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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함포 사격의 원조는 고려말 진포해전의 최무선의 함포
2020-03-29
이순신 함포의 시작은 고려 최무선이 고려말 진포 해전에서 왜구를 무치르며 처음으로 도입한 함포 사격에서 출발하였다.
 
역병의 유행은 무력 전쟁보다도 무서운 지옥의 문이다.
2020-03-29
역병의 유행은 무력 전쟁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다는 것을 코로나 바이러스는 알려주고 있다. 신은 새로운 역병을 통하여 인간을 또 다시 시험대에 올렸다. 전쟁은 인간이 서열을 정하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만드는 재앙이고 역병은 자연에 대한 파괴에 신의 경고의 일종이다.

2차세계대전말기의 독일과의 벌지 전투에서만 8만명의 미군이 사망하였는데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당시 청년으로 이 전투에서 살아남았으나 그 동료들이 벌지에서 죽어나가는 것을 보며 지옥의 문을 보았다고 하였다. 인간이 만든 지옥의 문에서 승리한 미국은 패권을 잡았다. 벌지 전투에서 독일군은 10만명이 죽었다. 벌지 전투에서 살아남은 키신저가 90세가 넘는 나이에 또 하나의 지옥인 코로나 바이러스 폐염으로 미국인들이 사망하는 것을 보고 벌지 전투보다도 무서운 것이 코로나 역병이라고 일갈하였다. 인류가 대량으로 사망하는 경우는 역병과 무력전쟁과 재해이다. 역병은 강대국 국민이나 약소국 국민을 구별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감염시켜 전 세계인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으며 세계 경제를 무차별적으로 망가트리고 있다.

패권을 잡기 위한 강대국의 국민으로 태어나서 미국 청년들은 꽃도 펴보지도 못하고 타국의 전장터에서 생명을 잃은 경우가 매우 많았다. 2차 세계대전에서 유럽전쟁과 태평양전쟁에서 겨우 살아 남은 미국의 젊은이들은 5년 후에 또다시 6.25 한국전쟁에서 6만명이 죽었고 베트남 전쟁에서 또 10만명 이상이 죽었다. 이와같이 패권은 결코 공짜로 얻어 지는 것이 아니다. 전쟁도 하나의 극단적인 외교 행동으로서 언어 외교로서 해결이 안 되는 갈등은 전쟁외교로 결정이 되게 되어있다. 외교는 누가 1등을 하느냐를 결정하는 행위이며 1등은 패권을 가지게 된다.

이와같이 평소에 의료와 방역에 투자하는 것은 국방에 투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과하다고 생각할 만큼 평소에 의료와 방역에 투자해 놓아야 한다는 진리를 코로나 바이러스는 알려주고 있다. 인간과의 싸움인 전쟁보다 신과의 싸움인 역병이 더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인간에게 또 하나의 지옥인 전쟁의 역사를 되돌아 보는 것도 중요하다. 이순신 함포의 위력은 고려말에 최무선이 금강 입구 진포 해전에서 왜구를 무치르며 처음으로 도입한 함포 사격에서 출발하였다.

고려말에 왜구의 침입은 수도인 개경과 강화도를 침입할 정도로 극악스러웠다. 663년 동진강 포구 백강전쟁에서 3만 명의 왜국 수군들이 당나라 수군과 동북아 패권 전투를 한 이래로 최대규모인 2만 명의 왜구가 고려말에 무려 500척을 이끌고 금강 하구 진포에 칩입하였다. 고려는 100척에 불과한 함선을 이끌고 최무선이 진포해전에 임하였는데 함선에 함포를 장착하고 함포가 없는 왜구의 함선을 먼 거리에서 포탄으로 가격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배가 파괴되니 왜구는 육지로 상륙하여 노략질을 하였는데 육지에서는 이성계의 기병인 가별초가 왜구를 섬멸하면서 이성계가 백성들의 우상으로 떠오르며 조선을 개국하는 기반을 쌓았다. 위화도 회군 전에 이미 이성계는 전쟁의 신으로 백성들에게 각인되어 있었다. 최영은 이성계의 야심을 눈치채지 못하였다.

고려 수군의 함포 장착으로 해상에서 우위를 점함으로서 왜구는 점차수그러들게 되었다. 고려말 수군의 함포의 전통은 그대로 조선 수군으로 이어져서 이순신의 튼튼하게 설계된 판옥선에는 수 십 대의 함포가 장착되어 있었고 조총과 일본도로 접근전을 하려는 왜선을 먼 거리에서 파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임란 후 250년 동안 재해권은 조선이 가지고 있었서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1854년에 미국 페리제독의 철선인 흑선에게 개항하고 철선과 함포를 만들며 해상에서 조선에 대하여 압도적인 우위를 가지고 조선을 먹기 시작하였다. 도쿠가와 막부를 메이지 유신으로 무너트리고 천왕 중심의 새로운 권력이 세워지며 일본은 일취월장하였으나 조선봉건왕조를 무너트릴 국민정부가 세워지지 못하고 60년을 허비한 것이 한반도에게는 불운이었다. 고종은 왕조국으로서 끝까지 돈 받고 벼슬을 팔아 먹으며 국민정부 성립을 방해하였고 최후에는 일본 천왕가의 일파로 조선왕가를 팔아 먹으며 일제 35년간에도 이씨 왕가의 기득권을 보존하려는 데만 혈안이 되었었다. 봉건 왕조국을 거부하고 미국식 국민 공화국을 주장하던 청년 이승만은 고종의 대한제국 치하에서 대역죄로 투옥되어 옥고를 치렀다. 한일합방의 위협속에 고종은 미국파 이승만을 감옥에서 풀어 주며 미국에 특사로 보내어서 미국의 도움을 청하였다. 대한제국의 특사로서 이승만은 루즈벨트를 만났으나 이미 일본에게 조선을 주고 필리핀을 미국이 차지한다는 기무라-테프트 협의를 마친 루즈벨트는 이승만의 도움 요청에 무관심으로 일관하였다. 한일합방이 되니 이승만은 미국에 남아서 독립운동을 하게 된다. 루즈벨트를 한 번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이승만은 이미 큰 인물이 되었고 후에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일제 35년의 공백기가 있었으나 조선 봉건왕조는 이승만의 민주주의 공화국으로 바뀌게 되며 국민이 주인인 대한민국은 미국의 지원아래 비로소 늦게 나마 탄생하였다.

1890년대까지도 나라의 기강이 무너져 외척에 의한 부정부패에 쪄든 조선은 철선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일제는 청일전쟁에서 이기면서 상국이 없어 진 조선을 먹기 시작하였다. 청이 무너지니 고종은 아관파천을 하여 러시아에 의지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러시아의 속셈도 부동항을 얻으려고 조선을 39도 선에서 일본과 나누어 가지려고 하였다. 러시아의 속셈을 알아차린 고종은 믿을 나라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다시 환궁하였으나 미국과 영국은 이미 일본편이 되어 있는 냉혹한 국제 현실에 이미 때를 놓치고 일본에게 망국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불가항력의 고종은 마지막으로 조선 이씨 왕가를 일본 천왕가의 일파로 팔아 먹으며 일제 35년간에도 조선 왕가 일파의 기득권을 유지하려고만 하였다. 그의 아들 영친왕을 일본 귀족과 결혼시키기도 하였다. 일제는 고종을 구슬러서 이씨 왕가의 최소한의 기득권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하고 한일합방을 마침내 성공시켰다. 고종은 나름 러시아, 미국의 속내를 파악하려고 하였으나 러시아도 39도 이북을 먹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한일합방은 불가항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이 완용 등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는 연극을 하였다. 사실은 이완용 등은 고종의 뜻을 알아차리고 고종의 뜻대로 했을 뿐이다. 왕이 주인인 왕조국에서 왕이 나라를 포기하겠다는데 신하가 어찌 하겠는가? 주인이 팔아먹겠다느데 하인이 이를 막을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일제는 1904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며 39도 이북을 먹으려는 러시아를 꺽고 영, 미의 허락하에 1905년 을사조약을 통하여 조선 전체를 러일전쟁 승리의 전리품으로 차지하였다.
청일전쟁에서는 너무 쉽게 일제가 큰 희생없이 이겼다. 그러나 일제는 러일전쟁에서 승리는 하였으나 만주와 몽골에서 20만명의 젊은이들이 전사하는 큰 희생이 따랐다. 몽골 고지대 초원 평원에서 일본군은 러시아의 기관단총에 크게 패하니 일본군은 만만한 중국본토로 기수를 돌려서 황하강과 양쯔강을 점령하였다. 미국의 입장에서 조선과 만주 정도는 일본에게 줄 수 있으나 중국 본토까지 일본에게 준다면 아시아에서 일본이 너무 커지기 때문에 미국은 일본을 견제하기 시작하였고 석유와 철강을 더 이상 일본에게 판매하지 않게 되었다. 이에 일제는 미국과 한 판을 붙으려고 진주만을 기습공격하였다. 미국은 태평양 패권을 지키기 위하여 전면전으로 치고 나와 이른바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었다. 해양세력의 1등 국가를 결정하기 위한 해양세력 내의 일종의 내전이 시작된 것이다. 기회주의자인 소련은 먼 발치에서 미일간의 태평양 전쟁을 즐기면서 패자가 결정되기만을 기다렸고 일제가 원자탄을 맞고 패전이 임박하니 일제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개입하며 숟가락을 들고 숙원이던 북한과 만주를 점령하였다. 원자탄 2발을 맞고 일본천왕의 너무 빠른 무조건 항복으로 소련은 일본 북부에 진군할 기회를 놓쳤고 일본은 미국에게 전적으로 점령되며 분단되지 않게 되었고 소련군이 일본열도 대신에 만주와 북한으로 내려와서 차지하게 되었고 한반도는 분단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소련은 만주도 독립국으로 만들어 중국의 분단을 시도하였으나 모택동의 의지때문에 실패하였다. 소련과 미국은 중국이 양쯔강을 경계로 북 중국의 모택동과 남 중국의 장개석의 나라로 분단시키려고 하여 중국의 힘을 빼려고 하였으나 모택동의 의지에 의하여 대륙 분단시도는 실패하였다.

러일전쟁의 결과로 일본에게 조선을 주고 미국은 그 반대급부로 필리핀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였다. 지금도 영, 미, 일은 각각 기축 통화국이며 한 통속이고 한국은 그들의 종속 변수이다.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일본은 세계 열강들을 상대로 세계 정세를 주무르는 강대국의 일원이 되었다. 주위 4강 속에 한반도는 중립국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분단된 것이다. 일제가 원자탄에 순식간에 항복하니 그 틈을 타서 소련은 두만강을 넘어 한반도로 밀고 내려와서 오랜 숙원인 부동항을 확보하고 원래 의도했던 39도 보다 더 남쪽인 38도 이북을 지배하였다. 미국은 태평양을 지배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태평양은 미국의 거대한 호수가 되었다 라고 맥아더는 미 의회에서 포효하였다. 북한 정도의 작은 땅을 소련에게 떼어 준 것을 미국은 게의치 않았다. 미국은 거대한 태평양만 먹으면 되니까. 그러나 일본을 지키기 위하여 38도 이남의 남한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었는데 김 일성은 그와같은 국제정세를 잘 못 오판하여 무모한 6.25 전쟁을 일으켰고 한반도는 잿더미가 되었다.

스탈린은 6.25 전쟁을 통하여 중국과 미국의 힘을 동시에 빼려는 음모를 가지고 있었고 중국은 실제로 6.25 종전 후 30년간 미국에게 포위되어 세계로 나오지 못하고 중국대륙에 갇혀 있게 되었다. 등소평은 소련의 음모를 깨닫고 미국에게 다가서며 봉쇄를 풀며 중국이 세계사의 강자로 등장하엿다. 그 사이에 소련은 러시아로 축소되었고 소련은 경쟁에서 뒤쳐지게 되며 중국에게 세계 2위의 지위를 넘겨주게 되었다. 중국 내륙으로 들어 가서는 어느 나라든 승리할 수가 없다는 것을 일제가 체험하였고 미국도 잘 안다. 다만 해양으로 나온 중국을 제압하는 것은 지금도 어렵지 않다는 것이 미국의 행복이고 패권 유지의 원동력이다.

일제 항복 당시 유일한 원자탄의 보유국인 미국은 소련의 남진으로 허를 찔렸고 38도선 이남으로 소련군이 진군하지 말 것을 소련에게 요구하였다. 당시에 미군의 최전방선은 오키나와에 있었다. 당시에 원자탄이 없었던 소련은 미국의 요구를 들어 줄 수 밖에 없었고 몇 일 간의 시간을 벌은 미군 하지 장군은 몇 일 후에야 겨우 남한에 진군할 수 있었다. 그 몇 일 간은 남한의 일본군이 소련군의 남진을 막고 있었다. 남한의 일본군의 하지 장군의 미군에게 남한을 인계하고 부산을 통하여 철수하였다. 이로서 남,북 분단은 결정되었다. 소련은 오랜 숙원인 부동항을 얻었고 미국은 일본을 지키는 완충지대인 남한을 확보하며 대륙세력을 38도선에서 막을 수 있었다.

양 세력에게 한반도는 너무나 중요하였기에 전체를 상대방에게 줄 수는 없는 것이고 허리를 잘라서 나누어 가지게 되었다. 일본은 한반도의 분단을 즐겼고 중국과 소련은 북한이라도 되찾은 것에 만족하였다. 2,000년간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였던 중국은 더 이상 한반도 전체를 지배할 수 없었고 해양세력 미국에게 남한을 뺏겼다고 모택동은 억울해하였기에 6.25 전쟁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청나라는 여진족과 조선족이 거주한 연해주를 소련에게 이미 빼앗겼다. 러시아는 청나라와 영토 전쟁에서 연해주 블리디보스톡이라는 태평양의 항구와 사할린 섬을 얻었다. 태평양 전쟁의 결과로 일본이 가장 큰 손해를 보았고 미국과 소련이 큰 이익을 보았다. 중국은 본전을 하였다. 한국과 북한은 남의 힘을 빌려서 일본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기 때문에 큰 이익을 보았다.

6.25 초기에 북한군이 수원을 넘어 오산에 밀려올 때 주일미군이 처음으로 참전하여 시간을 벌어 주었고 대전역에서는 미군 2사단이 전멸하면서 미군 사단장이 포로가 되도록 싸우며 북한군의 남진을 지연시키면서 낙동강 전선을 만들며 인천상륙작전의 역전의 계기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압록강을 앞에 두고 중공군이 개입하여 국제전이 되었고 1.4후퇴 때 서울을 다시 뺏기며 평택까지 밀렸으나 다시 서울을 회복시키고 휴전선까지 밀고 올라간 것은 미군과 유엔군의 힘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륙세력으로서 중공과 소련이 연합하였고 해양세력으로서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이 연합하였다. 6.25는 이와같이 국제전이었고 이전에도 한반도의 전쟁은 국제전의 양상이었다.

만주와 북경을 보호하기 위하여 모택동은 언제가는 한 번 싸워야 할 상대인 미국과 싸우려면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땅인 한반도에서 이번에 싸우는 게 낫다 고 보고 압록강을 넘어 미국과의 전쟁을 선택하였다. 한반도의 분쟁에 유사이래로 중국이 개입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나 미국은 중국이 미국에게 덤비지는 못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모택동은 수 십 만 명의 자국 희생자를 내며 미국과 대결을 선택하여 언젠가는 한 번 겨루어 보아야 할 미국과 맞짱을 떳다. 양 대국은 결국 휴전선에서 휴전하며 상대를 육지에서는 완전히 제압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은 바다로 중국을 포위하며 제해권을 가지고 중국을 압박하는 것으로 패권유지는 충분하다고 보았다. 바다에서 미국이 중국을 완전히 제압하는 것만으로도 미국은 패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중국은 대륙에 갖히게 되었고 50년간 미국에게 포위되어 세계로 나오지 못했다. 중국이 바다로 나오게 미국이 허락해 준 것은 그 후 30년이 지나서였다.


최근에 중국은 바다로 나오며 미국의 제해권에 도전하고 있으니 언젠
가는 바다에서 제 2의 미중간의 충돌이 있을 것이고 그 장소는 남지나해가 될 것이다. 그 결과에 따라 태평양 바다를 어떻게 나눌 것인 지가 결정될 것이다. 지금은 미국의 압도적인 해군력에 중국이 감히 공격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패권은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중국은 미국 군함을 상대로 이겨는 것을 증명하지 않고는 세계 패권국의 지위에 오를 수가 없다. 이미 양국간의 패권전쟁은 예고되어 있으나 그 때가 언제일 지는 모른다. 독일의 히틀러와
일제를 자기 위하여 미국과 소련이 연합하였듯이 언젠가는 중국을 잡기 위하여 미국과 영연방과 일본과 소련이 연합할 것이다. 세 불리를 느끼고 중국이 알아서 기어 주는 것이 가장 좋은 시나리오지만
중국이 오판한다면 전쟁은 불가피하다. 연합국과 중국의 대결의 결과는 자명하다.


강대국 국민으로 산다는 것은 목숨을 잃을 확률이 매우 높다. 2차 대전 승전국인 미국, 소련, 영국도 수 백 만 명이 전사하였고 패전국인 일본, 독일은 더 많은 국민들이 죽었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한국전에서도 6만 명이 죽었고 베트남전에서는 더 많이 죽었다. 소련과의 냉전은 전쟁없이 소련이 스스로 러시아로 축소되며 양측 국민들의 죽음 없이 미국의 승리가 결정되었으나 오늘날 중국과 미국이 한 판 붙는다면 양측은 유사이래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다. 누가 이 싸움을 함부로 걸 것인가? 총칼로 싸우지 않고 적을 제압하는 것이 최상의 전술인 바 먼저 무역과 돈으로 우선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것으로 승부가 나지 않으면 태평양에서 무력 충돌은 불가피하다. 양국사이에 전쟁이 나면 승전국이라해도 전사자가 수 백 만 명은 넘을 것이다. 중국이 해군력에서 미국을 이길 수 있다면 중국은 바다에서 전쟁을 택할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상태로는 중국 해군이 미국 해군을 이길 수가 절대로 없기 때문에 입으로만 거칠게 말할 뿐이다. 패권은 입으로는 얻을 수가 없고 힘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으로 패권은 공짜가 결코 아니다.

강대국의 국민으로 산다는 것은 그 만큼 위험한 것으로 패권은 거져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수 많은 자국 국민이 죽고 나서 얻어지는 것이다. 일제도 러일 전쟁에서 수 십 만 명이 죽었고 태평양의 미국 패권에 도전하며 수 백 만 명의 일본인들이 전장터에서 개죽음을 당했지만 패권에는 실패하였다. 일제가 태평양의 패권에 도전했다고 미국은 원자탄까지 터트리며 끝까지 응징함으로서 패권국 미국의 무서움을 전 세계에 보여주었고 바다의 지배권은 어떠한 경우라도 넘겨주지 않는다는 것을 철저하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중국이 태평양을 나누자고 미국에게 덤빌 수가 있을까? 권력자들은 무고한 젊은이들을 전장터에 몰아 넣고 죽을 때까지 싸우라며 후퇴하면 뒤에서 총을 겨루고 있다. 사즉생이요 생즉사라며 이판사판으로 전장터의 젊은 병사들은 적진으로 뛰어 들고 운명을 하늘에 맞기게 된다. 젊은이들의 개죽음으로 산 사람들은 패권을 얻게 된다. 6.25때 육지에서 비긴 것처럼 바다에서도 비길 수 있다면 중국은 수 많은 자국 청년들의 죽음을 무릎쓰고라도 바다에서 미국과의 전쟁을 선택할 것이다. 바다에서 전쟁은 중국에게 전혀 승산이 없기 때문에 말로만 험하게 나올 뿐이다.

패권국인 미국의 뒷바침 아래에서 일본을 모방하며 열심히 추격하여 해양세력의 일원이 된 한국은 잘 살게 되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시킨 선진국이 되었다. 미국의 허락하에 중국, 소련과도 외교 관계를 맺고 한국은 4강을 상대로 외교 및 무역을 하며 세계 10위권의 나라가 되었다. 지금도 미국의 뒷받침인 주한미군과 한국내 달러투자가 없어지면 한국은 하루 아침에 외환위기사태가 도래하여 국가 부도에 이르게 된다. 일본은 기축통화국이지만 한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니기 때문에 달러가 떠나면 바로 국가부도가 되어 거지나라가 된다. 중국의 변방 국가로 또 다시 전락하느냐, 아니면 일본처럼 탈 중국하여 세계 중심국가의 하나로 우뚝 서는냐의 문제는 우리가 하기 나름에 달려있다. 중국의 속국이나 일본의 속국으로 전락하지 않는 신의 한 수는 영토에 욕심이 없는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는 것이다. 다만 경제적으로는 인접국인 중국과 일본을 이용하여야 한다. 세계 패권국인 미국이 한국에 들어 온 것이 고종의 숙원이었는데
일제 패망 후에 그 숙원은 저절로 얻어지게 되었으며 이 승만의 한 미 동맹 체결은 한국 부흥의 초석이 되었다.

그런데 패권전쟁보다도 더 많은 인류를 죽음에 몰아 넣은 것은 역병
이었다.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1차 세계대전보다도 더 많은 인류가 죽었고 중세의 흑사병으로 유럽인의 1/3이 죽어 나갔으며 천연두를 퍼트린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남미 원주민은 천연두로 거의 전멸하다시피하였다. 인류의 면역체계와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오늘날 코로나 바이러스가 출현하여 인류를 공격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높은 감염력으로 무장하고 나타나서 무차별적으로 인류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에 감염된 후 산 사람은 면역을 가지게 되며 생존하게 되고 죽은 사람은 몸속의 코로나와 함께 죽게 되었다. 많은 희생자를 낳고 인류는 또 한 번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겠지만 그 승리의 댓가는 약한 노인들의 수 많은 죽음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너 또한 한 때 창궐하였으나 인류는 그 일부를 희생시키고 코로나 바이러스를 곧 극복할 것이다.

무력 전쟁보다 무서운 역병과의 전쟁에 대비하여 평소에 과하다할 정도로 의료에 투자해 놓아야 한다는 또 한 번의 교훈을 주고 코로나도 때가 되면 사라질 것이다. 의료와 방역은 무력의 국방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코로나를 가르켜주고 있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전쟁에서는 병사들만 죽어 나가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는 무차별적으로 국민들을 감염시키기 때문에 더욱 더 무서운 것이다. 역병은 패권국이나 비패권국을 따지지 않고 국민들을 희생시킨다는 점이 더 무서운 것이다.

박정희의 호남 차별화 정책은 호남인들이 먹고 살기 위하여 수도권으로 대거 이주하며 수도권을 점령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 왔다. 의석수가 가장 많은 수도권의 국회의원 선거는 민주당이 유리한 구도가 되도록 박정희의 호남차별화가 만든 것이다. 수도권에는 호남출신과 충청출신이 각각 1, 2위로 많다. 호남과 충청의 연합으로 수도권 국회의원 당선의 크나 큰 효과를 민주당이 보았으나 표 차이는 압도적이지는 않았다. 호남의 이낙연, 정세균 총리와 충청의 이해찬의 연합은 수도권 국회의원 당선에 맹위를 떨쳤다. 비례 국회의원 수와 지지율을 보면 미래한국당이 19명의 국회의원과 34%의 지지를 가졌갔는데 더불어 시민당보다 높다. 이것은 대선에서는 어느 당도 압승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래통합당에는 충청을 대표할 만한 인물이 없었다. 34% 영남의 표와 소수 보수 표만 가지고는 수도권 국회의원선거에서는 미통당은 무조건 패배이다. 어느 편이 이기든간에 대통령을 뽑는 대선에서는 이런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수도권에서 호남출신과 충청출신의 연합은 박빙의 수도권 국회의원 선거에서 크나 큰 위력을 가진다.

박정희의 쿠테타는 군부 친일세력에 의한 쿠테타였다. 박정희는 철저히 점조직으로 장차의 쿠테타 군을 관리하였는데 1개 사단 병력도 안 되는 3,600명의 쿠테타 군을 이끌고 서울을 점령함으로서 장면은 저항도 못하고 도망가며 무너졌다. 그전에 박정희는 서울을 방어하는 5사단장을 하였는데 이 때 서울의 중요 지점에 대한 정보를 모두 파악하였다가 쿠테타에 활용하였다. 정치권력을 잡은 박정희 소장은 이북 출신이 장악하고 있던 군부를 농락하였다. 키가 왜소한 박정희는 키가 작은 나폴레옹이 군인에서 황제가 되는 것을 보고
나폴레옹을 흠모하였으며 나폴레옹 처럼 포병장교가 되었었다. 박정희의 왜소하고 볼품없는 외모는 상대로 하여금 긴장을 풀게 하는 위장의 효과가 있었다. 박정희의 야심은 그의 왜소하고 볼품없는 외모로 인하여 잘 감추어졌고 박정희는 견제나 의심을 받지 않고 쿠테타 준비를 할 수 있었고 결국에는 쿠테타에 성공하였다. 볼품없는 사람을 더욱 조심했어야 한다는 고래의 교훈은 장면이나 당시 군부 수뇌부에게는 떠오르지 않았고 마침내 그들이 무시한 볼품없는 사람의 기습에 장면정권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장면은 당시 참모총장에게 속았다 고 하지만 장면은 직접 쿠테타 정보를 받고도 그 정보를 애써 무시하다가 박정희의 기습을 당한 것이다.

미국은 세계전략상 일본과 한국이 서로 잘 지내기를 바랐으나 독립투사 이승만 정권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였다. 6.25를 거치며 친일세력인 군부는 여러번 쿠테타를 모의하였으나 이승만의 권위 때문에 실행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윤보선-장면 정권이 들어서자 군부는 이승만의 정치 권위의 통제에서 벗어났고 마침내 기회주의자 박정희는 승진을 더 하지 못하여 군복을 벗을 위기 속에서 이판사판의 승부수인 쿠테타를 일으켰다. 만주군 장교출신이며 일본육사를 유학한 친일 박정희 정권을 일본은 환영하였고 키워주었다. 이로서 남한은 또 다시 일본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 갔고 친일파들은 노골적으로 전면에 나섰다. 독립운동파는 3대가 못 사는 구조에 함몰되어갔다.

박정희는 윤보선과의 최초의 대통령 선거에서 역사상 가장 근소한 차이인 단 10만 표 차이로 이겼는데 전남에서 10만 표를 더 받은 것이주효하였었다. 그런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전남을 배신하고 차별정책으로 일관하였다. 특히 장군 승진에서 극단적인 차별이 있었고 행정부에서도 차별이 노골적이었으며 파급효과로 경제 권력도 호남과 거리가 멀었다. 할 수 없이 호남의 인재들은 차별이 덜한 사법부로 몰려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의과대학 진학에 대한 선호도가 타지역보다 높았다. 박정희의 18년 호남차별은 마침내 광주 5.18 내전이 발생하였고 수 많은 양민이 희생되었다. 분노한 호남은 김대중을 더 키웠고 35년의 호남차별에 대한 항전으로 마침내 5.18후 17년만에 정권을 잡았다. 김종필은 이런 내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김대중이 4번 만에 대통령이 되는 데 큰 역할을 한 DJP 연합을 하여 전남인의 최초의 박정희 지지에 대한 빚를 다소나마 갚았다고 김종필은 생각하였다. 박정희는 충남의 김종필을 계속 중용하며 충남의 지지를 담보하였고 충북 옥천 출신의 육영수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충북을 자기 편으로 붙잡아 두는 데 이용하였으며 호남 포위 전략을 구사하였다. 그리하여 18년 장기집권이 가능하였다.

박정희는 김대중이나 김영삼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박정희는 군부나 측근들의 모반이 제일 두려웠다. 그의 예상은 맞아 떨어져서 측근인 김재규에게 암살당하고 말았다. 망해도 3년을 간다는 속설대로 경북 정권은 전두환, 노태우 정권으로 3대를 더 누리다가 경남 정권인 김 영삼으로 이전되었다. 그리고 imf가 왔고 김대중은 4수의 천신만고 끝에 진보파 호남 정권을 만들어 냇다. 그리고 그는 김대중의 법칙인 진보파의 경북포위 전략을 완성시켰다. 즉, 부산 출신 노무현을 세워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였다. 그의 공식은 지금도 유효하게 적용되고 있고 진보정권은 15년을 진행중이다. 경북 보수정권은 35년을 지속하며 권력과 재력을 다 차지하며 특권을 누렸고 지금도 그에 대한 향수는 보수당에 대한 지지로 나타나고 있다.

김대중은 역으로 경북 포위 전략을 창조하여 진보파의 집권 방정식을 창안하여서 물려주었는데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후에 그것을 따르지 않아서 정권을 잃었고 문재인은 김대중의 경북 포위 방정식을 충실히 따르며 전국 선거에서 3연승을 하였고 4연승을 앞에 두고 있다.

문재인은 충남의 이해찬과 충북의 현 비서실장을 이용하여 충청의 지지를 어느정도 확보하였고 이번 국회의원 선거의 수도권의 충청표를 많이 얻으며 호남과 충청의 연합으로 수도권에서 압승하였다. 경북은 포위되어 가고 있다.

정권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충청은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해왔다. 수도권의 인구 분포상 호남 출신과 충청출신이 1, 2위를 차지한다. 현 정권의 이해찬으로 상징되는 충청의 지분은 이번의 수도권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는 데 크나 큰 역할을 하엿다. 호남과 충청의 연합은 수도권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압승을 가져왔다. 그러나 양대 정당의 표 차이는 10%를 넘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 선거에서는 어느 쪽이든 압도적인 표차이가 나지 않는다. 1% 내지 2%의 차이로 승부가 갈릴 것이고 이번에는 3부를 장악한 진보가 유리하다.

상고 출신의 낭만적인 노무현이 대학을 안 나와서 대학 군단의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정권을 잃고 죽어 나가는 것을 똑바로 목격한 대졸출신 현실적인 문재인은 대학 군단과 함께 정권을 결코 잃지 않으려고 주도 면밀한 연출을 할 것이다. 이 시대 최고의 선거 전략가인 문재인을 이길 자가 현재로서는 없다 고 보아야 한다. 경북을 포위하는 전략은 현재도 미래도 유효하다. 민주당에서 PK의 김두관이 유력한 후보로 출연할 것이다. 이 낙연은 부통령으로 귀결될 것이다. 호남과 PK 진보파와 충청의 3자 연합으로 경북을 포위할 것이다. 안철수를 살려두어서 보수의 분열을 유도할 것이다.

호남 포위 전략을 사용한 박정희에게 배반당한 이후에 호남은 연합의 중요성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그런 권력을 나누는 기술을 습득하였다. 대통령은 PK에 주고 당대표는 충청에게 주고 국무총리만 호남이 하는 식으로 연합의 방정식이 통하고 있다. 진보파가 행정부와 사법부와 입법부를 완전 장악하였는데 다음 대선에서 민주당이 지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현실적이고 머리가 좋고 대학군단을 가진 문재인은 서울에 있는 인 서울 대학을 나왔고 아무런 대학의 뿌리가 없는 상고 출신 낭만적인 노무현과는 다르다. 통합당에는 인재가 아직 안 보인다.

4수 만에 천신만고의 대통에 당선된 김 대중은 당시의 최고의 선거전문가가 되어 있었고 노무현을 당선시키는 김대중의 공식을 만들어 내며, 문재인의 당선에도 김대중의 법칙이 사용되었다. 소위 경북 포위 작전이다. 진보 정권의 메카가 된 광주는 연합의 많은 기술을 연마하며 대통을 PK 진보파에 양보하고 당대표와 비서실장을 충청에 양보하는 전략을 구사하여 국회의원 선거에서 또 다시 압승을 하며 경북 포위 전략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의 최고의 선거 전략가가 된 문재인은 노무현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고 민주당도 정권관리에 많이 세련되어 가며 소수가 된 보수파에 대하여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선거 전략가인 서울대 운동권의 브레인인 이 해찬이 버티고 있다.

노무현이 문재인 만큼만 잘 생기고 능글능글 웃으며 상대를 가지고 노는 능력을 가졌다면 정권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보수를 기웃거린 죄와 못 생긴 죄를 지은 노무현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며 죽음의 길로 들어 섰고 그로부터 교훈을 얻은 문재인은 진영논리로 재무장하고 만면의 웃음으로 중도파를 끌어 안으며 보수를 소수로 밀어내고 경북을 포위하며 선거의 달인의 경지에 올랐다. 지방선거, 총선의 압승에 이어 다음 대선에서도 진보파의 압승이 보인다. 연합의 묘수를 가지고 소수파 보수를 가지고 놀 수 있는 역량을 함양하였다. 선거의 달인인 이해찬이 충청을 대표하여 참가하고 있고 PK 진보파가 대권 후보에 망라되고 있으며 수도권의 호남출신과 현재 호남 거주인의 대다수가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다. 이번에는 정권을 잃지 않을 것이고 경북 포위의 방정식은 또 다시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진보파들도 정권을 관리하고 재창출하는데 진화하여 세련되고 있기에 정권을 잃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 역병
2020-05-07
가장 단순한 생물인 바이러스와 가장 고등 생물인 인간의 싸움은 그 역사가 깊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도전에 인간은 머리로서 대응하는 유일한 동물인데 인간의 머리는 시간이 걸릴 뿐, 코로나 바이러스를 잡아 낼 것이다. 수 많은 역경을 이기고 지구상의 지배자가 된 인간에게 마지막 남은 적은 가장 단순한 생물인 바이러스만 남았다.
대개 역병은 전쟁중에 유행하였다. 유럽을 원정한 몽고군은 흑사병을 유럽에 주고 흑사병이 무서워서 홀연히 철수하였다. 신의 저주라고 둘러 붙인 역병은 대개는 미생물, 특히 바이러스가 그 원인임이 밝혀지면서 인간은 지구상에 절대자로 군림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왔고 코로나 바이러스도 결국에는 잡힐 것이다.

인간간에 전쟁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지옥의 문이지만 인간사에서는 전쟁은 피할 수 없었고 앞으로도 피할 수 없다. 고려의 멸망은 왜구의 침입와 중국의 황건적의 침입으로부터 시작되었고 고려 조정의 무능력이 적나라하게 나타나며 역성혁명의 씨앗은 이미 잉태되었다. 고려말 육지에서는 이성계의 기병인 가별초가 왜구를 섬멸하면서 이성계가 백성들의 우상으로 떠오르며 조선을 개국하는 기반을 쌓았다. 위화도 회군 이전에 이미 이성계는 전쟁의 무신으로 백성들에게 각인되어 있었다. 야심을 숨긴 촌놈 무장 이성계를 최영은 얕보았고 결국 뒷통수를 맞으며 고려와 함께 최영은 사라졌다. 이성계는 그의 야심을 함경도 촌놈의 외모에 철저히 숨기며 위장하였고 최영은 철저히 속으며 이성계에게 위화도 회군의 기회를 주고 말았다. 이성계는 문벌귀족으로부터 뺏은 토지를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며 민심을 얻고 마침내 왕씨들을 다 죽이면서 조선을 개국하였다. 명나라를 사대하는 댓가로 여진족의 땅이었던 함경북도를 조선의 땅으로 인정받았다. 이성계의 고조부는 전라도 전주 이씨 이름은 이안사인데 전주목사와 술자리에서 기생때문에 싸우고 전주를 떠나 삼척으로 피신 이주하였다가 그 전주목사가 강원도로 부임하게 되니 또 다시 삼척을 떠나 당시 원나라 땅이던 함경도 함흥으로 망명하여 정착하고 원나라의 무장이 되어서 도전적인 삶을 개척하였다. 이성계의 증조부는 두만강 유역의 함경북도까지 옮겨 다니며 살았기에 두만강 유역에 대한 조선의 집착은 강하였다. 이 증조부는 려몽 연합군의 일본 침략에도 무장으로 참여하였다가 살아서 돌아왔다. 이 성계의 부친인 이자춘은 원나라를 배신하고 고려로 귀의하며 동북면(함흥)을 고려의 땅으로 가져왔고 이성계를 무장으로 키워냇으며 중앙 정계에 발판을 마련하였다. 함경도는 이성계 집안의 배후 기지와도 같았고 이 성계 집안은 함경도 여진족도 끌어 들여서 중앙 권력을 잡는 데에 이용하였다.

청나라와 일본을 뒤에 업고 대원군과 권력투쟁으로 40년을 허비한 고종은 1890년대까지도 벼슬을 팔아먹으며 나라의 기강을 무너질때로 무너트렸고 조선은 철선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1854년부터 미국의 흑선에 개항한 일제는 철선과 대포로 무장하며 부패한 청나라를 상대로 한 청일전쟁에서 이기면서 청이라는 상국이 없어 진 조선을 먹기 시작하였다. 일제를 이용하여 러시아의 남진을 막으려는 미국과 영국은 이미 일본 편이 되어 있고 상국이었던 청은 무너지니 고종은 아관파천을 하여 러시아에 의지하여 일본의 지배를 막아 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러시아의 속셈도 부동항을 얻으려고 조선을 평양의 39도 선에서 일본과 나누어 가지려고 하였을 뿐으로 조선을 일본으로부터 지켜주려는 것도 아니었고 그럴 힘도 충분하지 않았고 영국과 미국의 견제를 받고 있었다. 평양의 39도 이북의 한반도를 먹으려는 러시아의 속셈을 뒤늦게 알아차린 고종은 고립무원으로 다시 환궁하였으나 영국과 미국은 이미 일본편이 되어 있는 냉혹한 국제 현실에 때를 놓치고 일본의 지배가 불가피 하다고 보며 이완용 등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마지막으로 일본 천왕가에 이씨 왕가를 팔아 넘기며 일본천왕의 휘하에서나마 필사적으로 이씨 왕가의 기득권을 보존하고 자 하였고 노론의 권력자들은 일본 귀족으로 펀입되어 일제 36년간에도 권력과 귀부를 누렸다. 이와같이 고종은 조선 이씨 왕가를 천왕가의 일파로 팔아 먹으면서까지 일제 36년간에도 조선 왕가 일파의 축소된 기득권이나마 유지하려고 하였다. 그의 아들 영친왕을 일본 귀족과 결혼시키기도 하였고 영친왕은 일본육군 장군이 되었다.

러시아만 제압하면 조선은 미국, 영국의 승인 아래 일본의 독차지가 되게 된 국제환경에서 일제는 발해만 러시아 함대를 기습하여 승리하고 만주벌판에서 러시아와 육군전을 하여 승리하는 러일전쟁의 전리품으로 조선과 만주를 점령하고 만주국을 세워서 지배하였다. 러시아의 남진을 막기 위하여 영, 미의 해양세력은 일본을 키워서 러시아에 대항하는 역할을 맡기려고 하여 일본이 조선과 만주를 먹는 것을 용인하였다. 이와같이 일제는 1904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며 영, 미의 허락하에 1905년 을사조약을 통하여 조선을 러일전쟁 승리의 전리품으로 차지하였다. 그리고 만주를 점령하고 만주국을 세워서 지배하였다. 미국은 그 반대급부로 필리핀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였다. 지금도 영, 미, 일은 각각 기축 통화국이며 한 통속이고 한국은 영,미,일의 해양세력 대장들의 종속 변수이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기 전에는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일본은 세계 열강들을 상대로 세계 정세를 주무르는 강대국의 일원이 이미 되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일으킴으로서 결정적인 패착을 두었고 남, 북한은 해방을 맞았으며 중국은 중국 대륙에서 일본군을 쫓아낼 수 있엇다. 주위 4강 속에 한반도는 중립국이 될 수 없기 때문에 해방의 댓가로 분단된 것이다. 남북분단의 씨앗은 일제에 의한 한일합방 때에 이미 잉태되어있었다. 중국이나 일본은 한반도 남북분단을 원한다. 한국이나 일본도 중국의 분열을 원한다. 조조와 사마의 이후 중국이 5호16국으로 분열한 300년 동안 백제, 고구려의 전성기 시절이 가능했다. 중국의 통일은 항상 한반도에게는 불운이었다.

만주점령에 만족하지 않고 일제의 무모한 자신감은 중국대륙을 침범하는 중일전쟁을 일으켰다.그러나 미국은 중국대륙까지 일본이 먹는 것은 일본이 패권에 도전하는 것으로 보아 일제에 대한 석유와 철강 수출을 끊어버렸다. 유럽내에서 어떤 한 국가가 유럽내 1등이 출현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처럼 동양내에서 동양 1등이 출현하는 것도 미국이 원하지 않는다. 무도한 일제는 진주만을 기습공격하며 그간 후원국인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다. 무모한 태평양 전쟁의 도발은 일제의 오판이었다. 중국대륙에서 장개석과 모텍동의 강대국 중국과 싸우면서 더 강대국인 미국과 동시에 싸우는 것은 무모한 일제의 전략적 오판이었다. 그 일제의 오판 덕분에 한국과 북한은 독립할 수 있었다. 미국과 태평양 전쟁을 도발한 일제의 오판으로 중국의 모텍동도 중국을 쉽게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만주에서 일제 토벌대에 쫓기며 만주를 종단하며 목숨을 건지기 위하여 김일성의 빨치산 부대는 일제와 불가침조약 상태인 소련령으로 도망쳤고 소련군의 편재에 들어가서 목숨을 부지하였다. 당시 소련은 히틀러 독일과의 전쟁에 집중하던 때로서 동방으로 일제와 전쟁을 할 형편이 안 되어 일제와는 불가침 조약 상태였다. 소련군의 편재에 들어 간 김일성 빨치산부대는 일제와 불가침 조약의 소련군의 지시에 따라 일제와 싸울 수도 없는 상태였다. 아마 첩보전은 하였을 지는 모르나 전투전은 하고 싶어도 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당시에 소련과 일제는 불가침 조약의 상태였으니까.

일제가 원자탄에 순식간에 흔들리니 일제와 불가침 조약 상태로 눈치만 보고 있던 기회주의자 스탈린 소련은 일제에 선전포고를 하고 만주와 북한으로 밀고 내려왔다. 이 때도 김일성의 빨치산부대는 북한으로 내려오지도 못했다. 이미 허울 뿐이던 일제의 관동군은 소련군에게 허무하게 무너졌다. 소련에게 만주와 북한을 뺏긴 일제는 일본본토의 북부가 소련군에 점령당하여 분단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재빨리 미국에게 무조건 항복하며 미국에게 전적으로 점령당함으로서 필사적으로 일본열도의 분단을 막았다. 그러나 일본을 대신하여 당시 일본령이던 한반도가 분단되는 처지가 되었다. 소련은 두만강을 넘어 한반도로 밀고 내려와서 오랜 숙원인 부동항을 확보하고 39도 보다 더 남쪽인 38도까지 점령하는 것으로 만족하며 미국과의 충돌을 피했다. 이로서 한반도의 분단은 결정되었다. 소련의 북한과 만주로의 남진은 모택동이 장개석을 대만으로 몰아내고 중국대륙을 공산화하는데 결정적으로 역할을 했다. 미국과 스탈린의 소련은 양자강을 경계로 중국이 모택동과 장개석의 나라로 남북으로 분열되는 것을 원하였으나 모택동은 양자강을 헤엄치며 도강하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장개석을 몰아붙여서 중국대륙을 통일하였고 장개석은 미군의 도움으로 대만으로 간신히 도망치며 목숨을 부지하고 조그만 섬나라를 다스리는 처지로 전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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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같이 당시 유일한 원자탄의 보유국인 미국은 기회주의자 소련의 남진으로 허를 찔렸고 더 이상 38도선 이남으로 소련군이 진군하지 말 것을 소련에게 요구하였다. 당시에 미군의 최전방선은 오키나와에 있었다. 당시에 원자탄이 없었던 소련은 미국의 요구를 들어 줄 수 밖에 없었고 몇 일 간의 시간을 벌은 미군 하지 장군은 몇 일 후에야 겨우 남한에 진군할 수 있었다. 이로서 남,북 분단은 결정되었다. 소련은 오랜 숙원인 부동항을 얻었고 미국은 일본을 지키는 완충지대인 남한을 확보하며 대륙세력을 38도선에서 막을 수 있었다. 양 세력에게 한반도는 너무나 중요하였기에 전체를 상대방에게 줄 수는 없는 것이고 허리를 잘라서 나누어 가지게 되었다. 일본은 한반도의 분단을 즐겼고 중국과 소련은 북한이라도 되찾은 것에 만족하였다. 2,000년간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였던 중국은 더 이상 한반도 전체를 지배할 수 없었고 해양세력 미국에게 남한을 뺏겼다고 모택동은 억울해하였기에 김일성에 의한 6.25 전쟁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그러나 6.25전쟁에 대한 소련의 목적은 달라서 김일성에 의한 한반도 통일이 아니었다.

6.25는 스탈린의 거대한 국제 관계의 판을 짜는 데 있어서 한반도 공산화 통일의 야심을 가진 김일성을 미끼로 하여 미군을 전쟁에 끌어 들이고 중국을 끌어 들여서 미국과 중국이 서로 싸워서 원수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소련은 그 사이에 동구에서 폴란드 등의 공산 위성국가를 육성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소련의 스탈린은 애초부터 김일성이 한반도 전체를 점령하여 조기에 전쟁이 끝나는 것을 원치 않았고 전쟁을 질질 끌면서 미국과 중국이 소모하며 서로 지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북한군은 서울 점령 후에 3일간을 서울에서 지체하며 시간을 허비하였는데 소련이 한강 도하 장비를 늦게 지원하였기 때문이었고 남노당의 봉기가 있을 것으로 착각하였으며 춘천 전투에서 국군 6사단과 8사단에게 고전하며 춘천 점령이 지연되었던 것도 한 이유였다. 이 3일 동안 국군은 큰 손실없이 질서잇는 후퇴를 함으로서 낙동강 전선에서 싸울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며 역전의 기회로 삼았다. 스탈린은 유엔에서 거부권 행사를 기권하며 미군과 유엔군의 한국전 개입을 유도하였고 전세가 북한군에게 불리하게 유도하여 중공군의 개입을 불러 옴으로서 마침내 미국과 중공의 싸움이 되게 만드는 스탈린의 대전략에 성공하였다. 6.25 이후에 모택동의 중공은 30년 동안 미국의 견제로 포위되어 세계에 나오지 못하였다. 6.25 전쟁으로 소련은 큰 이익을 보았고 일본이 다시 부흥할 수 있었기에 일본도 큰 이익을 보았다. 김일성의 소아병적으로 어리석은 국제 정세 판단력으로 한반도는 폐허가 되고 수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김일성의 9개 사단인 9만의 군대로는 한반도 전체를 점령하기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일성의 기습에 국군은 큰 손실없이 전력을 보존하며 낙동강 이남으로 철수하였고 낙동강 전선에서 북한군을 저지할 수 있었다. 후방기지 역할의 주일 미군과 미군장비는 부산을 통하여 낙동강전선에 투입되며 전세는 역전되기 시작하였다. 일본이라는 후방 기지가 없었다면 6.25때 남한은 공산화되기가 쉬웠다. 주일미군을 주력으로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으로 보급이 끊긴 북한군은 허겁지겁 북으로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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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초기에 북한군이 수원을 넘어 오산에 밀려올 때 주일미군이 오산전투에 처음으로 참전하여 시간을 벌어 주었고 대전역에서는 미군 1개 사단의 1개 연대가 전멸하면서 북한군의 남진을 지연시키면서 낙동강 전선을 만들며 인천상륙작전의 역전의 계기를 만들 수 있었다. 미군 참전이후에 북한군 9개 사단 9만명으로는 국군과 미군을 이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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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으로 보급이 끊어 진 북한군은 급히 후퇴하였다. 그러나 압록강을 앞에 두고 중공군이 개입하여 국제전이 되었고 1.4후퇴 때 서울을 다시 뺏기며 평택까지 밀렸으며 다시 서울을 회복시키고 휴전선까지 밀고 올라간 것은 미군과 유엔군의 힘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륙세력으로서 중공과 소련이 연합하였고 해양세력으로서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이 연합하였다. 6.25는 이와같이 국제전이었고 이전에도 한반도의 전쟁은 언제나 국제전의 양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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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와 북경을 보호하기 위한 완충지대로 북한땅이 필요한 모택동은 언제가는 한 번 싸워야 할 상대인 미국과 싸우려면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땅인 한반도에서 이번에 싸우는 게 낫다 고 보고 압록강을 넘어 미국과의 전쟁을 선택하였다. 한반도의 분쟁에 유사이래로 중국이 개입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나 원자탄을 가진 맥아더 장군은 중국이 미국에게 덤비지는 못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모택동은 수 십 만 명의 자국 희생자를 내며 미국과 대결을 선택하여 언젠가는 한 번 겨루어 보아야 할 미국과 한반도육지에서 육지전을 하였다. 양 대국은 결국 휴전선에서 휴전하며 상대를 한반도 육지에서는 완전히 제압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휴전선에서 타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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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바다로 중국을 포위하며 제해권을 가지고 중국을 압박하는 것으로 패권유지는 충분하다고 보았다. 바다에서 미국이 중국을 완전히 제압하는 것만으로도 미국은 패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중국은 대륙에 갖히게 되었고 30년간 미국에게 포위되어 세계로 나오지 못했다. 중국이 바다로 나오게 미국이 허락해 준 것은 그 후 30년이 지나서였고 그 이유는 소련을 우선 제압하기 위해서 미국은 중국을 끌어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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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이 러시아로 축소된 지금, 미국의 유일한 적인 중국은 바다로 나오며 미국의 제해권에 도전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바다에서 제 2의 미중간의 충돌이 있을 것이고 그 장소는 남지나해가 될 것이다. 그 결과에 따라 태평양 바다를 어떻게 나눌 것인 지가 결정될 것이다. 지금은 미국의 압도적인 해군력에 중국이 감히 공격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으로 맥아더가 말한대로 태평양의 미국의 고요한 호수이다. 패권은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중국은 미국 군함을 상대로 이기는 것을 증명하지 않고는 세계 패권국의 지위에 오를 수가 없다. 이미 양국간의 해양 패권전쟁은 예고되어 있고 그 때가 언제일 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50년 내는 아니다. 이제는 중국을 잡기 위하여 미국은 러시아까지 끌어 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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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 국민으로 산다는 것은 목숨을 잃을 확률이 매우 높다. 2차 대전 승전국인 미국, 소련, 영국도 수 백 만 명이 전사하였고 패전국인 일본, 독일은 더 많은 국민들이 죽었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한국전에서도 6만 명이 죽었고 베트남전에서는 더 많이 죽었다. 소련과의 냉전은 전쟁없이 소련이 스스로 러시아로 축소되며 양측 국민들의 죽음 없이 미국의 승리가 결정되었으나 오늘날 중국과 미국이 한 판 붙는다면 양측은 유사이래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다. 누가 이 싸움을 함부로 걸 것인가? 총칼로 싸우지 않고 적을 제압하는 것이 최상의 전술인 바 먼저 무역과 돈으로 우선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것으로 승부가 나지 않으면 태평양에서 무력 충돌은 불가피하다. 양국사이에 전쟁이 나면 승전국이라해도 전사자가 수 백 만 명은 넘을 것이다. 중국이 해군력에서 미국을 이길 수 있다면 중국은 바다에서 전쟁을 택할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상태로는 중국 해군이 미국 해군을 이길 수가 절대로 없기 때문에 입으로만 거칠게 말할 뿐이다. 패권은 입으로는 얻을 수가 없고 힘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으로 패권은 공짜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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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의 국민으로 산다는 것은 그 만큼 위험한 것으로 패권은 거져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수 많은 자국 국민이 죽고 나서 얻어지는 것이다. 일제도 러일 전쟁에서 수 십 만 명이 죽었고 태평양의 미국 패권에 도전하며 수 백 만 명의 일본인들이 전장터에서 개죽음을 당했지만 패권에는 실패하였다. 일제가 태평양의 패권에 도전했다고 미국은 원자탄까지 터트리며 끝까지 응징함으로서 패권국 미국의 무서움을 전 세계에 보여주었고 바다의 지배권은 어떠한 경우라도 넘겨주지 않는다는 것을 철저하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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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중국이 태평양을 나누자고 미국에게 덤빌 수가 있을까? 권력자들은 무고한 젊은이들을 전장터에 몰아 넣고 죽을 때까지 싸우라며 후퇴하면 뒤에서 총을 겨루고 있다. 사즉생이요 생즉사라며 이판사판으로 전장터의 젊은 병사들은 적진으로 뛰어 들고 운명을 하늘에 맞기게 된다. 젊은이들의 개죽음으로 산 사람들은 패권을 얻게 된다. 6.25때 육지에서 비긴 것처럼 바다에서도 비길 수 있다면 중국은 수 많은 자국 청년들의 죽음을 무릎쓰고라도 바다에서 미국과의 전쟁을 선택할 것이다. 바다에서 전쟁은 중국에게 전혀 승산이 없기 때문에 말로만 험하게 나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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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권국인 미국의 뒷바침 아래에서 일본을 모방하며 열심히 추격하여 해양세력의 일원이 된 한국은 잘 살게 되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시킨 선진국이 되었다. 미국의 허락하에 중국, 소련과도 외교 관계를 맺고 한국은 4강을 상대로 외교 및 무역을 하며 세계 10위권의 나라가 되었다. 지금도 미국의 뒷받침인 주한미군의 철수와 한국내 미국의 달러투자가 없어지면 외환은 썰물처럼 빠져 나가고 한국은 하루 아침에 외환위기사태가 도래하여 국가 부도에 이르게 된다. 일본은 기축통화국이지만 한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니기 때문에 달러가 떠나면 바로 국가부도가 되어 거지나라가 된다. 중국의 변방 국가로 또 다시 전락하느냐, 아니면 일본처럼 탈 중국하여 세계 중심국가의 하나로 우뚝 서는냐의 문제는 우리가 하기 나름에 달려있다.

중국의 속국이나 일본의 속국으로 전락하지 않는 신의 한 수는 영토에 욕심이 없는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는 것이다. 근공원교라는 외교의 대원칙이다. 다만 경제적으로는 인접국인 중국과 일본을 이용하여야 한다. 세계 패권국인 미국이 한국에 들어 온 것이 고종의 숙원이었는데 고종은 이것을 이루지 못하고 망국의 길로 들어섰고
:일제 패망 후에 그 숙원은 저절로 얻어지게 되었으며 이 승만의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은 한국 부흥의 초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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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패권전쟁보다도 더 많은 인류를 죽음에 몰아 넣은 것은 역병
:이었다. 역병은 신의 경고이고 전쟁은 인간이 의도적으로 만든 재앙이다.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1차 세계대전보다도 더 많은 인류가 죽었고 중세의 흑사병으로 유럽인의 1/3이 죽어 나갔으며 천연두를 퍼트린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남미 원주민은 천연두로 거의 전멸하다시피하였다. 인류의 면역체계와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오늘날 코로나 역병 바이러스가 출현하여 인류를 공격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높은 감염력으로 무장하고 나타나서 무차별적으로 인류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에 감염된 후 산 사람은 면역을 가지게 되며 생존하게 되고 죽은 사람은 몸속의 코로나와 함께 죽게 되었다. 많은 희생자를 낳고 인류는 또 한 번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겠지만 그 승리의 댓가는 약한 노인들의 수 많은 죽음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너 또한 한 때 창궐하였으나 인류는 그 일부를 희생시키고 코로나 바이러스를 곧 극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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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력 전쟁보다 무서운 역병과의 전쟁에 대비하여 평소에 과하다할 정도로 의료에 투자해 놓아야 한다는 또 한 번의 교훈을 주고 코로나도 때가 되면 사라질 것이다. 의료와 방역은 무력의 국방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코로나를 가르켜주고 있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전쟁에서는 병사들만 죽어 나가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는 무차별적으로 국민들을 감염시키기 때문에 더욱 더 무서운 것이다. 역병은 패권국이나 비패권국을 따지지 않고 국민들을 희생시킨다는 점이 더 무서운 것이다.

김일성과 이승만은 수 많은 애국 독립지사들의 공을 모두 가로채서 그 과실을 독점하였다. 임진왜란 시에 함경도를 침입한 가토 군대 2만명 중에서 8000 명을 주살한 북관대첩의 주인공인 정문부 장군에 비하면 김일성의 항일투쟁은 졸장에 불과하였다. 독립운동의 주류인 임시정부에서 떨어 져 나와서 외로운 늑대처럼 홀로 외교적으로 독립운동을 한 이승만은 미국의 지원이 없었다면 남한의 정권을 잡을 수가 없었다. 자파가 없었던 이승만은 미국의 지원과 친일파들과 연합함으로서 정권을 잡았고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정적인 김구를 암살하는 데에 친일파와 서북파와 미국과 이승만이 연합하였다.

왜소한 체격의 볼품없는 외모 속에 야심을 숨기는 데 성공한 박정희는 불법적인 쿠테타를 일으켰다. 친일파였던 박정희는 독립 투쟁을 한 바가 전혀 없었고 쿠테타로 권력을 찬탈하였기 때문에 정통성이 없어서 경제발전에 목숨을 걸었다. 일본은 친일파 박정희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며 남한을 급속하게 그들의 영향력 아래로 집어 넣었다. 유신의 장기 집권의 무리수는 결국 부하에 의한 죽음으로 결과되었다. 18년 정권인 박정희의 키드인 전두환과 노태우가 13년 더 군사독재의 경북 정권을 연장하였으나 결국은 민주화의 대세에 31년간의 군부독재는 종말을 고했다. 경북패권의 시대도 종말을 맞았다가 15년 후에 또 다시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10년간의 보수 경북패권의 시대가 다시 왔으나 그것도 잠시 뿐이었고 죽은 노무현 사단과 호남에 의하여 결국 보수 경북패권은 끝나게 되었다. 김대중 호남과 노무현의 죽음에 뿌리를 두고 있는 현 정권은 김대중의 경북 포위론을 실행하여 정권을 잡았고 정권유지에 성공하고 있다. 죽은 김구와 죽은 김대중과 죽은 노무현의 연합이 현 정권의 실체이다.

호남에 공장을 짓지 않는 박정희의 호남차별로 호남인들은 직장을 찾아 수도권으로 대거 이주하게 되어 수도권에는 호남출신과 충청출신이 각각 1, 2위로 많은 부메랑으로 돌아 왔다. 호남과 충청의 연합으로 수도권 국회의원 당선의 크나 큰 효과를 민주당이 보며 압도적인 국회의원 선거의 승리를 가져왔다. 서울은 원래 백제의 수도였다. 백제계인 호남인과 충청인이 서울을 다시 점령하였다. 호남의 이낙연, 정세균 총리와 충청의 이해찬의 연합은 수도권 국회의원 당선에 맹위를 떨쳤다.수도권에서는 보수 영남 출신이 숫적으로 절대 소수이다. 비례 국회의원 수와 지지율을 보면 미래한국당이 19명의 국회의원과 34%의 지지를 가졌갔는데 더불어 시민당보다 높다. 그러나 이 34%의 지지는 영남에서 압도적으로 당선되는 데만 위력을 발휘하였고 그 외 지역에서는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하였지만 대선에서는 어느 정도 위력을 보일 것이다. 미래통합당에는 충청을 대표할 만한 인물이 없었다. 34% 영남의 표만 가지고는 수도권의 대부분의 국회의원선거에서는 미통당은 무조건 패배이다. 어느 편이 이기든간에 대통령을 뽑는 대선에서는 이런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수도권에서 호남출신과 충청출신의 연합은 박빙의 수도권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크나 큰 위력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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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윤보선과의 최초의 대통령 선거에서 역사상 가장 근소한 차이인 단 10만 표 차이로 이겼는데 전남에서 10만 표를 더 받은 것이 주효하였었다. 그런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전남을 배신하고 차별정책으로 일관하였다. 이에 전남은 김대중을 키웠다. 김종필은 이런 내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김대중이 4번 만에 대통령이 되는 데 큰 역할을 한 DJP 연합을 하여 전남인의 최초의 박정희 지지에 대한 빚를 다소나마 갚았다고 김종필은 생각하였다. 박정희는 충남의 김종필을 계속 중용하며 충남의 지지를 담보하였고 충북 옥천 출신의 육영수를 이미지를 이용하여 충북을 자기 편으로 붙잡아 두는 데 이용하였다. 그리하여 18년 장기집권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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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충남의 이해찬과 충북의 현 비서실장을 이용하여 충청의 지지를 어느정도 확보하였고 이번 국회의원 선거의 수도권의 충청표를 많이 얻으며 호남과 충청의 연합으로 수도권에서 압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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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충청은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해왔다. 수도권의 인구 분포상 호남 출신과 충청출신이 1, 2위를 차지한다. 현 정권의 이해찬으로 상징되는 충청의 지분은 이번의 수도권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는 데 크나 큰 역할을 하엿다. 호남과 충청의 연합은 수도권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압승을 가져왔다. 그러나 양대 정당의 표 차이는 10%를 넘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 선거에서는 어느 쪽이든 압도적인 표차이가 나지 않는다. 1% 내지 2%의 차이로 승부가 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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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은 좌크릭을 하고 정책은 우크릭을 한 상고 출신의 낭만적인 노무현이 집토끼인 좌파의 지지를 잃고 정권을 재창출하지 못하며 죽어 나가는 것을 똑바로 목격한 대졸출신의 현실적인 문재인은 정권을 결코 잃지 않으려고 주도 면밀한 연출을 할 것이다. 이 시대 최고의 선거 전략가인 문재인 사단을 이길 자가 현재로서는 없다 고 보아야 한다. 경북을 포위하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PK 출신의 김두관과 TK 출신의 이재명이 유력한 후보로 출연할 것이다. 이 낙연은 부통령 역할의 당권으로 귀결될 것이다. 호남과 PK 진보파와 충청의 3자 연합으로 경북을 포위할 것이다. 안철수를 살려두어서 보수의 분열을 유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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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노골적으로 호남을 차별하였다. 장군 진급도 한 해에 1명만 호남출신에게 해 주었다. 한 해는 전남 출신 1명, 다음 해는 전북 출신 1명, 이래서 호남 인재들은 육사를 가지 않았고 차별이 덜한 사법부로 많이 갔다. 이과에서는 차별이 불가능한 의대를 많이 갔다.박정희에게 배반당한 이후에 호남은 단결하였고 연합의 중요성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그런 기술을 습득하였다. 대통령은 PK에 주고 당대표는 충청에게 주고 국무총리만 호남이 하는 식으로 연합의 방정식이 통하고 있다. 행정부와 사법부와 입법부를 완전 장악하였는데 다음 대선에서 민주당이 지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현실적이고 머리도 좋은 문재인은 낭만적인 노무현과는 다르다. 박정희의 호남 포위전략은 부메랑이 되어 김대중의 경북 포위전략으로 되돌아 왔으며 현 정권은 그 김대중의 공식을 가장 성공적으로 잘 이용하고 있다. 진보의 호남은 노조와 서민을 연합하여 경북 보수를 포위하는 데 성공하였다. 부산-경남의 노조와 진보세력은 호남과 연합하여 차기 정권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두관과 이재명이 민주당 대선 주자가 될 것이다. 노조세력은 전국에 다 있기 때문에 세력화의 힘이 크다. 민주당은 노조와 연합하며 정권을 이어갈 것이다. 이러한 강력한 연대를 소수가 된 보수가 홀로 깨기는 어려운 새로운 시대에 접어 들었다. 주도세력이 진보세력으로 바뀌었고 보수는 소수파가 되어서 힘을 쓰지 못한다. 안철수는 보수를 분열시키는 데 또 이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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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해상국가 일본은 아시아의 해상 패권을 잡기 위하여 1940년 미국에게 덤볐으나 무조건 항복을 하면서 그 야망을 접어야만 했다. 2차대전 후에 미국의 허락하에 일본은 해군력을 빠르게 회복시키고 아시아의 해양 질서를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 한국의 해군력과 공군력은 일본의 해군력과 공군력에 크게 못 미친다. 만약 미국이 없다면 한국은 동해와 남해와 제주도를 일본과 중국으로부터 지키지 못한다. 일제 패망 시에 미국은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를 직접 명시하며 한국에 돌려주라고 일본에게 명령하였다. 일본은 끝까지 이 3섬은 돌려주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독도는 돌려주라고 명시하지 않았다. 이에 이승만은 6.25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독도를 점령하며 현실적으로 지배하였다.

일본은 한반도 남쪽 반절에 대하여 일종의 후방 기지이다. 6.25 때도 일본은 후방 병참기지 역할을 충분히 하였고 부산과 서울을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부산을 통하여 주일 미군과 물자가 들어 왔기 때문에 김일성을 막을 수 있었다. 월남은 후방 병참기지 역할을 해 주는 이웃나라가 없어서 월맹에게 망하였고 미국도 월남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광개토왕의 침입으로 가야인와 백제인은 대거 일본 열도로 피난을 갔고 일본의 주류세력에 합류하였다. 라당 연합군에게 망한 백제인들은 또 한 번 대거 일본으로 이주하였다. 일본인이 된 한반도 백제인과 가야인은 한반도 남쪽 반절은 자기들의 고토라고 생각하여 왔고 끊임없이 침입하여 왔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한반도의 남도 4도를 달라고 명나라에게 요구하였고 명나라는 그 요구를 들어 주겠다 고 약속하였다가 왜군이 철수한 후에 약속을 지키지 않으니 정유재란을 일으키며 또 다시 한반도를 침입하였다. 일본은 이와같이 한반도 남쪽 반절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임진왜란으로 일본군과 싸우는 데 신경을 쓰다가 명나라는 여진족 누루하치 세력이 만주에서 크는 것을 미리 제어하지 못하였고 결국은 커진 누루하치의 청나라에게 망하게 되었다. 야만족의 지배는 몽고족 원나라처럼 100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예상을 깨고 여진족의 청나라는 250년을 중국을 지배하였다. 한족의 반란을 미리 예방하기 위하여 청나라는 여진족 장수에 한족 졸병을 동원하여 위구르와 티벳과 내몽고를 침입하며 오늘날의 중국의 거대 영토를 만들었다. 야만의 여진족 청나라의 지배를 피해서 많은 명나라 한족 귀족들은 배를 타고 보트피플이 되어 동남아시아로 이주하였고 동남아시아의 화교가 되어 상권을 지배하였다.

지금은 일본을 대신하여 해양세력의 대장인 미국이 남한에 들어 온 것이다. 일본+미국의 해양세력이 남한에 들어 온 이상 더 이상 대륙세력 중국은 남한을 정치적으로 지배하지 못하고 경제적으로나마 남한을 지배하려고 한다. 남한은 미국과 일본의 뒷받침 아래 중국이라는 시장을 확보하게 되어서 부흥의 계기를 잡게 되었다.

고구려의 고토인 만주를 우리가 지금도 우리의 땅으로 보고 있듯이 일본인이 된 백제인들은 한강의 서울이 본인들의 땅이라고 보고 있으며 금강 유역의 충청남도와 전라도도 본인들의 땅이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일본인이 된 가야인들은 경남과 전남 남해안 일원을 자기들의 고토로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광활한 태평양을 건너 미국의 페리제독이 흑선을 타고 일본열도에 도달하였을 때 일본은 무조건 개항하며 미국 문명을 받아 들였다. 그리고 40년 후에 철선 하나 없는조선은 일본에게 무력하게 되었다.

일본은 무서운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만 일본을 만만하게 본다. 일본을 올바르게 보고 철저한 대응을 하여야만 한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떠나면 미국 대신에 일본이 바로 남한에 들어 온다. 일제는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하고도 기축통화국이 되어서 동남아시아를 호령하며 현대판 대동아 공영권을 실현하고 있다. 진주만을 공격하여 무모하게 패권에 도전하였던 일제는 져도 남는 장사인 기축통화국으로 미국으로부터 인정받아서 동남아시아를 지금까지 사실상 호령하고 있다. 태평양전쟁에서 일본병사들이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다가 죽는 무사도와 가미가제 자살특공대를 보고 미국은 자국 청년들의 희생이 두려웠고 이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며 원자탄이라는 극단적인 무기를 사용하고 소련의 대일 참전의 필요성을 없애버렸다. 미국이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원자탄을 맞아 다 죽어가는 일제를 향해 소련은 선전포고를 하고 만주와 북한으로 내려와서 점령하였다. 일본병사들의 저항은 독일병사의 저항보다 훨씬 지독한 것이었다.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지독한 일본병사와 일본을 무시할 수가 없었기에 미국은 전후에 일본을 기축통화국으로 대우를 해 주었다. 미국이 일본을 완전히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원자탄이 첫 번 째 이유이고 두 번 째 이유는 막강한 일본 100만 육군이 중국대륙의 장개석 군대와 모택동 군대에게 발목을 잡힌 것이다.

당시에는 일제를 잡기 위하여 미국과 중국이 연합한 것이었다. 유럽에서 히틀러를 잡기 위하여 영국, 미국과 소련이 연합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에 비하여 한국은 강대국 속국 정도로 생각되었다. 미군 수 십 만 명이 죽은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한 전리품의 일부로서 남한을 얻은 미국은 중국 코 앞에 침몰하지 않는 거대 항공모함을 가지게 된 것으로 생각하고 6.25때도 남한을 지켜냈으며 군산비행장과 오산비행장은 중국을 견제하고 서태평양을 지배하는 미군의 전진기지이다.

1854년에 미국에게 개항하여 100년을 한국보다 앞서 간 일본은 세계 2위의 강대국이엇고 현재는 3위의 강대국으로 기축통화국이다. 항공모함을 세계 최초로 해군 무기화한 나라이다. 이 100년의 갭은 하루 아침에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한국은 이제 조금 컷을 뿐이다. 미국이 없다면 독도는 물론이고 울릉도, 거문도, 제주도도 일제는 넘겨주지 않으려고 하였다. 미국도 두려워하는 지독한 일본을 한국인은 너무 가볍게 보고 있다. 그들은 세계 패권에 도전한 전쟁을 치른 사람들이고 전쟁을 통하여 지독하고 무섭게 단련된 무사집단이다. 일본 상인들도 일종의 사무라이 무사도로 숙련된 사람들로서 장사에 목숨을 건 프로 근성이 대단하다. 우수한 품질을 무기로 일제의 상품들은 세계시장에서 칼보다 무섭게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상대하여 이길 수 있어야 한다. 아니면 그들과 협조하는 수 밖에 없다. 미국도 일본과 협조하며 세계 패권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이다.

히틀러의 독일의 위세에 프랑스는 독일에게 점령당하기 전에 모든 금을 미국에 옮겨 놓았고 영국도 만에 하나 독일에게 점령당하는 것을 우려하여 금을 미국에 옮겨 놓았다. 2차세계 대전이 종전되니 유럽에는 금이 없었고 미국내의 금을 바탕으로 달러가 금태환으로서 기축통화가 되고 다른 나라 통화는 미국 달러에 연동하는 브레튼우드체제가 1944년 시작되었으며 30년을 갔다.

화폐는 원래는 금, 은의 보관증서이었다. 1971년 전에는 미국 달러는 금으로 바꿔 주는 금태환을 충실히 실행하였다. 세계경제발전의 속도는 금 생산량보다 더 빠르게 진행됨으로서 달러의 공급도 세계경제속도에 맞추어 금생산량보다 더 많이 공급되어야 했다. 더구나 미국내 금보유량은 점차 감소하였다. 프랑스는 자국이 보유한 미 달러를 금으로 바꿔 달라고 미국에게 노골적으로 요구하였다. 이에 1971년부터는 미국은 달러의 금태환을 거부하였다. 이 때부터는 달러는 금과는 무관한 신용화폐가 되었다. 대신에 미국은 사우디 정권을 보호하되 사우디는 달러로만 원유를 팔도록 합의함으로서 달러는 금태환을 포기하고도 오일 태환의 기능으로 기축통화를 유지하였고 엄청난 국방비를 지출할 수 있었으며 무력의 우위는 달러패권을 뒤받침하는 도구가 되었다.

또 한편으로 월남전으로 미국의 위신과 달러의 위신은 많이 추락하였갔다.월남전으로 미국은 달러를 많이 찍어 내는 데 비하여 미국내 금은 오히려 감소하여 갔다. 이에 달러의 금태환에 의심을 가지게 된 프랑스를 중심으로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미국의 달러를 금으로 바꾸어 달라고 미국에게 요구하였다. 금이 부족한 닉슨의 미국은 1971년 달러의 금태환을 포기 선언을 하며 달러를 마구 찍어내엇다. 달러 가치는 하락하고 실물자산이 오르며 1차 오일 쇼크가 왔다. 이에 달러가치를 방어하기 위하여 미국내의 달러의 금리를 20%로 올렸다. 달러 가치는 회복되었으나 그 후유증으로 재정적자가 왔고 높은 금리에 미국 기업의 몰락과 일자리의 감소로 무역적자가 엄청나게 증가하고 실업자가 증가하게 된 미국은 위기를 느끼고 1987년 플라자 합의로 일본 엔화와 독일의 마르크화를 갑자기 2배 평가 절상시키며 일본의 팔을 꺽어 놓았다. 호황을 누리던 일본 수출기업은 휘청거렸고 경기는 곤두박질했다. 일본은 금리인하로 경기를 살리고 휘청거린 일본기업을 도울 수 밖에 없었는데 금리인하의 부작용으로 일본내 부동산과 주가가 급등하였다. 일본인들은 높아 진 엔화가치로 미국내의 부동산도 엄청 사들였다. 미국이 일본을 때리는 사이에 한국은 이때 수출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였고 88 올림픽을 치러냈다. 이 때 미국은 엔고로 일본을 때리고 대신에 한국을 키워주었다. 엔고에 비싸진 일본제품에 비하여 한국제품은 쌌기 때문에 수출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엔고가 오면 언제나 한국은 수출로 자신감이 가지는데 이때 한국기업은 과잉투자를 하기 시작하엿다. 10년 뒤인 1997년에는 일본은 엔고에 적응하며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회복하고 과잉투자한 한국기업들은 수출에 장애가 생기며 한국은 외환이 고갈되어가고 있었는데 내실도 없이 외환자유화를 하며 김영삼 정부의 한국이 조금 컷다고 철없이 너무 까부니 미국과 일본은 IMF를 유도하며 한국을 또 다시 일본 밑으로 주저 앉혔다.

이와같이 1987년 플라자 합의로 미국의 일본 때리기에 일본은 금리인하와 재정 투하로 대응하였고 일본내의 실물자산의 거품이 발생하였으나 또 10년이 지난 뒤인 1997년 일본 기업은 엔고에 적응하며 경쟁력을 회복하여서 수출시장에서 한국 기업을 또 다시 위협하였고 한국은 무역적자와 기업 과잉투자로 IMF를 맞았다. IMF에 의한 강제 구조조정에 의해 한국은 무역흑자로 다시 돌아 섰으나 많은 국부를 헐 값에 외국인 자본에게 넘기며 살림 규모는 줄어 들었으며 수출을 늘리고 지출을 줄여서 흑자살림은 다시 하게 되었다. 한국을 IMF에 들어서게 된 근접적인 원인은 일본계 자금의 대량 유출이었기에 IMF 한국경제위기는 일본이 유도한 점이 크다. 비올 때 일본은 우산을 뺏아아갔다. 일본은 그럴 힘이 있었다.

2019년에도 일본은 원천기술의 원자재의 한국에 대한 수출을 제한 함으로서 한국을 옥죄며 또 다시 힘을 과시하고 있다. 한국의 핵심 산업인 반도체가 타격을 받고 있다. 한국의 경제는 침체되고 있다. 그 결말이 어떻게 결과될 지는 아직 모르지만 크든 작든 경제 위기를 반드시 치른다. 일본은 한국이 더 이상 크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일본은 한국을 포위한 4마리의 사자 중 한 마리의 사자일 뿐이다. 일본을 향한 한반도라는 단검이 부러져 있는 분단의 한반도가 일본에게는 가장 유리한 구도이며 남한만이라도 일본의 영향력 아래에 두어야 안심할 수 있다 고 일본은 생각하고 있다. 중국의 뒷통수에 망치와도 같은 한반도가 분단되어 부러진 망치가 중국에게도 가장 좋다고 중국은 생각하며 한반도 통일을 원치 않는다.한국이 중국과 북한과 친하게 될 때 일본이 가장 괴롭게 된다.

플라자 합의의 엔고에 대응하여 일본 기업과 일본 경기를 살리자고 금리를 한 없이 내려서 일본내의 실물자산의 거품을 만든 일본은 마침내 거품이 꺼지며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을 맞았다. 거품낀 일본부동산의 폭락이 왔다. 과도한 재정투자에 의한 재정적자로 일본정부는 빚을 너무 졌다. 다만 그 정부의 빚은 자국 일본인에게서 빌린 돈이기 때문에 덜 위험할 뿐이다. 1997년 IMF에 의해서 강제로 구조조정된 한국은 무역흑자를 또 다시 내기 시작하여 달러를 축적하였으나 경제규모는 저성장하며 성장이 멈춰진 조로증 경제가 되었다. 한국은 일본의 원천기술 부품으로 중간재를 만들어서 중국에 수출하면 중국이 완제품으로 만들어서 수출하는 세계분업체제에 들어갔다.

2000년대에 미국도 금리인하로 인하여 자산거품이 왔고 2008년 서부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자산이 폭락하여 또 다시 금융위기가 오니 무제한 양적완화로 급한 불을 껏으나 유동성은 급격히 증가하였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에 한국은 나름 선방하였고 중국은 그 때 비약적으로 기업투자를 늘려서 미국을 위협하는 국가가 되었으나 2020년 현재 중국 기업의 과중한 채무로 결과되었고 미국은 그 약점을 물고 늘어지며 중국의 발목을 잡고 있다. 유동성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세계 공산품은 중국제품의 공급과잉으로 가격이 싸졌으나 유동성의 증가는 부동산과 주식 가격의 폭등을 불러왔다. 중국은 엄청난 달러를 축적하엿고 그 돈으로 미국 국채를 매입하였다. 미국은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을 줄이고 베트남이나 인도에서 수입량을 늘리며 중국을 때리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때리지 않고는 패권국을 위협받으니 중국을 때리는 것이다. 지금 현재도 무역전쟁과 환율전쟁과 기술전쟁 중이며 그래도 결판이 안 나면 무력전쟁을 할 것이다. 중국은 석유를 수입하는 나라로서 해상이 미국 해군에게 봉쇄될 때를 대비하여 육지로 중동과 연결하려고 일대일로를 하고 있으며 기술강국을 추구하며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 기술강국은 뺏길 수 없는 미국은 그런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미국은 중앙아시아를 미국편으로 끌어들이며 일대일로를 방해하고 중국을 포위하고 있다. 석유를 자급하고도 제일 많이 수출하는 미국만이 2019 나홀로 경제가 좋앗고 달러는 강세가 되었다. 세계 석유 시장은 공급과잉의 시대로 접어들며 석유는 힘을 잃었고 중동과 러시아의 힘은 더욱 빠져만 갔다. 미국외 세계의 모든 나라는 금리인하로 경제위기를 대응하였다. 유동성은 증가하엿고 실물자산은 거품이 끼고 있는 중이지만 각 국은 금리 인상을 할 여력이 없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세계 주요 수출국을 먹여 살리는 기능을 하고 미국은 금융에서 그 무역적자를 일부 보전하였고 일부는 달러패권의 발권력으로 대응하여왔으며 패권국 유지를 위한 엄청난 국방비를 댈 수 있었다. 중국이 달러패권과 기술 및 무력패권에 도전하니 미국은 중국에게 더 이상 달러를 축적하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 달러패권으로 유지할 수 있는 미국의 국방비가
달러패권이 무너지면 국방비 감당이 불가능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달러패권을 위협하는 국가가 나오기 전에 미국은 군사적 우위가 압도적인 지금 전쟁을 선택하고 싶지만 미국과 중국은 이미 상호 의존적이다. 그래서 무력전쟁까지는 가지 않고 중국을 봉쇄하려고 한다. 현재는 압도적인 미국의 해군력으로 남지나해에서 중국이 배타적인 권리 주장을 하는 것을 막고 있다. 주위 동남아 국가들도 미국 편을 들어서 중국의 배타적인 남지나해의 지배를 막고 있다. 중국에게 불리한 게임이다.

미국과 소련은 상호 의존적인 경제구조가 아니었기 때문에 미국은 아무 타격을 받지 않고 소련을 무너트릴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은 경제적으로 이미 상호 의존적이기 때문에 지금의 1, 2위의 서열을 유지하는 한, 상호 공존하려고 한다. 그러나 중국이 1위를 하겠다고 덤비면 미국은 중국 경제를 때리며 중국을 주저 앉게 할 것이고 그래도 안 되면 남지나해와 싱가포르 앞의 말라카 해협의 석유 해상 통로를 중국이 이용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이 세계 1등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 러시아를 포함한 아리안족 국가들의 공통적인 입장인 것도 중국에게 불리하다. 중국과 장사는 하지만 일본과 인도는 더욱 적극적으로 중국의 세계 지배를 방해할 것이다. 주한 미군이 없다면 지금도 한국은 서해를 중국에게 내주어야 할 것이다. 중국의 전통적인 중화 민족주의는 주위 국가들을 중국의 적으로 만들 것이지만 중화민족주의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은 이와같은 중국의 약점을 파고 들며 주위 동남아 국가와 인도, 일본, 호주와 연합하여 중국의 도전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2등으로 만족하며 싼 물건을 만들어 미국에게 대주는 위치에 만족한다면 전쟁까지는 가지 않는다.
패권국 미국은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내며 세계의 상품을 소비하는 거대 소비 시장을 제공하는 것이 세계평화와 미국에게 이익이다. 무역적자는 달러를 찍어 내면 되고 많은 국방비로 인한 재정적자도 미국 국채를 찍어서 막으면 그만이다. 이게 패권국의 권리이다. 달러 패권이 무너지면 미국은 그 많은 국방비를 감당할 수 없고 무역적자도 감당할 수 없다. 달러패권은 미국인들의 높은 소비를 가능하게 해 준다. 달러패권에 도전하는 세력은 강한 국방력의 미국의 공격을 각오해야 하며 미국 소비 시장에 들어 올 수 없게 만든다.

중국이 달러가 아닌 위안화로 원유대금을 결재할 때 미국은 남지나해와 말라카 해협을 봉쇄하며 산유국과 중국을 동시에 위협할 수 있다. 원유대금으로 위안화를 받은 산유국은 그 위안화를 가지고 중국 공산품은 살 수 있지만 공산국가인 중국내 부동산은 살 수 없고 위안화로 미국이나 유럽에서 상품이나 부동산을 구입할 수가 없다. 따라서 중국 상품을 구입할 정도만 위안화를 원유대금으로 받을 것이다.

엎친데 덥치는 격으로 코로나 역병으로 세계 경제는 마이너스 사태가 오고 말았다. 세계 무역이 감소함에따라 수출국들은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더욱 신용화폐의 양적완화를 하였고 부동산과 주식 등의 실물자산은 계속 상승하고 있다. 금리를 올려서 실물자산의 거품을 막아야 하는데 코로나 사태로 경기가 바닦이니 금리인상을 할 형편이 안 된다. 코로나 사태로 수출국가인 중국과 한국은 큰 타격을 받고 있다. 기축통화국으로서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미국과 일본은 팔짱을 끼고 중국의 대처방안을 주시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에게 원천기술 수출품목을 제한하면서까지 한국의 도약과 도전을 견제하고 있다. 이번의 일본에 의한 한국 견재의 결과가 어떤 위기의 모습으로 나타날 지는 아직은 모른다. 정치가 경제를 압도하는 한국은 정치 논리가 만연하며 경제 논리가 뒤로 밀리고 있고 경제는 수축하니 청년들이 양질의 직장을 들어 가는 기회는 점점 줄어 들고 있다. 이념과잉의 사농공상의 질서가 아닌 실사구시의 상공농사의 질서로 가야 만 국가 발전이 된다. 그러나 이념 과잉의 현재의 한국은 사농공상의 이조시대로 퇴보하고 있다.

우물안의 개구리와 양푼속의 개구리 신세가 된 한국은 세계의 경쟁에서 뒤쳐지고 있지만 나르시즘적인 자기 도취에 시간을 소비하며 때이른 축제를 즐기고 있다. 마지막 축제가 끝난 후에 말라죽든 말든 현재의 마지막 꿀을 빨아 먹으며 달콤함에 정신이 혼미해지고 있다. 세상에 공짜가 없거늘 한국은 애써 아픈 현실을 잊으려고 한다. 한국의 유일한 자랑거리인 재정의 건전성을 까먹으며 미래의 소득까지 당겨서 지금 써 버리는 마지막 남은 꿀독마저 빨아 먹고 있는 현실이 애처롭다. 한 나라의 국가를 경영하는 것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며 부국강병을 위해서는 값 싼 동정심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미국에게 한국은 중국과 일본을 동시에 견제하는 신의 한 수이다. 역시 한국에게 미국은 중국과 일본에게 먹히지 않을 신의 한 수이다.
한국을 미국이 차지하니 중국도 일본을 압도하지 못하고 일본도 중국을 압도하지 못하게 되었다. 중국이 한국을 차지한다면 중국은 과거 봉건시대 처럼 일본을 압도할 것이다. 일본이 한국을 차지한다면 일본은 중일전쟁 때처럼 만주와 중국대륙을 넘볼 것이다.

패권국 미국의 후견 아래 한국은 세계 6대 강국에 조속히 진입하여야 한다. 한국은 우선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캐나다를 잡아야 한다. 패권국 미국이 들어 와서 한국의 번영이 가능하였던 바와 같이 한국은 결국에는 지정학을 가지고 먹고 살게 된다. 앞으로는 중국과 미국이 자기들편을 들어주면 서로 먹여 준다고 덤빈다. 자주를 앞세운 민족주의는 구호에 그치고 당파들은 서로 중국 또는 미국을 끌어들여서 정권을 잡으려한다. 미국의 사드를 배치시킨 박근혜를 탄핵시키는 데에는 유형, 무형으로 중국의 입김이 작용하였고 현재의 상대적 친중정권은 더 이상 추가적으로 미국의 사드를 배치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중국에게 해주며 정권을 잡았다.

코로나 역병은 그 기회를 한국에게 주고 있다. 의료강국인 한국이 이 기회에 코로나 역병의 백신을 먼저 개발하여 큰 도약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정신만 차리면 시련은 왔지만 한국에게는 도약의 기회이기도 하다. 항상 시련은 오기 마련이나 극복하는 측이 있고 굴복하는 측이 있을 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발전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코로나 역병의 시련을 극복할 것인가? 세계적인 바이오 산업을 육성하고 우수한 의료 인력을 활용하여 의료 인프라에 더 많은 투자를 하며 창의력이 발휘될 수 있는 문화를 육성하여야 한다. 새로운 것에 도전을 일상화하고 그에 따른 보상이 따르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5000년 문화국가의 저력을 모아서 우수한 한글을 이용하여 더욱 더 과학을 육성하고 세계 일류 기업이 많이 나오도록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조시대의 사농공상으로 되돌아 가서는 희망이 없다. 거꾸로 상공농사가 되어야 국가가 산다. 전쟁이든 역병이든 구호나 형식보다는 결국은 장사하는 실력과 잘 만드는 실력에 국가 승패의 모든 것이 달려있다. 일본은 그런 면에서 성공한 나라이다. 코로나는 오늘도 돌연변이를 하며 그 감염성과 독성을 강화하고 있다. 누가 먼저 코로나를 잡을 백신을 개발하여 상용화할 것인가의 경주에서 승리할 것인가?

기고만장은 망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며 둑이 무너지는 조그만 금이 가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한다. 기고만장의 호기를 겸손으로 숨기고 조심할 때만이 망조는 나타나지 않는다. 박정희 유신 권력의 최고조에서 거침없이 배반자 김형욱을 파리에서 무참하게 살해하고 김영삼을 제명하고 부마사태를 탱크로 깔어 뭉게어 진압하려고 하니 총구는 오히려 박정희의 심장을 향하였다. 반대 정파에게 끌려 내려와서 비참하게 죽느니 차라리 정면대결의 도박을 즐겨했던 박정희는 스스로 또는 자파 부하에게 그렇게 죽고 싶은 무의식이 있었고 그의 마지막 승부사적 정면대결의 위험한 도박은 실패하며 자신의 목숨을 잃었다. 이와같이 기고만장의 종결은 타의에 의해서건 자의 또는 자파에 의해서건 반드시 망조로 귀결된다. 진시황의 무자비한 법치 통치는 민중의 반란으로 망하였고 유방의 한나라는 "예"를 통치의 근간으로 삼았다.

정부가 로빈훗이나 홍길동을 흉내내는 것이 소설에서는 가능할 지 모르나 현실에서는 백성을 미혹하여 일시적으로 속일 뿐이고 반드시 국가 부도라는 실패로 귀결된다. 신출귀몰의 로빈훗이나 홍길동은 악덕 정부와 관리에 대항하는 역할을 할 때만 존재 가능한 것이다. 미륵이나 메시아가 나타나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미신은 언제나 있어왔고 미륵이나 메시아를 자처한 혁명가들은 그것을 이용하여 혁명을 일으키지만 혁명이 성공한 후에 결국은 미륵이나 메시아가 되지 못한다. 관심법의 궁예가 그랫다. 대중의 기대치를 높이는 미륵이나 메시아를 자처하는 자는 반드시 실패로 귀결된다. 현실은 높아진 대중의 기대치를 만족시켜줄 수가 없기 때문에 메시아를 자처하는 자는 결국에는 대중에게 버림을 받는다.

대중은 또 하나의 새로운 폭군을 만나고 오지도 않을 또 다른 미륵과 메시아를 기원하게 된다. 종교는 그 틈새를 타고 살아 남으며 절망적인 대중들의 희망을 살려 놓는 역할을 하는 대신에 비용이 들어 간다. 결국 세상에는 꽁차가 없게 된다. 정치적으로는 이판사판의 전체주의를 불러오며 정치가에게 과도한 권력이 주어지고 개인의 자유는 사치로 치부되고 감시와 억압의 하향평균의 노예의 사회가 된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거의 모두 일개미가 되고 소수의 정치가인 병정개미는 일개미를 감시하고 여왕개미를 보호하는 전체주의가 인간에게도 온다. 정치가에게 과도한 권력이 주어지고 대중은 정치가의 노예로 전락하는 또 다른 형태의 봉건지주의 사회가 된다. 신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하며 대중을 사로 잡은 예수교도 중세에 전체의 재력과 권력을 30% 이상 독점하며 또 다른 노예사회를 만들었고 그것을 반대하여 프로테스탄의 개신교가 나오며 자본주의의 권력과 부의 분점의 사회가 출현하였다. 권력은 나누어야 선진사회가 되는 것이고 권력이 어느 한 집단인 정치가에 집중될 때 사회는 퇴보한다. 공산주의가 그런 것의 전형이다.

친 중파 김구는 화려하게 부활하였고 상대적 친중 정권은 중국의 전체주의 정치를 모방하고 있다. 투표권를 가진 화교들과 조선족들은 상대적 친중정권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친미파 이승만을 지지하는 친미 세력과 미국내의 한인 교포들은 그 수가 늘어나지는 않고 있다. 죽은 미국파 이승만과 죽은 중국파 김구는 오늘날 환생하여 또 다시 싸우고 있다. 미국파 이승만에게 친일파 군,경 세력은 영합하여 살아 남아 부귀영화를 누렸고 독립파들은 3대가 못사는 억울함을 맛보았다.

아까운 사람들이 단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마지막 느끼는 점은 "내가 아는 것은 너무 부족하고 불완전하고 할 일은 많은 데 왜 벌써 신은 나를 잡으러 오셨나이까?" 이다. 중국대륙에서 일제의 군대와 경찰들이 김구를 잡아 죽이려고 집요하게 추적하였으나 김구는 살아 남아서 해방을 맞았고 귀국하였지만 도망가거나 숨을 데가 없는 국내는 더욱 위험하여 그를 보호할 무력 세력이 전혀 없었고 공권력도 미국과 이승만의 눈치만 살피며 김구를 적극적으로 보호해주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서 김구가 집권하면 생존이 불가능한 친일파와 월남한 서북파들은 공작에 들어 갔고 행동파로 현역 장교인 안두희를 포섭하여 김구를 무참히 살해하였다. 김구라는 강력한 독립투쟁가 출신의 정적이 없어 진 이승만은 독립운동가들의 공을 다 차지하고 15년을 무소불위의 장기 집권을 하였다. 여와 야는 "국민"을 팔아서 자신들의 정치를 정당화하지만 여와 야가 말하는 국민은 각자 다르다. 여와 야가 말하는 정의와 공정도 각자 그 뜻이 다르다. 가장 정의롭지 못한 전두환도 정의로운 사회를 구호로 들고 나왔으니까.

보잘 것 없는 일개 소장에서 전역을 앞 둔 박정희는 비합법적인 쿠테타를 통하여 무리하게 정권을 잡고 18년을 독재하였고 그의 키드인 전두환, 노태우가 또 다시 12년의 군부 독재를 이어갔다. 그 대척점에 서 있는 김대중은 4전 5기의 투쟁과 목숨을 건 수난과 고난을 이기고 마침내 평화적 정권교체의 신화를 이루고 노무현에게 권력을 이어주었다. 노무현은 물려받은 권력을 지키지 못하여 다시 박정희 세력인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이 들어 섰으나 박근혜의 태만과 무능력으로 김대중 세력인 문재인 정권이 다시 승리하며 박정희와 김대중의 싸움은 오늘 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한편으로 김구,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가 있다. 각자가 말하는 국민은 각각 다르다.

죽은 김구는 70년이 지난 이 시대에 다시 환생하였고 그를 추종하는 세력이 집권하며 정통성을 임시정부에 두고 미국파의 외로운 늑대격인 단독 항일 운동가인 이 승만의 정통성을 부정한다. 외로운 늑대격인 이승만은 국내외에 자기 파가 없었기 때문에 국내의 대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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