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인터넷 의료상담
 
 
미국과 일본의 흥정
2015-10-10
1905년 을사늑약은 러일전쟁의 일본 승리의 결과로서
일본의 조선 지배를 미국이 인정하고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하는 흥정의 결과이다.
 
역사교육,사실과 표면은 다르다.
2015-10-10
우리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면 반드시 망한다.
듣기 싫은 말과 보고 싶지 않은 면을 아래와 같이 기술하니 혹시라도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대원군을 지지하면서 공주까지 올라 온 동학군을 제압할 능력이 없던 민비세력의 조선 왕조는 급하게 청나라 군대를 불러들이자 그를 핑계로 일본군대도 들어 온다. 공주의 고개에서 일본군이 기관단총으로 동학군을 진압하였으나 이땅에 들어 온 외국군대간에 청일전쟁이 일어나고 일본이 승리함으로서 일본에게 나라를 잃는 단계로 들어섰다. 민비가 방해되자 일본은 민비조차도 시해하였다. 러시아에 의지해보려고 하였으나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퇴함으로서 고아와 같은 신세가 되었고 미국의 허락하에 마침내 일본의 먹이감이 되었다.

:1905년 을사늑약은 러일전쟁의 일본 승리의 결과로서
:일본의 조선 지배를 미국이 인정하고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하는 흥정의 결과이다(가쓰라-테프트 밀약). 을사오적이 일본에 나라를 팔아 먹었다는 것은 단순함의 극치와 다름 아니다.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의 보호를 잃은 고종은 조선이 일본에게 망하지 않을 유일한 방법으로 미국과 러시아에 여러번 도와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러시아는 러일전쟁에서 패배해버렸고 이제 유일하게
남은 영토에 야심이 없는 미국이 조선에 들어오지 않으면 나라를 잃는 다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미국은 그 당시 조선의 가치를 높이 보지 않았고 조선을 러시아에 주느니 차라리 일본에 주는 게 낫다고 보았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의 일본 승리로 조선은 의지할 데가 없었기에 영토에 야심이 없는 해양강국 미국에 의지하여 망국을 피해보려고 하였으나 미국은 그 당시 조선의 가치를 높이 보지 않고 필리핀에 관심이 있었으며 미국이 조선에 관심을 가지면 일본과의 관계가 나빠질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미국과 일본이 필리핀과 조선을 서로 나누어 가지게 되는 흥정을 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제국들은 이와같이 냉정하다.

그 결과 일본의 조선 지배를 국제적으로 반대하는 강대국이 없어졌다. 고아와 같은 신세의 조선은 일본에게 국권을 빼앗기게 된 것이다. 한일합방으로 영토와 인구가 더욱 커진 일본은 만주를 영향권에 넣고(만주국) 중국 본토까지 침범하여 미국의 역린을 건들기 시작하였다가 미국의 압박(일본에 대한 미국의 석유, 철강 금수조치)을 받자 진주만을 기습공격하여 마침내 태평양 전쟁까지 일으킬 정도로 그 당시도 매우 큰 나라로서 세계를 호령하고 자 하였다. 미국은 일본이 너무 커지면 중국 편을 들고 중국이 너무 커지면 일본 편을 든다.

이승만은 대한제국하에서 고종에 대한 반역죄, 즉 배제학당에서 배운 국민주권국가를 주장한 죄로 5년간이나 징역을 살면서 오히려 엄청난 미국 공부를 하였고 그 후 미국으로 가서 박사학위까지 따고 독립 활동하게 되는데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나서 일본으로부터 조선 독립을 부탁하였으나 루즈벨트는 일본의 조선지배는 당연하다면서 조선독립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그 만남에서 한반도를 병합하여 힘이 커진 일본이 언젠가는 미국을 공격할 것이라고 미국에게 말했다면 혹시 미국이 한국의 독립에 그 당시에 더욱 관심을 가졌을 지도 모른다.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에야 미국은 그것을 절실히 깨닿고 일본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한국의 독립을 지지하고 적극 지원한 덕에 한국은 공짜 독립을 하였다.

청년 이승만이 미국 대통령을 만났다는 사실 하나로 독립운동에서 이승만의 권위가 만들어 지는 계기가 되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청년 이승만을 만나준 것만으로 후에 이승만이 독립운동사에서 권위를 가지게 되었고 결국 대통령까지 오르게 되는 하나의 큰 계기가 되었다. 영토의 야심이 없는 미국만이 조선의 독립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고종도 알고 있었고 이승만도 굳게 믿게 되었다. 약소국은 더욱 더 외교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 승만은 깨닫게 되었고 무력이 아닌 국제 외교로서만이 독립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결국 이승만 특유의 국제 외교력으로 미국을 보호국으로 하는 나라가 세워진 것이 사실이고 6.25 때도 이승만의 미국에 대한 외교력으로 버틸 수 있었다. 20세기 초중반에 이승만 같이 그만한 풍상을 다 겪고 내공을 쌓은 지도자는 없었다. 국민주권국가를 도입한 것은 미국과 이승만이었다.

그후 군사정권이 총칼로 국민주권을 짓밞고 체육관에서 억지로 통령을 뽑았으나 몇 년을 지탱하지 못하고 무너지고 무너져서 국민주권국가 전통은 다시 살아나서 이어졌다. 민주화와 산업화를 모두 성공시킨 선진국 반열에 오른 것이다.

수 많은 만주의 항일 무력 투쟁의 세력 중, 소련에 의탁한 김일성
세력이 스탈린에게 선택되는 행운이 타서 북한을 차지하게 되며 남북분단은 고착화되었다. 원자탄 투하를 보고 약삭빠른 소련군이 재빠르게 진공 상태의 만주와 북한에 진군함으로서 소련에 의탁한 운 좋은 김일성세력이 북한을 지배하게 되었다.

임진왜란 때도 히데요시는 한반도 남쪽 4개도를 할양해 달라고 명에 요청하여 명과의 협상이 타결되었으나 명이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다시 침략한 게 정유재란이다. 남북분단의 뿌리는 이와 같이 깊으며 한반도 전체가 불가하다면 남쪽 반이라도 세력권에 넣고자 500년 전에도 해양세력은 시도하였으나 그 당시에는 나라가 있고 이순신을 비릇한 우리의 무력이 있어 명이 일본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되었기에 분단을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 남이나 북이나 8.15 해방이 우리가 자력의 무력으로 일본을 무찌른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일본이 미국을 거역하고 마침내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미국에 덤벼 들었지만 미국의 원자탄에 무조건 항복하였고 8.15 해방이 어느날 갑자기 무임승차로 왔다. 공짜 해방의 댓가는 남북분단이었고 6.25 동족상잔이었다.

사실 원자탄이 아니었으면 일본본토는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고 무너지더라도 몇 년간은 더 버티기 때문에 미군의 희생 또한 엄청났을 것이고 소련군도 일본 본토를 일부 점령하였을 것이다. 독일처럼 분단되었어야 할 일본은 원자탄의 피해를 받는 대신 미국에게 독점적으로 점령당하여 분단을 막아 오늘날 다시 강대국으로 다시 회생하였다.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면 당시 일본령이던 한반도도 자동적으로 미국 것이라는 생각에 허를 찌르고 소련군이 재빠르게 북한 지역에 진군함으로서 애굿은 한반도가 일본열도 대신 분단되었다. 미국도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세계 최강국이 된 것이지 공짜로 된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 동양에서 전쟁을 치르느라 엄청난 미국 국민이 희생되었다. 패전한 일본인들은 더 많은 국민이 희생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이 일본을 약화시키려는 정책에 편승하여 공짜로 독립을 얻었다.

일본이 미국과 싸워 어부지리로 큰 이익을 본 것은 오히려 소련, 중국, 한국이었다. 미국이 일본을 때려주는 사이에 중국은 일본세력을 몰아내고 만주와 티벳트, 내몽고까지를 포함한 거대 통일 중국을 이룩하였고 러시아는 사할린과 북한을 얻었다. 태평양전쟁으로 미국에 덤벼들은 일본만 큰 손해를 보게 되었고 미국도 중국이 공산화 통일되는 손해를 보았다. 그 교훈으로 오늘날에는 일본에게 역할을 주어 중국팽창을 견제하도록 하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다. 미국은 일본이 강대해지면 중국 편을 들고 중국이 강대해지면 일본편을 든다. 일본이 미국에 대드는 악수에 남,북한도 어부지리로 미국, 소련의 무력에 의한 공짜 독립을 하게 되었다. 일본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친절하게도 제주도, 울릉도, 거문도 까지 찾아서 한국에 준 것은 미국이었다. 이와같이 미국이 해방시켜주었는데 보호국이 아닐 수는 없는 것이다. 요근래 중국에 물건 팔아 경제가 연명한다 고 하여도 중국을 안보적 보호국으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중국은 북한의 안보적 상국일 뿐이다.

사실과 신화는 이와 같이 냉철하게 다르다.

과학(사회과학과 자연과학)과 기술과 학식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농업국 일본이 오늘날 강대국이 된 것은 과학과 기술의 나라로 1860년대에 메이지 유신을 통해 일찌기 변모하여 40년만에 러시아를 제압하는 세계적 강대국 반열에 올랐다. 그간에 일본 국민들 개개인의 수준이 높아 졌기 때문에 강대국이 된 것이지 저절로 강대국이 된 것은 아니다. 작금의 한국현실은 국제정치적으로 실력없는 허풍장이 말쟁이들만 넘치고 진정하고 실력있는 전략가들은 부족하며 이념 과잉속에 실사구시와 국가전략이 부족하다.

벌모>벌교>벌병>공성전
책략(전략)적인 해결이 우선이고 외교적 해결이 다음이며 무력 시위적 해결이 그 다음이고 무력충돌적 해결이 제일 하수의 방법이다.
무대포는 안 된다는 것이고 전략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평소에 과학과 기술과 학식을 중시하지 않고 이벤트와 쑈와 겉치레의 속 빈 강정의 우매한 나라는 반드시 큰 화를 부른다. 학교에서 역사를 냉정하게 가르치지 않으면 민족주의만 내세우는 우매한 사회가 되고 또 나라는 큰 화를 부른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이순신의 승리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모두 출중하여 가능한 것이었다. 조선의 판옥선은 크고 튼튼하여 포를 실고 다니면서 함포사격을 하도록 만들어 진 함포 함대였다. 그 당시 일본 배들은 튼튼하지 못하여 포를 실고 함포사격을 할 수 없었다. 가까이 근접하여 조총으로 쏘면서 상대 배에 올라 타서 육박전을 하는 것이 일본 수군의 전략이었다. 조총의 사거리 밖에서 충분히 거리를 두고 판옥선 위의 포로서 일본배를 공격하면 반드시 조선수군이 이기게 되어 있었다. 이순신은 거리를 두고 함포 사격으로 적의 배를 침몰시키는 전략을 초지일관 구사하였다. 조총보다 더 사거리가 길고 위력적인 함포사격이 있었던 것이다.

고려시대부터 왜구를 잡는 방법으로 개발된 배위에서의 함포사격이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지피지기의 이순신은 이러한 아군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적의 장점인 육박전은 피하면서 전승의 위업을 이루어냈다. 남서해의 제해권을 이순신이 가짐으로서 왜군은 배를 통한 보급이 불가능하여 길어진 보급선의 평양, 한양에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임란시에 조선의 학익진 함포사격의 위력을 뼈저리게 느낀 일본은 그로부터 300년 후에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일종의 학익진인 T-자 진 형태의 함포사격의 우위를 바탕으로 청과 러시아 제국에 승리하였다.

역사교육을 솔직하게 가르치면서 전략을 가지고 미국, 일본, 중국, 세계와 외교를 하되 무력도 갗추어야 하고 최하책이긴 하지만 최후에는 무력으로 싸우기도 해야 한다. 나라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세계 경쟁속으로 내 몰아서 강해지도록 하지 않고는 희망이 없다.

BC 3세기(지금으로부터 2500년전)위만조선이 기자조선 기 준왕을 동쪽으로 밀어내고 점차 단군조선세력이 한반도 남부로 내려오면서 불안을 느낀 한반도 남부의 마한, 가야의 백성들이 한반도를 떠나 처음으로 그 당시 일종의 신대륙인 일본땅에 도래한 이래 한반도에서 1000년간 계속 100만명이 일본열도로 갔다. 조몬 신석기 문화의 열도 원주민을 청동기, 철기와 벼문화를 가진 도래인이 지배하게 되었고 오늘날 일본인은 조몬인(열도 원주민)과 도래인(예족)의 혼혈이다. 70%의 유전자는 한반도에서 유래되었다. 도래인중에서 가야계와백제계 수가 월등하여 처음에는 가야계가 나중에는 백제계가 권력을 잡게 되었다.

그래서 백제 영토의 일부(공주에 있는 무열왕릉의 주인공은 일본땅에서 태어난 백제왕자였으나 본국에서 적통왕자가 없어 본국으로 다시 소환되어 왕이 되었다)였던 일본땅이 백제가 망하자 스스로 완전 독립 국가를 건설한 것은 겨우 697년 이었다. 반도부여인 백제가 그대로 일본으로 가서 정복왕조인 열도부여인 야마토 왜를 세운 것이다. 영국 이민자들이 미국을 세운 것과 비슷한 일이 1500년 전에 한반도 이주민에 의해 일본에서 일어 난 것이다. 우리가 기러기로 상징되는 만주 지역을 우리 조상의 고향땅으로 그리워 하는 유전자가 있듯이 일본인들은 그들 조상의 고향땅인 한강(서울), 금강(웅진, 부여)로 가고 싶다는 유전자가 뿌리 깊게 존재한다. 일본서기에는 웅진의 조상 묘에 언제나 가볼까 라는 말도 나온다. 그것이 정한론의 뿌리이고 임진왜란의 실체이고 한일합방의 실체이다.

697년 전에도 물론 일본 왜왕(천왕)도 있었고 중앙 정권도 있었으나 백제왕자들의 분국의 형태였다. 백제가 망하자 백제계였던 왜는 당연히 원군을 보냈으나 백강전투에서 패한 후부터 왜만의 독립국가를 세우고 한반도로부터 완전 고립하여 멀어졌다. 망한 백제를 잊고 싶은 것은 당연하였다. 망한 백제를 지우고 하늘에서 도래하였다 고 꾸미게 되었다. 예로부터 하늘은 바다를 의미하는 것이다. 지금의 일본어는 백제어로부터 만들어 진 것이다. 한성백제의 개로왕이 고구려 장수왕의 침공으로 전사한 후부터 백제 왕자들과 백제귀족들이 더 많이 일본열도로 이주하였다. 왜는 백제 그 자체였던 것이다. 일본열도는 반도 부여인 백제의 일종의 피난처 열도 부여였다.

이복 형제지간인 고구려와 백제가 한강유역을 두고 서로 사생결단으로 다투다가 전략과 외교의 실패로 둘 다 망하게 되어
백제는 그대로 일본으로 갔고 고구려는 대륙의 역사로 들어 가 버렸다. 백제는 온조, 비류의 어머니가 졸본부여의 마지막 공주였으므로 북부여의 정통성이 백제에 있다고 보았고 오히려 고구려를 아류로 보았기에 고구려를 밑으로 보았다. 백제가 망하여 임진강 이남이 반통일 된 상태에서 고구려가 남북으로 당나라와 신라에게 협공당하는 구도에서 망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지금의 북한은 망하지 않기 위하여 중국에 붙어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남북통일은 불가하다.

해양국가 백제의 전통은 그대로 일본으로 갔고 그 후 단 900년만에 강성해진 일본은 임진왜란을 일으켜 한반도를 유린하였다. 그리고 300년간 조,일간의 평화의 기간이 있었으나 20세기 초에 다시 조선을 합병하여 한반도는 유사이래 처음으로 독립된 나라가 없는 식민지가 되었다. 백제영토의 일부였던 일본열도가 독립국가(697년)를 세운지 1400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세계 2, 3위의 강대국이 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태평양전쟁에서 싸워보니 미국도 내심 일본을 두려워 하게 되었는데 한국인들만 일본을 두려워하지 않고 함부로 말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굉장히 해괴하다고 다른 나라 사람은 말하곤 할 정도로 역사교육은 현실을 담아 내지 못하고 허구를 가르치고 있다. 일본의 정한론은 형태만 바뀌었지 오늘도 계속되고 있을 뿐이다. 남한 땅은 일본열도를 지키는 울타리라고 일본인들은 생각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한반도 유사시에 일본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한반도에 들어 온다. 한반도 유사시에는 또다시 한반도에서 현대판 청일전쟁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 중국에 의한 지배는 쉽게 인정하면서 일본에 의한 지배는 인정하지 않으려는 유전자가 한국인에 내재되어 있는 이유는 문화적으로 우리가 일본을 가려켰다는 뿌리 깊은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그들 조상의 고향땅인 한반도를 그리워하는 유전자가 시대에 따라 달리 표현될 뿐이지 실체는 정한론의 뿌리이다.

일본인들은 미국이나 중국, 인도 등을 고려할 뿐 한국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 고 생각하고 종속 변수로 여길 뿐이다. 항일무력투쟁을 하였다는 측이 6.25 한국 전쟁을 일으켜 오히려 전쟁특수로 일본 부흥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매우 역설적이다. 한반도 분쟁은 어부지리로 일본만 이롭게 하는 것이기에 일본은 한반도 분단체제를 이용만 하였지 한반도에 기여한 바 거의 없으며 남북분단의 근본원인 제공자이며 남북통일을 원하지도 기여하지도 않는다. 원자탄으로 천왕이 항복선언을 하자 만주, 북한지역의 일본군은 38선 이남으로 철수하고 그 이북 지대를 텅 비워 놓아 소련군이 아무런 저항없인 진군하게 만들었던 것이 남북분단의 하나의 큰 원인이었다. 일본이 망하면서까지 한반도를 반으로 갈라 놓는 암수를 두었던 것이다.

고려조와 이성계가 늘려놓은 압록강-두만강을 경계로 한 영토를 지키지 못하고 분단된 것은 일제의 한일합방에 그 근본 요인이 있고 더 근본적인 원인은 동학군을 진압하기 위하여 무능한 민비 조선조정이 청군과 일본군을 한반도에 끌어 들여 이 땅에서 강대국들의 패권 전쟁인 청일전쟁이 일어 나 일본이 완전히 승리한 결과로 나라를 잃은 것이다. 해방 후에 일제 대신 미국이 들어 와 이 만큼이라도 평화와 번영을 누리고 있다 고 보아야 한다. 일본이 물러난 공백상태에서 미국이 들어 오지 않았다면 한반도는 또 다시 중국의 속국화를 면치 못하였을 것이다.

똑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인데 일본은 강대국이 되었고 한국은 왜 강대국이 되지 못했는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그것은 일본의 천자의 교육과 바다와 해양국가 지향의 개방성과 진취성에 그 이유가 있다. 바다도 영토이고 해양국가 지향의 개방성과 진취성은 일본을 강대국으로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바다와 접한 길이는 일본열도가 한반도의 4배가 넘는다. 중국세력에게 지배되지 않았고 오히려 근세에는 중국을 점령하였다는 역사는 일본의 자랑이고 프라이드며 강대국의 원천이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의식과 친절 의식 등은 일본인들의 특유한 선진의식으로서 강대국 국민이 될 수 있는 외유내강의 기초가 튼튼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상대적으로 외강내유 아닌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이 우리를 앞서기 시작한 것은 포르투칼로부터 조총을 받아 들인 임진왜란 직전부터였고 1860년대에
명치유신으로 미국에게 적극적으로 문을 열고 배워서 동아시아의 패권자가 되었다.

스스로를 지키려고 하지 않는 자를 과연 누가 도와주겠는가? 해양국가 지향의 천자의 나라 일본은 한 번도 중국의
지배를 받은 적이 없고 오히려 중국을 지배한 적도 있었다. 오늘날도 그 전통은 계속되고 있고 지금도 해상에서 중국과 싸워도 이긴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미국은 그런 일본의 저력에 신임을 주고 있다. 원자탄을 맞아 패전해 본 일본은 모든 사안을 목숨을 걸고 매진한다는 점이 우리와 다르다. 그들의 각오가 다르고 국제 현실을 보는 눈이 떠있다. 일본은 원자탄을 만드는 데 한 달도 걸리지 않는 사실상의 원자탄 보유국이다.

우리는 중국에 순치되었고 일본은 중국에 대치하였다. 그 결과는 중진국과 강대국으로 나타났다. 적어도 사육되지 않는 야성을 가진 까칠한 천자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 우리만이 가진 지렛대를 최대한 활용하여 세계 1,2,3,4위 국가들을 상대로 게임을 해야 하며 우리라고 세계 5위 국가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세계 패권을 두고 경쟁하는 미국과 중국에게 한국은 그 가치가 더욱 상승된
위치에 와 있다. 그 가치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학교 역사 교육부터 과장이나 폄하없이 솔직하게 가르쳐서 유식하고 까칠한 천자의 나라 국민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도 지렛대를 가진 천자의 나라 강대국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도 고려 해양국가 전통을 바탕으로 해양국가 지향이 되어야 한다. 바다와 하늘로 가야 길이 있다.

중국이든 일본이든 북한이든 우리를 범할 때 바다와 하늘에서 우리가 보복할 수 있는 힘과 수단이 강력하다면 업신여길 수 있겠는가?
구한말에 중국 속국으로부터 간신히 독립하였더니 오히려 일본에게 완전히 먹혀 합병당함으로서 나라를 잃었다. 현재는 중국 속국화로 다시 들어가는냐 아니면 미국의 중국포위에 한 일원으로 가담하여 자주독립을 유지하는냐의 문제이다. 당연히 중국포위의 한 일원으로 가담하여 중국이 깔보지 못하게 하여야 하며 중국이 분열되면 통일을 바라보고 만주도 바라보아야 한다.

함경도를 터전으로 한 동예 백성들이 동해안을 따라 강원도-경상도로 내려와 신라 일반 백성이 되었다. 그러나 지배층은 김일제의 김씨 후손들이었다. 김춘추가 당나라에 가서 말하기를 나는 김일제의 직계 후손이다. 한무제 때 김일제는 지금의 내몽고 지역의 흉노국 태자이었는데 한무제에게 생포되었다. 생포된 김일제는 한무제의 말을 사육하는 일을 하게 되었고 너무 일을 잘하여 한무제가 김일제를 놓아 주는 은혜를 베풀었다. 김일제는 그의 무리를 이끌고 산동성에 소국인 투후국을 다스렸다. 그의 후손 7대를 내려간 시기에 왕망이 쿠테타를 일으켜 전한을 멸망시키고 신나라를 세웠는데 김씨 투후국은 이 쿠테타에 가담하여 23년 동안 신나라 권력을 누렸으나 후한을 일으킨 유수에게 쫐기는 신세가 되었다. 쫓기는 신세의 김일제의 7대 손 김알지(성현왕) 일파는 배를 타고 산동성을 떠나 한반도 경주에 터를 잡아 경주 김씨의 시조가 되었고 흉노족 특유의 기상과 말타기에 능해 신라의 김씨왕조를 일으켰다. 신라라는 국호는 신나라에서 유래하였다. 그 김알지의 15대 후손이 삼국통일의 신라 문무왕이다. 문무왕비에는 김일제, 김알지가 그의 선조임을 분명히 밝혀 두었다. 그 당시 흉노는 한나라와 대등한 관계였기 때문에 자랑스럽게 그의 선조를 밝히고 있는 것이고 흉노의 기상을 이어 받아 삼국통일을 이루었다.

당시 수세였던 신라를 살리기 위하여 김춘추는 배를 타는 위험을 무릎쓰고 왜, 당나라로 건너 가 국제외교에 매진할 때 고구려는 연개소문의 아들 3형제가 서로 다투어 고구려를 말아 먹었다. 김춘추의 국제외교력으로 마침내 나당연합을 이루어 냈고 당나라를 한반도에 끌어들여 대동강 이남을 차지하게 되었다. 한반도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국제외교력이 이와같이 중요하다. 이어 받은 고려도 처음에는 대동강 이남만이 영토였으나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국시에 따라 서쪽으로 청천강을 넘어 압록강까지 영토를 넓혔다. 고려가 고구려 땅의 일부라도 되찾은 덕에 고구려가 우리의 역사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동쪽인 함경도는 확실한 고려의 영토가 아니었고 거란, 원나라, 여진의 지배를 받았다.

고려말 이성계 일가가 함경도를 가지고 고려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함경도는 고려의 땅이 아니었고 발해, 거란, 여진, 원나라의 땅이었다. 이성계의 5대조는 고려조정과 척이 져서 삼척으로 도망갔다가 또다시 살기 위해서 당시 원나라 땅인 함흥, 경원 등으로 도피성 이주하였다. 따라서 이성계 가문은 고려왕조에 대한 원한이 있었으면 있었지 충성심은 애초부터 없었다. 고려를 세운 왕건도 궁예에게 쿠테타를 일으켜 고려왕조를 일으켰고 1000년 사직의 신라를 무너트렸는데 이성계라고 기회가 왔는데 쿠데타를 일으키지 말란 법도 없었고 이성계도 책이나 구전으로 왕건에게 쿠테타를 배워 고려를 무너트렸을 뿐이다. 뛰어 난 장군들은 쿠테타를 일으켜 스스로 권력을 잡지 않으면 모함을 받아 반드시 죽임을 당했다. 천하통일 후에 한신이 유방에게 토사구팽을 당하였고 조선조때 남이 장군이 모함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 전쟁 때에는 뛰어 난 장군이 필요하지만 평화 때에는 뛰어 난 장군들은 왕권에 위험한 존재일 뿐이다. 따라서 모함을 받기 쉽고 반드시 죽임을 당한다. 어차피 죽을 바에는 유능한 자는 모함을 받기 전에 반드시 정교한 쿠테타를 일으켜 성공시킨다. 신임하는 뛰어 난 부하의 쿠테타는 예나 지금이나 항상 일어났다. 고려말 10년은 실질적으로 이성계가 다스렸고 조선을 개국하여 또 다시 10년을 다스리다가 74세라는 장수를 누리었기에 조선을 500년이나 지속케 하는 반석을 놓을 수 있었다.

대국의 뜻에 거역하면 정권이 망하기 쉬운 이유는 대국의 뜻에 부응하려는 세력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가 판을 뒤엎어 버리기 때문이다. 고구려, 고려가 그렇게 망했고 1970년대 핵개발과 관련하여 미국의 미움을 산 것이 10.26의 한 원인이 되었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이성계 일가는 함경도에서 세력을 키워 함경도를 대표하는 세력이 되었고 원나라가 약해진 고려말에 함경도를 가지고 고려로 귀의하였다. 함경도 영토와 힘이 커진 이참에 고구려 고토였던 요동까지를 회복하여 고구려를 계승하려는 고려왕조의 천자의 나라 야망은 한반도에 만족하며 명에게 잘 보이려는 이성계 세력에게 쿠데타를 당하여 망하게 되고 조선은 스스로 명나라를 사대하는 신하의 나라가 되어 천제조차도 지낼 수 없었다. 그러나 이성계도 사대교린을 하고 싶어서 한 것은 아니다. 그 때도 북로남왜라 하여 북의 여진과 남의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중국세력에 의지하는 사대교린을 하였을 뿐이다. 사실 한반도 전체를 영역으로 한 조선은 임진강 이북을 영토로 한 고구려보다도 더 큰 나라였다는 것을 간과하는 것은 일종의 고구려에 대한 신화이다.

위화도 회군의 열등감을 완화하기 위하여 조선은 함경도라도 찾아 왔다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내세웠고 함경도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이성계 조상들의 성지였기에 세종 때도 김종서를 보내 육진을 개척하여 여진을 몰아내고 경상도의 차남들을 이주시켜 정착케 함으로서 함경도를 확실한 영토로 하였다. 이와같이 함경도를 찾아 온 것은 이성계와 조선의 공이다. 고구려 이래로 두 번 째로 조선은 함경도를 영토로 한 비교적 강중진국이었다. 고려조 내내 함경도는 거란-원나라 지배의 남의 땅이었다. 이성계와 조선이 없었다면 함경도는 청나라를 세운 여진족(만주족)의 땅이 되었을 것이고 결국 오늘날 중국의 땅이 되었을 것이다.

통일신라시대에도 원산-평양선을 잇는 대동강 이북은 발해의 땅으로 그때도 300년 동안이나 남북분단의 시대가 있었다. 고구려가 망하고 단 30년만에 당나라로 잡혀간 20만명의 고구려 유민이 거의 다 도망나와 대동강 이북에 후고구려인 발해를 세웠다. 통일신라가 먼저 고려에 망하고 다음에 발해가 거란에 망해서 함경도와 평북은 대륙의 역사로 들어가 버렸는데 청천강을 넘어 평북은 고려조에 서희가 되찾았고 함경도를 다시 찾아 온 것은 이성계와 조선이었다. 그러나 한반도로 국한된 조선은 명을 사대할 수밖에 없었고 명의 보호 아래 조선왕조가 유지되는 신하의 나라 체제로 고착되었다. 발해가 망하여 발해땅이 고려땅이 되지 않고 거란의 땅이 되었듯이 북한이 망한다고 북한땅이 한국땅이 되란 법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임진왜란 때도 한반도가 왜에게 완전히 장악되면 만주도 지킬 수 없다고 보아 명나라가 압록강을 넘어 참전하였다는 것은 한반도는 중국에게 울타리와 같아서 적대세력에게 결코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이중국의 입장이다. 임진왜란으로 일본에 신경을 쓰느라 만주지역에서 세력을 키우는 여진족 누루하치의 후금의 부흥을 견제하지 못한 명나라는 결국 여진에게 망하고 여진족의 청나라가 중국을 차지하였다. 이후 300년을 지속한 청나라는 청일전쟁에서 한반도를 잃고 만주도 일본에게 뺏기고 결국은 본토도 망하였다. 6.25 때도 미군이 압록강까지 도달하자 중공군은 참전하여 자국 병사 30만명을 희생시키면서 지금의 휴전선에서 미군세력과 대치하였기에 중국은 북한이라는 울타리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점에서 통일은 불가하다.

청일 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하여 조선왕조를 유지시켜주는 사대교린의 중국 보호가 붕괴되자 미국의 승인 아래 자동적으로 일본의 먹이감이 되었다. 고종이 아관파천이라는 자충수를 둠으로서 영국-미국 세력은 러시아에게 조선을 뺏기는니 차라리 일본에게 주는 게 낫다고
보고 일본의 조선 지배를 묵인하게 되었다. 이에 일본은 조선왕조의 후견국이 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아예 조선왕조를 망하게 하고 한일합방을 하여 한반도에는 자치 나라조차 없어지게 되었다. 한반도를 먹은 일본은 힘이 더욱 더 커져서 만주를 먹었고 중국 본토도 먹었다. 한반도는 이와같이 핵심지역이다.

조선이 망하자 일제를 가장 환영한 사람들은 양반의 지배를 벗어버린 중인 출신들로서 새로운 지배계급인 관리, 교사, 군인이 될 수 있었다. 천민 출신들도 평민이 되어 좋아 했으나 조선후기 200년간 정권을 잡은 노론 양반이 일제하에서도 귀족이 되어 큰 자리는 다 해 먹었고 그 후손들이 해방 후에도 각 분야에서 다 해 먹었다. 일본이 원자탄으로 망하자 남, 북한은 각자 미국과 소련, 중국을 후견국으로 두는 분단국가를 세웠다. 지금도 이 체제는 계속되고 있다. 중국이 분열되지 않는 않는 한, 남북한 분단체제는 지속될 것이다. 남한은 일본을 지키는 울타리이고 북한은 중국을 지키는 울타리이기 때문이며 통일 한국은 중국 뒷머리에 붙은 망치와 같이 중국에게 위험하고 동시에 일본의 심장을 겨루는 단도와 같아 일본에게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발해와 통일신라의 분단의 역사가 300년 동안 지속되었고 발해가 망하자 발해 땅은 대륙의 역사로 들어 가 버리고 통일신라를 계승한 고려는 발해의 영토를 영영 회복하지 못했으며 함경도도 중국에 빼앗겼었다는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현재도 중국은 북한 격변시 청천강과 원산을 잇는 그 북쪽은 소유권을 주장할 가능성이 있고 중국군은 압록강을 서슴없이 넘을 것이다. 중국이 내란으로 분열되지 않는 한, 이 방정식은 계속 유효할 것이다. 한국 주도의 한반도 통일로 북한 지역이 미국세력으로 편입되는 것을 중국은 가장 두려워 한다.

200년대에 중국이 조조, 유비, 손권으로 분열된 이래로 수나라로 통일된 600년까지 약 400년간의 중국 혼란의 시기에 고구려, 백제는 최전성기에 있었다. 수나라 이후 오늘 날까지 통일된 중국대륙은 한반도에게는 늘 위협이었고 백제, 고구려가 통일중국에 의하여 망하였다. 오늘 날 미국이 들어 온 이후부터 중국속국에서 벗어 나서 그나마 중국에게 할 말을 할 수 있는 구도로 바뀌었을 뿐이다. 미국 없는 한국은 지금도 중국의 속국 형태를 면치 못하였을 것이고 북한은 이미 중국 속국이나 마찬가지이다. 중국은 한반도를 반으로 나눈 북한이라도 속국으로 가지고 있으려 하기 때문에 한국주도의 한반도통일은 현시점에서 불가하다.

북한 혼란으로 국군이 휴전선을 넘어 북으로 들어가면 6.25 때처럼 중국군과 싸워야 할 판인데 휴전선을 넘어 북진하여 중국의 허락없이 북한을 접수할 수 없을 것이다. 어차피 북한은 남한 것이 될 수 없는 국제 구조인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우리의 희망과 주문대로 붕괴되지도 않으며 붕괴된다고 하여도 자동적으로 남한 것이 되지도 않는다. 단, 중국이 분열되어 혼란된다면 통일이 가능할 수도 있다. 통일 중국은 미국 영향력하에 있는 통일 한국은 결사 반대한다. 중국이 분열되면 통일 한국을 반대하는 힘이 약화되어 미국의 지지하에 통일 한국은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가까운 장래에 그런 일은 없다는 것이 국제적인 현실이다. 80년 동안 북한 망하라고 주문과 주술을 외웠지만 북한은 망하지 않고 있는 것은 중국이 울타리와 변견으로서 북한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만주지역은 패권자가 수시로 바뀌었다, 환국-배달국-고조선-부여-고구려-당나라-발해-거란(요)-금(여진)-몽고(원)-명-여진(청)-러시아-일본(만주국)-중국
따라서 발해(후고구려) 멸망이후 만주지역과 함경도는 우리 역사라고만 볼 수 없는 점이 있어 북한이 격변사태가 오면 중국군이 점령하고 자기네 연고를 주장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모텍동도 장개석도 한국을 속국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한사군은 만주의 만리장성 산해관 근처의 갈석산에 있었다가 북부여의 공격을 받고 만리장성 이남으로 물러갔다. 한사군은 북한지역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우리도 만리장성 이북의 만주에 대하여 우리의 연고를 주장하고 중국격변시에 만주를 우리 영토라고 주장하여야 한다. 중국이 분열되면 한반도 통일이 올 수 있다. 이때 만주도 우리 연고를 주장하여야 한다. 강대국이 되려면 대륙이 있어야 한다.

고구려가 당에 망하여 뺏앗긴 평안북도를 찾아 온 것은 고려조이고 함경도를 찾아 온 것은 이성계와 조선조이다. 강대한 한반도 국가는 반드시 만주를 넘본다는 것이 중국의 입장이다. 고구려가 그랬고 고려말 요동정벌이 그러했다. 그런 중국의 입장을 알아 채고 알아서 기는 위화도 회군의 요동을 포기하는 댓가로 함경도를 포함하여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 세력은 스스로 중국을 사대(사대교린)하고 중국의 보호 아래 한반도에 국한된 자치의 작은 나라로 만족하면서 중국에 순치되고 국방을 의존하였다. 자기들이 이미 실행한 역성혁명을 우려하여 문을 지나치게 숭상하고 무를 천시하다보니 더욱 약골이 되었으며 역성혁명보다 더 무서운 남의 나라인 일제에게 강점당한 후, 오늘날 본인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강대국들에 의하여 남,북으로 분단이 되어 힘이 더욱 약화되었다.

강대한 중국에 의한 동북아 지배 상태에서는 한반도는 중국의 속국으로나마 통일된 상태로 유지되었으나 한반도에 일본이라는 강대한 해양세력이 들어온 상태에서는 남북 분단이 예고되었다 고 보아야 한다. 오늘날 한국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보다도 더 못한 분단 상태에 있다. 지금도 남북한이 합치면 인구가 8000만 명으로 일본 1억2000만의 2/3나 되고 영국,프랑스,독일보다도 인구가 많아서 인구나 국력으로 보나 세계 5대 강국 안에 들어가니 무시할 수 없는 대단히 큰 나라일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라는 대륙세력은 북한이라는 울타리가 필요하고 해양세력은 남한이라는 울타리 및 침몰하지 않는 거대 항공모함이 필요한데 우리만의 힘으로 한 번 분단된 조선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에는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너무 팽팽하게 세력 분포가 되어있다는 것이 6.25때 엄청난 피를 뿌리면서 이미 증명되었고 지금은 오히려 더욱 더 팽팽해졌을 뿐인데 각자가 처한 위치에 따라 해몽을 아전인수격으로 해댈뿐이다. 역사는 과장이나 폄하없이 사실대로 가르쳐야 미래가 있다. 중국이 한반도통일을 반대하는 현재의 국제 역학관계로서는 통일은 불가하다. 중국에게 도전하는 강대한 고구려를 잡기 위해 순응하는 신라를 이용하고 한반도를 대동강 이남의 작은 나라로 조절한 역사가 있다.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한반도를 반으로 나눈 것은 피차에 최선의 결과이기 때문에 이 구도는 깨지지 않는다. 이런 전제하에서 모든 전략을 세워야 현실적이다. 그나마 중국 포위를 위하여 미국은 한반도 통일을 바라고 있는 유일한 강대국이다.

남, 북한 이질감이 이대로 확대된다면 발해 때와 같이 300년간 분단이 지속될 지도 모르며 북한은 오히려 중국에게 동질감을 더 느낄 지도 모른다(북한의 중국 속국화). 북한은 중국에
붙는 것이 모든 면에서 유리하다 고 생각하고 있다. 핵이 있는 북한과 미국 영향하에 있는 남한 주도의 한반도 통일 중에서 중국이 택일 하라면 핵이 있는 북한을 선택한다. 따라서 중국은 핵이 있는 북한을 죽이지는 못한다. 순망치한이기 때문이다. 다만 더 이상 핵실험은 하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조용히만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중국과 일본과 북한은 한국주도의 한반도 통일을 원치 않는다. 중국의 울타리 역할을 해 주고 그 댓가로 중국은 북한을 최소한은 먹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 북한 화해는 일시적으로는 가능하나 원천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북 정권의 생존을 위하여 인위적 대립구도의 형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북이 개방하면 정권이 위험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기에 절대 개방하지 않는다. 북한이라는 울타리가 필요한 중국이 공짜로 먹여줄 것인데 개방할 필요도 느끼지도 않는다. 중국에게 북한은 변방을 지키는 울타리이고 충실한 변견이다.

한반도는 조선조까지는 대륙세력이 강하여 대륙세력의 영향권 안에 들어 가 있었고 일제 강점기 때는 해양세력의 영향권속에 있었다가 8.15 해방을 계기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한반도를 중앙에서 나누어 각각 영향권에 두기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 분단 체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망한다고 북한이 자동적으로 우리 것이 되지도 않는다. 발해가 망하여 발해땅이 우리 땅이 되지 않고 대륙의 땅이 된 것과 같이 북한이 망하면 중국이 직접 통치하거나 친중 정권을 만들어 간접 통치할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북한은 이래도 저래도
중국 것이다. 다만 중국이 분열되어 혼란된다면 통일은 가능할 수 있다.

미국이 일본의 역할을 대신한 제 2의 청일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6.25 전쟁에서 중국군 30만명이 죽었는데 중국은 이래저래 북한이라는 울타리를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자국 청년 30만명을 죽이고 지켜낼 정도의 가치가 있는 북한이라는 울타리를 중국이 포기할 리가 있겠는가? 6.25 때보다는 중국은 훨씬 커진 강대국이 되었는데 이 시점에서 북한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당나라가 발해-통일신라의 두 개의 국가로 한반도를 분리하여 관리하던 것과 같이 중국은 남, 북한을 두 개의 국가로 분리하여 관리하고 있을 뿐인데 자주통일이란 현란한 수사는 말로서만은 가능할 지 모른다. divide and control 을 중국은 한반도에 구사하고 있을 뿐으로 한반도 통일을 절대로 원치 않는다. 한반도가 통일되면 베트남처럼 다루기 까다로운 또 하나의 무시할 수 없는 통일 한국이 만주 국경선을 접하여 뒷머리에 붙은 망치가 생기는데 중국이 이 구도를 원하겠는가? 통일 한국은 중국의 뒷 머리에 붙은 망치와도 같아서 두렵게 생각하는 것이 중국의 입장이다. 중국은 한반도라는 뒷머리에 붙은 망치가 잘라진 상태로 유지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더구나 미국세력하에 통일한국이라면 중국은 완전히 미국세력에게 포위된다. 중국은 한반도 통일을 절대 원하지 않는다. 미국은 한반도 통일을 원한다. 중국을 포위하기 위하여. 미국이 있어 중국은 한국을 깔보지 못하고 어쩔수 없이 대우하고 있는 것이다.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할 당시는 중국은 혼란기로서 강력한 통일제국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세의 힘을 빌리지 않고 고려의 후삼국 통일이 가능하였던 것이다. 지금도 중국이 혼란되면 한반도 통일은 미국의 지지하에 가능하다. 강력한 해양국가인 일본과 미국세력을 막는데 북한은 중국에게 절대로 필요한 울타리이고 일종의 충실한 변견이다. 때문에 현재와 같은 국제 구도에서는 남북통일은 원천적으로 불가하다. 북한마저 미국 편으로 되면 중국은 사방팔방이 완전히 포위된다고 보아 절대로 북한을 포기하지 않는다. 북한이 중국에 붙는 한, 통일은 불가하며 남북한 대립은 불가피하다.

미국이 압도적인 세계 초강국으로 계속 남고 북한도 정권의 안정만 보장된다면 언젠가는 미국을 끌어 들여 중국을 조절하고 더 달라고 떼를 쓸것이다. 지금도 북한은 미국을 이용하여 중국에게 원조를 받고 있다 고 보아야 한다. 중국이 공짜로 북한을 원조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북한도 미국을 철저하게 이용하여 중국에게 울타리 역할과 변견 값을 받아 내고 있는 것이다. 북한도 이래 저래 미국세력을 이용하고 있다. 원수도 때로는 필요한 법이닌까.

압록강-두만강의 그 긴 국경선으로 해양세력과 대치한다면 중국은 엄청난 위협을 느끼기 때문에 북한이라는 완충지역을 두고 임진강에서 해양세력을 막는 것이 중국입장에서 만주를 지키는 데 크나 큰 이익이다. 중국의 필요에 의하여 북한은 무너지지 않고 중국이 최소한은 먹여 줄 것이다. 그렇다면 무너지지 않는 북한을 잘 이용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다.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하기에 따라서 값싼 양질의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고 지근거리에서 지하자원을 살 수도 있으며 대륙으로 가는 길을 빌릴 수도 있고 관광사업을 할 수도 있도록 하여 남한경제에 예속시켜야 하지만 어디까지나 주문이고 희망사항일 뿐이다. 북한 인민들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북한 정권의 안정만이 김씨 왕조의 유일한 관심이기 때문에 북한을 한국으로 끌어 내기가 어려우나 최소한 다리만은 끊지 말고 교류를 유지하여야 한다.

지금같은 대치국면에서는 중국 거간꾼이 간접적으로 남북한간의 무역을 중계하여 이익을 따 먹고 있는데 남북한 직접 거래를 하면 그 구조를 깰 수도 있다. 무연탄과 철광석 같은 것을 싸게 사고 대륙으로 가는 길을 돈으로 빌리며 관광지에 남한의 달러 돈을 뿌려주면 경제적으로는 서로 이익이 될 것인데도 체제유지가 어려운 북한은 중국에게만 달라 붙고 있는 것이다.

북한 정권은 남한에 예속되는니 차라리 중국에 예속되는 편이 정권유지에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 북한은 중국의 울타리 역할을 하는 울타리 값을 달라고 중국에 요구한다. 때문에 중국은 북한을 최소한 먹여 주면서 직접 접수는 하지 않지만 남한은 먹여주면서 북한을 접수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북측은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남한 것은 줘도 먹지 않겠다는 것이다. 6.25 동족상잔이 더 잔인한 법으로 동족을 더 두려워하여 적대시하는 정책을 쓰는 것이다. 장기적인 남,북한 화합은 애당초 어렵다. 남,북한 화해는 북한정권의 존립을 위협하기 때문에 북정권은 인위적인 대립구도를 계속 만들어 낼 것이다. 1945년 이래로 80년 동안 북한 망하라고 희망 섞인 주문과 주술을 외웠으나 2016년 지금까지 북한은 망하지 않고 건재한 것은 국제질서가 북한을 망하지 않도록 짜여 있기 때문이다. 맹목적이고 희망 섞인 주문과 주술만 외울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북한을 다루어야 한다. 북한 김씨 왕조는 김일성의 항일 무장 투쟁을 100년이 넘도록 울겨 먹으며 국제질서를 이용하여 건재할 것이다. 그러므로 희망 섞인 주술과 주문이 아닌 현실적인 접근을 하여야 한다.

발해와 통일 신라가 300년 동안 대립만 하였지 화해한 적인 있었던가. 리비아의 카다피가 핵을 포기하였다가 서방국가들의 폭격을 등에 업은 자국 반군에게 총 맞아 죽는 모습을 생생하게 목격한 북정권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국내용 정권안보 목적으로 핵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이고 동시에 주위국들을 위협하면서 주변국 및 미국으로부터 보험금 명목으로 뻔뻔하게 돈 및 물자를 요구할 것이다. 핵은 핵으로서만이 막을 수 있다.

북한 핵은 또 다시 남측에 미군의 핵우산을 불러올 것이고 일본, 대만의 핵개발을 불러 올 수도 있어 중국에 가장 불리할 수 있는 게임이다. 그런데도 북이 핵실험을 강행하는 이유는 중국의 울타리인 북을 절대 중국이 포기하지 않는다는 자신감이며 국내용 정권안보가 더 큰 목적이다. 앞으로도 오랜 동안 남북한은 서로 상존할 것이므로 중국을 통한 간접거래가 아닌 직접거래를 하면서 세월을 떼워야 한다. 어떤 명목이든 남한의 달러 돈을 북에 뿌려 주면서 남북이 직접 거래를 해야 한다. 다만 공짜로는 주면 안 된다.

미국세력하의 남한이 있어야 북한도 중국에게 가치가 있고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분명하고 중국이 있어야 미국에게 남한 및 북한도 가치가 있고 대우를 받는다는 것도 분명하다. 역으로 미국 없는 남한이나 북한도 중국이 대우해줄 리가 없고 또 다시 속국화할 것이다. 예로부터 근공원교 라는 말이 있듯이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 진 미국을 불러들여 중국과 일본을 견제하는 것만이 한국이 독립을 유지하면서 살 길이라는 것은 고종도 알고 있었던 진부한 진리이다. 중국과 같이 잘 살아야 하지만 속국화는 안 되지 않은가. 중국에게 일방적인 속국화가 안 되려면 해양세력이 한반도에 들어와 있는 것이 답이다. 다행히 해양세력에게도 한반도는 매우 중요한 위치이기에 그들의 이익(중국포위 및 견제)을 위하여 자발적으로 이미 들어와 있다.

양측에게 다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의 우리는 그것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공산주의를 최일선에서 막아주는 댓가로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무었을 받아내고 있으며 일본은 우리에게 무었을 주려고 노력했는가? 일본은 한반도 통일을 원치 않으며 분단을 이용하고 있다고 본다. 통일 한국은 일본을 찌르는 단도와 같다 고 그들은 보기 때문에 일본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한반도 분단을 원하며 통일은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 일본은 한반도라는 단도가 중간에서 부러져 있는 것을 원한다. 중국은 더 적극적으로 한반도 분단의 현상유지를 바라고 있다. 몽골, 한국의 연방제를 한다면 이런 중국을 압박할 수도 있다고 본다. 중국을 움직이려면 미국을 이용이라는 지렛대를 이용하여야 한다.

한반도는 중국이나 일본에게 모두 자신들을 겨루는 칼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쪽세력에게 완전히 지배되는 것보다 양측 세력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 한반도에게도 유리할 수 있고 양 세력에게도 유리할 수 있다. 그러니 이 체제가 6.25 전쟁으로도 깨지지 않고 70년간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허무맹랑한 통일을 말하기 보다는 발해 때와 같이 300년 이상까지 이 분단의 체제가 지속될 수 있다는 가정하에 전략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남한 주도의 통일은 중국이 원치 않고 북한 주도의 통일은 미국, 일본이 원치 않으니 말이다. 중국이 분열되어 자기들끼리 싸우는 내전의 시대가 혹시 온다면 한반도 통일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 한반도 통일을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나라는 중국이고 강대한 통일 한국의 출현을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나라도 중국이다. 중국이 분열된다면 한국이 통일될 수도 있다. 북한이 의지할 수 있는 강대국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북한은 고구려의 후신이라고 자신들을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남한에게 절대로 굴복하지 않으려 하고 중국에게도 울타리 값과 변견 값을 내라고 큰 소리를 치면서 얻어 쓰려고 한다. 그게 다 미국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구도이다.

항상 말은 쉬우나 실행은 어렵다. 그러나 전략은 있어야 한다. 서로 싸우고 경쟁하되 파국만은 면하면서 일부라도 협력하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감성적인 민족주의와 자주만을 가르칠 것이 아니고 이와 같은 냉혹한 국제정치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중국에 대한 대 포위 전략의 일환으로 미국은 한반도 통일을 원하는 유일한 강대국이므로 이런 미국을 이용해야 한다.

중국이 6.25 참전으로 세계 시장에 들어 오지 못하고 방안에 갖혀 있는 사이에 한국은 미국 및 서방의 지지하에 이만치라도 살게 되었다. 지난 30년간 미국의 보호 아래, 일본만 따라서 하는 것으로 단군이래 상대적으로 가장 풍족하고 안전하게 살았으나 중국의 개발 독재 굴기로 그와같은 방정식이 계속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값싸고 실력있는 인해전술로 밀고 들어 오는 중국에 밀리고 있는 분야가 확산일로에 있다. 무기를 들고 쳐들어 오는 것이 무섭기는 하지만 미국이 있으니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고 대신 싸고 좋은 물건과 서비스로 쳐들어 오는 것은 막을 수 없기에 더 무섭고 중국에 먹혀서 국가부도사태로 내 몰릴 수도 있다.

IMF 국가부도 때와 2008년 금융위기 때는 미국이 도와주었는데 만약 지금 국가부도가 오면 미국이 그 당시와 같이 발 벗고 도와 줄까? 그렇다고 중국이 대신 도와 줄까? 일본이 도와 줄까? 한국은 네 마리의 사자에게 포위된 형국이다. 한 마리 사자를 잘 방어하면 다른 쪽의 사자가 달려드는 형국이다. 어느 놈에게 잡혀 먹힐 지 모른다. 그 중 멀리 떨어져 있고 영토에 야심이 없는 미국에게 의존하는 것이 그나마 유리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한반도 통일을 원하는 강대국은 미국 밖에 없으며 한국이 강대국이 되는 것도 미국 이외에는 원하는 나라가 없다.

미국, 일본, 유로 등의 기축통화국들은 필요하다면 돈을 맘대로 찍어 국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나 한국은 기축통화가 아니기 때문에 수출을 올리기 위하여 양적완화로 원화가치를 낮추면 투자외환이 빠져나가 외환유동성 위기가 오고 원고(엔저)가 되면 수출이 안 되어 역시 외환유동성 위기가 온다. 엔저가 올 때마다 수출이 안 되어 항상 한국은 외환위기가 왔고 미국금리를 올려도 외환이 빠져 나가 역시 외환위기가 왔다. 최근 무역에서 계속 흑자를 내는대도 외환보유고가 그 만큼 늘지 않는 것은 한국경제를 불안하게 보고 외국인 투자외환이 계속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무역에서도 흑자를 내지 못하면 빠져 나가는 외환을 메꾸지 못하여 지금 당장 국가부도가 된다. 매년 1000억 달러 씩 빠져 나가는 외환을 무역흑자로나마 메웠기에 그나마 지금의 외환보유고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금리를 미국보다 낮게 하면 바로 외환은 빠져 나간다. 따라서 한국은 금리도 마음대로 낮추지도 못한다. 돈을 찍어 낼 수도 없고 금리를 마음대로 내릴 수도 없다. 엔저나 위안화 평가절하가 오면 수출이 안 되어 역시 외환유동성 위기가 온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게 하는 네 마리의 사자에게 포위된 형국이다.

우리기업들의 세계 및 중국시장을 중국기업들에게 뺏기고 있다. 이런 제조업 중국이 무서워 미국도 셰일석유 생산에 의한 제조업 재부흥으로 돌아 서고 있으면서 중국견제에 나섰다. 미국은 중국 대포위 전략을 구사하고 있으며 패권국을 양보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패권국에 도전하는 흉내는 내고 있으나 남중국해에서 미국에게 노골적으로 도발하지 못하고 있다. 남중국해에서 지금 싸움이 붙으면 중국이 지기 때문이다. 미국도 제조업을 자체 생산하여 중국 것을 되도록이면 안 사겠다는 것이고 더 나아가 수출도 하여 중국견제도 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중국 대 포위 전략은 한국에 유리하며 통일을 원하는 강대국 세력은 미국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한반도 분단을 원하며 통일을 반대한다.

중국도 이미 여러가지 체제상 모순으로 성장이 떨어지고 있다. 중국은 국제 정치적, 경제적으로 이미 견제받고 있다. 미국은 국제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패권을 뺏기지 않으려 최선을 다 할 것이므로 더 이상 중국이 크는 것을 원치 않기에 견제하고 있다. 세일석유의 생산에 기반하여 미국이 재부흥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을 넘어서기 어렵다. 중국이 따라 오면 미국은 더 멀리 발전하여 해양과 공중에서 팍스-아메리카는 지속된다. 한국도 지난 50년간 일본을 따라 잡으려고 죽자살자 달려와 이 만큼 성공하였는데 이제는 중국에게 쫓기는 형국이 되었으나 중국도 잘 만 활용한다면 기회는 있을 것이다. 공산 독재가 민주자본주의를 이긴 적은 아직 없다. 바다로 육지로 포위된 중국은 혹시 아시아 골목대장은 될 지 모르나 결단코 세계대장은 되지 못한다. 아시아 골목대장 유지도 일본, 인도라는 민주체제의 강자가 포위하고 있어서 만만치 않은 것이 중국의 현실이다. 미국이 없다면 중국은 주변국가에게 현대판 조공을 요구할 것이다. 미국의 중국포위의 일원으로 가담하여
중국에 지배되는 것을 방지하고 있는 것이 주변국들에게 크나 큰 이익이다. 여러모로 중국에게 불리한 게임인 것이다. 북한마저 미국의 영향력 속으로 들어가면 중국은 더 불리해지기 때문에 북한만큼은 미국세력에게 넘기지 않을 것이다.

핵과 관련하여서도 중국이 북한편만 들으면 미국의 샤드를 남한 땅에 들여 놓아 미국이 베이징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게 할 수 밖에 없음을 천명하여야 한다. 미국을 끌어 들이지 않고는 중국을 움직일 수가 없다. 중국이라는 골목대장은 미국이라는 세계대장을 끌여 들여 조절할 수 밖에 없다. 미국의 전략 핵을 남한 땅에 다시 들여 오는 카드를 가지고 중국의 북한 지원 정책을 어느정도는 견제하여야 한다. 언젠가는 한국도 핵을 가지고 있어야 세계 5위 국가가 될 수 있다. 중국, 일본이 반대한다고 하여도 미국의 지원하에서 언젠가는 통일을 이룩하여야 한다. 서독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가 독일통일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였지만 미국의 강력한 지원아래 돈의 힘으로 소련을 무마하면서 통일을 이루었다. 언젠가 중국이 분열하면 통일이 가능할 수도 있다. 현재도 중국에서는 매일 크고 작은 폭동이 일어나고 있다. 중국 공산당 독재가 스스로의 약점으로 허약해지고 분열되면 한반도 통일의 기회는 미국의 지지하에 한 번쯤 오긴 올것이다.

아마 지나고 나면 2015년이 가장 좋았던 해라고 기억될 것이다.현재 수준으로라도 계속 잘 살려면 중국이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 타서 호랑이 등 위에서 같이 춤추는 수 밖에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돌아가 그들보다 더 싸고 좋은 수출 제조업 및 수출 서비스업을 육성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을사늑약보다 더 치욕적이고 IMF 보다 더한 경제적 국치인 국가부도 사태가 조만간 또 올 지 모른다. 이때 중국, 일본의 자본을 불러들인다면 또 다시 경제주권적으로 나라를 잃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을려면 용미, 용중, 용일, 용러, 용북한이 답이 아닐까 한다. 등소평의 흑묘백묘론, 중상주의론이 자본주의 그 자체이며 무늬만 공산당 왕조국가일 뿐이다. 짜짱면집과 스시로 대표되는 중국인과 일본인들은 뼈속까지 장사꾼이다.

그럴려면 우리도 지렛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지렛대는 바로 모든 방면의 세계를 상대로 한 실력과 근공원교 전략의 미국활용뿐이다. 중국도 임금이 올라 물건 값이 비싸지면 베트남, 버바, 인도 등의 저임금에 먹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런 추세는 이미 시작되어 중국의 기세등등 경제가 한풀 꺽이고 있다. 우리는 그런 추세를 잘 탈 필요가 있다. 그러나 중국은 이미 기술력을 얻고 있다. 두려운 것은 바로 그것이다. 중국보다 비교우위의 기술력을 유지하지 못하면 중국에 먹힐 것이다. 조선업이 이미 먹히고 있고 철강과 가전이 먹힐 태세이다. 자유민주체제의 우월성을 바탕으로 개인의 창의와 창조의 문화를 고양시켜야 살 길이 있다.

반도체와 차도 턱 밑까지 따라 왔다. 살려면 비장한 자세로 돌아 가야 한다. 현재 한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일본의 80% 까지 따라 붙었다. 일본 따라 하기가 성공한 셈이다. 그런데 중국이라는 추격자가 바짝 따라 왔다. 중국이라는 공룡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미래가 달렸으며 체구는 작으나 빠르고 강한 육식공룡처럼 되어야 한다. 인도, 인도네시아, 인도차이나 국가, 호주, 브라질을 포함한 남미 국가까지 관리하는 높은 차원의 외교전에 최선을 다 해야 한다.

자강불식이란 말과 같이 모든 분야에서 실력을 더 쌓아야 하고 유연성과 겸손으로 돌아가서 지피지기를 해야 한다. 개개인의 자유와 창의가 넘치고 동시에 책임과 의무가 정당하게 부과되며 경쟁과 자비가 상존될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만는 않기에 아직까지 선진-강대국이 못되고 있다는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분수에 맞는 제도에 만족하여야 하며 이상주의를 버리고 현실주의가 되어야 한다.

어린아이들처럼 경쟁없는 지상낙원을 만들어 준다는 공산주체주의가 지상낙원은 커녕 호구지책도 못한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었고 인간사에서 강해지려면 고통과 경쟁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은 개인이나 국가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빨리 인정하고 매진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거늘 구호로서라도 어린아이들 지상낙원 타령은 이제 그만 둘 때도 되지 않았나? 오죽하면 종교에서도 현세가 이닌 내세에서나 지상낙원 천국을 약속하지 않던가? 포플리즘식의 지나친 이상주의, 지나친 민족자주주의 등이 오히려 국가를 망칠 수 있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실력도 없으면서 분에 넘치는 제도적 사치는 나라든 개인이든 반드시 망조로 간다. 나라나 개인이나 대오각성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지구위 우주에서 하늘을 바라보아도 모자라는 판에 우물속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우를 더 이상 범하지 말아야 한다.

개인이나 국가나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을 줄 알아야 하고,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볼 줄을 알아야 미래가 있다. 우리의 실력은 항상 부족했다는 뼈아푼 현실을 자각하고 절치부심하여야 하며 우리만 최선을 다 하는 게 아니고 상대도 최선을 다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 만큼이라도 살게 되었는가? 라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길이 있다. 길은 항상 있다
 
 
   
 

서울시 강서구 화곡동 1075 화곡빌딩 4층 현대항도외과 Tel: 02-2698-5021 Fax: 02-2607-8490
Copyright ⓒ 2003 by 현대항도외과 All rights reserved. e-mail : master@hangmun75.com