 결정되었다. 소련은 오랜 숙원인 부동항을 얻었고 미국은 일본을 지키는 완충지대인 남한을 확보하며 대륙세력을 38도선에서 막을 수 있었다. 양 세력에게 한반도는 너무나 중요하였기에 전체를 상대방에게 줄 수는 없는 것이고 허리를 잘라서 나누어 가지게 되었다. 일본은 한반도의 분단을 즐겼고 중국과 소련은 북한이라도 되찾은 것에 만족하였다. 2,000년간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였던 중국은 더 이상 한반도 전체를 지배할 수 없었고 해양세력 미국에게 남한을 뺏겼다고 모택동은 억울해하였기에 6.25 전쟁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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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초기에 북한군이 수원을 넘어 오산에 밀려올 때 주일미군이 처음으로 참전하여 시간을 벌어 주었고 대전역에서는 미군이 전멸하면서 북한군의 남진을 지연시키면서 낙동강 전선을 만들며 인천상륙작전의 역전의 계기를 만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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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압록강을 앞에 두고 중공군이 개입하여 국제전이 되었고 1.4후퇴 때 서울을 다시 뺏기며 평택까지 밀렸으나 다시 서울을 회복시키고 휴전선까지 밀고 올라간 것은 미군과 유엔군의 힘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륙세력으로서 중공과 소련이 연합하였고 해양세력으로서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이 연합하였다. 6.25는 이와같이 국제전이었고 이전에도 한반도의 전쟁은 국제전의 양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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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와 북경을 보호하기 위하여 모택동은 언제가는 한 번 싸워야 할 상대인 미국과 싸우려면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땅인 한반도에서 이번에 싸우는 게 낫다 고 보고 압록강을 넘어 미국과의 전쟁을 선택하였다. 한반도의 분쟁에 유사이래로 중국이 개입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나 미국은 중국이 미국에게 덤비지는 못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모택동은 수 십 만 명의 자국 희생자를 내며 미국과 대결을 선택하여 언젠가는 한 번 겨루어 보아야 할 미국과 맞짱을 떳다. 양 대국은 결국 휴전선에서 휴전하며 상대를 육지에서는 완전히 제압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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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바다로 중국을 포위하며 제해권을 가지고 중국을 압박하는 것으로 패권유지는 충분하다고 보았다. 바다에서 미국이 중국을 완전히 제압하는 것만으로도 미국은 패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중국은 대륙에 갖히게 되었고 50년간 미국에게 포위되어 세계로 나오지 못했다. 중국이 바다로 나오게 미국이 허락해 준 것은 그 후 30년이 지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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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중국은 바다로 나오며 미국의 제해권에 도전하고 있으니 언젠
:가는 바다에서 제 2의 미중간의 충돌이 있을 것이고 그 장소는 남지나해가 될 것이다. 그 결과에 따라 태평양 바다를 어떻게 나눌 것인 지가 결정될 것이다. 지금은 미국의 압도적인 해군력에 중국이 감히 공격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패권은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중국은 미국 군함을 상대로 이겨는 것을 증명하지 않고는 세계 패권국의 지위에 오를 수가 없다. 이미 양국간의 패권전쟁은 예고되어 있으나 그 때가 언제일 지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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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 국민으로 산다는 것은 목숨을 잃을 확률이 매우 높다. 2차 대전 승전국인 미국, 소련, 영국도 수 백 만 명이 전사하였고 패전국인 일본, 독일은 더 많은 국민들이 죽었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한국전에서도 6만 명이 죽었고 베트남전에서는 더 많이 죽었다. 소련과의 냉전은 전쟁없이 소련이 스스로 러시아로 축소되며 양측 국민들의 죽음 없이 미국의 승리가 결정되었으나 오늘날 중국과 미국이 한 판 붙는다면 양측은 유사이래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다. 누가 이 싸움을 함부로 걸 것인가? 총칼로 싸우지 않고 적을 제압하는 것이 최상의 전술인 바 먼저 무역과 돈으로 우선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것으로 승부가 나지 않으면 태평양에서 무력 충돌은 불가피하다. 양국사이에 전쟁이 나면 승전국이라해도 전사자가 수 백 만 명은 넘을 것이다. 중국이 해군력에서 미국을 이길 수 있다면 중국은 바다에서 전쟁을 택할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상태로는 중국 해군이 미국 해군을 이길 수가 절대로 없기 때문에 입으로만 거칠게 말할 뿐이다. 패권은 입으로는 얻을 수가 없고 힘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으로 패권은 공짜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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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의 국민으로 산다는 것은 그 만큼 위험한 것으로 패권은 거져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수 많은 자국 국민이 죽고 나서 얻어지는 것이다. 일제도 러일 전쟁에서 수 십 만 명이 죽었고 태평양의 미국 패권에 도전하며 수 백 만 명의 일본인들이 전장터에서 개죽음을 당했지만 패권에는 실패하였다. 일제가 태평양의 패권에 도전했다고 미국은 원자탄까지 터트리며 끝까지 응징함으로서 패권국 미국의 무서움을 전 세계에 보여주었고 바다의 지배권은 어떠한 경우라도 넘겨주지 않는다는 것을 철저하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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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중국이 태평양을 나누자고 미국에게 덤빌 수가 있을까? 권력자들은 무고한 젊은이들을 전장터에 몰아 넣고 죽을 때까지 싸우라며 후퇴하면 뒤에서 총을 겨루고 있다. 사즉생이요 생즉사라며 이판사판으로 전장터의 젊은 병사들은 적진으로 뛰어 들고 운명을 하늘에 맞기게 된다. 젊은이들의 개죽음으로 산 사람들은 패권을 얻게 된다. 6.25때 육지에서 비긴 것처럼 바다에서도 비길 수 있다면 중국은 수 많은 자국 청년들의 죽음을 무릎쓰고라도 바다에서 미국과의 전쟁을 선택할 것이다. 바다에서 전쟁은 중국에게 전혀 승산이 없기 때문에 말로만 험하게 나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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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권국인 미국의 뒷바침 아래에서 일본을 모방하며 열심히 추격하여 해양세력의 일원이 된 한국은 잘 살게 되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시킨 선진국이 되었다. 미국의 허락하에 중국, 소련과도 외교 관계를 맺고 한국은 4강을 상대로 외교 및 무역을 하며 세계 10위권의 나라가 되었다. 지금도 미국의 뒷받침인 주한미군과 한국내 달러투자가 없어지면 한국은 하루 아침에 외환위기사태가 도래하여 국가 부도에 이르게 된다. 일본은 기축통화국이지만 한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니기 때문에 달러가 떠나면 바로 국가부도가 되어 거지나라가 된다. 중국의 변방 국가로 또 다시 전락하느냐, 아니면 일본처럼 탈 중국하여 세계 중심국가의 하나로 우뚝 서는냐의 문제는 우리가 하기 나름에 달려있다. 중국의 속국이나 일본의 속국으로 전락하지 않는 신의 한 수는 영토에 욕심이 없는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는 것이다. 다만 경제적으로는 인접국인 중국과 일본을 이용하여야 한다. 세계 패권국인 미국이 한국에 들어 온 것이 고종의 숙원이었는데
:일제 패망 후에 그 숙원은 저절로 얻어지게 되었으며 이 승만의 한 미 동맹 체결은 한국 부흥의 초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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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패권전쟁보다도 더 많은 인류를 죽음에 몰아 넣은 것은 역병
:이었다.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1차 세계대전보다도 더 많은 인류가 죽었고 중세의 흑사병으로 유럽인의 1/3이 죽어 나갔으며 천연두를 퍼트린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남미 원주민은 천연두로 거의 전멸하다시피하였다. 인류의 면역체계와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오늘날 코로나 바이러스가 출현하여 인류를 공격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높은 감염력으로 무장하고 나타나서 무차별적으로 인류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에 감염된 후 산 사람은 면역을 가지게 되며 생존하게 되고 죽은 사람은 몸속의 코로나와 함께 죽게 되었다. 많은 희생자를 낳고 인류는 또 한 번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겠지만 그 승리의 댓가는 약한 노인들의 수 많은 죽음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너 또한 한 때 창궐하였으나 인류는 그 일부를 희생시키고 코로나 바이러스를 곧 극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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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력 전쟁보다 무서운 역병과의 전쟁에 대비하여 평소에 과하다할 정도로 의료에 투자해 놓아야 한다는 또 한 번의 교훈을 주고 코로나도 때가 되면 사라질 것이다. 의료와 방역은 무력의 국방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코로나를 가르켜주고 있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전쟁에서는 병사들만 죽어 나가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는 무차별적으로 국민들을 감염시키기 때문에 더욱 더 무서운 것이다. 역병은 패권국이나 비패권국을 따지지 않고 국민들을 희생시킨다는 점이 더 무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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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에는 호남출신과 충청출신이 각각 1, 2위로 많다. 호남과 충청의 연합으로 수도권 국회의원 당선의 크나 큰 효과를 민주당이 보았으나 표 차이는 크지 않았다. 호남의 이낙연, 정세균 총리와 충청의 이해찬의 연합은 수도권 국회의원 당선에 맹위를 떨쳤지만 표차이는 크지 않았다. 비례 국회의원 수와 지지율을 보면 미래한국당이 19명의 국회의원과 34%의 지지를 가졌갔는데 더불어 시민당보다 높다. 이것은 대선에서는 어느 당도 압승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래통합당에는 충청을 대표할 만한 인물이 없었다. 34% 영남의 표만 가지고는 수도권 국회의원선거에서는 미통당은 무조건 패배이다. 어느 편이 이기든간에 대통령을 뽑는 대선에서는 이런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수도권에서 호남출신과 충청출신의 연합은 박빙의 수도권 국회의원 선거에서 크나 큰 위력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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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윤보선과의 최초의 대통령 선거에서 역사상 가장 근소한 차이인 단 10만 표 차이로 이겼는데 전남에서 10만 표를 더 받은 것이주효하였었다. 그런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전남을 배신하고 차별정책으로 일관하였다. 이에 전남은 김대중을 키웠다. 김종필은 이런 내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김대중이 4번 만에 대통령이 되는 데 큰 역할을 한 DJP 연합을 하여 전남인의 최초의 박정희 지지에 대한 빚를 다소나마 갚았다고 김종필은 생각하였다. 박정희는 충남의 김종필을 계속 중용하며 충남의 지지를 담보하였고 충북 옥천 출신의 육영수를 이미지를 이용하여 충북을 자기 편으로 붙잡아 두는 데 이용하였다. 그리하여 18년 장기집권이 가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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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충남의 이해찬과 충북의 현 비서실장을 이용하여 충청의 지지를 어느정도 확보하였고 이번 국회의원 선거의 수도권의 충청표를 많이 얻으며 호남과 충청의 연합으로 수도권에서 압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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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충청은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해왔다. 수도권의 인구 분포상 호남 출신과 충청출신이 1, 2위를 차지한다. 현 정권의 이해찬으로 상징되는 충청의 지분은 이번의 수도권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는 데 크나 큰 역할을 하엿다. 호남과 충청의 연합은 수도권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압승을 가져왔다. 그러나 양대 정당의 표 차이는 10%를 넘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 선거에서는 어느 쪽이든 압도적인 표차이가 나지 않는다. 1% 내지 2%의 차이로 승부가 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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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 출신의 낭만적인 노무현이 정권을 잃고 죽어 나가는 것을 똑바로 목격한 대졸출신 현실적인 문재인은 정권을 결코 잃지 않으려고 주도 면밀한 연출을 할 것이다. 이 시대 최고의 선거 전략가인 문재인을 이길 자가 현재로서는 없다 고 보아야 한다. 경북을 포위하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PK의 김두관이 유력한 후보로 출연할 것이다. 이 낙연은 부통령으로 귀결될 것이다. 호남과 PK 진보파와 충청의 3자 연합으로 경북을 포위할 것이다. 안철수를 살려두어서 보수의 분열을 유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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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에게 배반당한 이후에 호남은 연합의 중요성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그런 기술을 습득하였다. 대통령은 PK에 주고 당대표는 충청에게 주고 국무총리만 호남이 하는 식으로 연합의 방정식이 통하고 있다. 행정부와 사법부와 입법부를 완전 장악하였는데 다음 대선에서 민주당이 지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현실적이고 머리가 좋은 문재인은 낭만적인 노무현과는 다르다. 박정희의 호남 포위전략은 부메랑이 되어 김대중의 경북 포위전략으로 되돌아 왔으며 현 정권은 그 김대중의 공식을 가장 성공적으로 잘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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